2008-06-26 04:49:08
한참 촛불집회 생중계를 보다가, 잠시 담배 피러 베란다에 나갔는데, 그런 생각이 나더라. 지금 저 곳에선 살벌한 진압이 벌어지고 있는데, 눈 앞에 펼쳐진 한 밤중의 아파트 단지는 왜 그렇게도 평온스러운 걸까. 맞아, 그래. 눈을 돌리고 나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지. 싸움은 저기 저 멀리에서 벌어지고 있고, 나는 이렇게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는 걸.
오늘 집에 들어오는 길에는, 배가 고파 만두 한 판을 사들고 들어왔어. 더운 여름인데도 아주머닌 정말 열심히 팔고 계셨지. 정말 여름이 왔나봐. 가끔 바람이 불때면 가로수들이 속삭이더라. 사각사각, 따뜻한 날들이 왔다고. 아아, 그래. 향긋한 나뭇잎 냄새가 나더라. 귀에 꽂은 아이팟에선 넬이 간지럽게 노래 부르고, 낯선 추억들이 조금씩 몸을 감싸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어. 그 안에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더군.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고, 사람들을 잡아가고, 어디에선 손가락이 끊어졌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으려니 몸이 오싹해졌어. 그냥 꺼버리고 싶은데 차마 그게 잘 안되더라. 저건 그냥 전달받은 영상일 뿐인데. 그저 고개 한번 돌리면, 마우스 클릭 한 번 하면 지워버릴 수 있는데.
맞아, 그래.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만을 보면서 살아가.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는 지조차 몰라. 바로 코 앞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내 눈 앞에만 보이지 않으면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응, 그래. 우리는 그저 눈 앞에 일어난 것만을 바라보기에도 급급해. 어쩌면 그래서 인지도 몰라. 나는 더듬거리며 칼라TV와 오마이뉴스가 전해주는 영상을 읽어. 모르고 싶지 않기에, 모르척 할 수 없기에.
아까 저녁에는 경복궁 역에 갔었어. 길거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경찰들이 그 사람들을 둘러싸고 갑작스럽게 연행해 가더라. 주변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싸우고, 나는 그 모습을 찍다가, 있다가 있을 간담회 때문에 잠시 빠져나와야만 했어. 웃고 떠들던 간담회가 끝나고 다시 광화문에 들렸다가, 오늘 있을 공연 준비를 해야해서 일찍 집에 들어왔어.
그래, 포기하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냐. 그저 눈 앞의 것만을 보며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볼 수 있는 것들 밖에도,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아. 어떤 하늘 아래에선 내가 아닌 네가 살고, 어떤 방 안에선 나와 같은 영상을 너도 볼꺼야. 내가 보는 세상과 네가 보는 세상은 그래서 아프게 연결돼. 그 순간 너와 나는, 다른 세상이 아닌 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
사람들이 연행되어 가는데, 나는 내 할 일 있다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왔어. 뭔가 화가 나서 입술을 깨물었어. 그래,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어. 나도 내가 해야할 일이 있고, 그걸 지금은 포기할 수 없어. 방송국처럼 순식간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아프리카 BJ들 처럼 생활의 일부분을 내주면서 함께 할 정도의 용기도 없어.
미안해,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해서. 미안해, 니 옆의 자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그렇지만 포기하진 않을께. 영상을 더듬으며 읽으면서라도 함께 할께. 내가 알고 있고, 보고 있고, 찍고 있던 그것만이라도 전달하려고 노력할께. 그 세계를 포기하는 순간, 너와 나의 세계는 멀어지고 말아. 나는 그것만큼은 잃고 싶지가 않아.
… 조금만 기다려줘. 곧, 그 자리로 달려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