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 서적과 불심 검문의 추억

2008-08-01 01:19:55
불온 서적과 불심 검문의 추억
예전, 90년대 중후반쯤에는 경찰이 ‘대학교’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집회가 종로-여의도-서울역-대학로가 아니면 대학교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경찰이 시청광장 원천봉쇄술(?)을 쓰는 것도 아주 고전적 대처방법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때는 그 대학의 학생들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학생증 검사를 받기 싫었던 나는, 대판 싸우고 -_- 밀어제끼며 들어가거나, 그냥 담을 넘어서 들어가는 길을 택하곤 했었다. 그날도 그렇게 학교에 들어와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밑에 있는 한 친구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연락이 왔다.

그냥 조용하고 착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아이라서, 대체 왜 못들어오고 있는지 궁금해서 내려가 봤다. 내려가보니, 그 친구를 여러명의 전경들이 둘러싸고 겁을 주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어보니, 이 학교 학생은 맞는데, 가방에서 불온 서적이 나왔다는 거였다. 이 사람은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고 데모하러 온거니, 들여보내 줄수가 없다는 거였다.

문건이나 좌파책이랑은 거리가 먼 친구였기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옆에선 계급이 높은 것처럼 보이는 몇몇 전경들이, 그 친구 가방을 들춰보며 빨갱이 맞네- 사회주의자네-하며 빈정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까 보다 더 모여들어, 웅성웅성대고 있었다. 그거 믿고, 대체 무슨 책이길래 그러냐고 대들었다. -_-; 그러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그 친구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며 “이것보면 모르겠냐”고 외쳤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줄 알았다.
…그 책의 표지엔 “사회학 개론”이라고 적혀있었다.

사회-란 말만 붙어도 사회주의자로 몰리고, 붉은색 표지의 책은 빨갱이라서 읽는 거라고 여전히 몰리던 시절의 이야기. 뭐, 그 보다 10년전엔 그런 책만 가지고 있어도 일단 연행되고 봤다고 하니, 세상이 좋아지긴 좋아졌던 건가.

  • 명랑이님의 「불온서적 부대 반입의 추억」을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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