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게임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

인디 게임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

매년 8월, 독일 쾰른에서는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게임스컴(gamescom)’이 열린다. 신작 소식보다는 곧 출시될 신작 게임을 먼저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행사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은 온라인으로만 열리다가 올해부턴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행사로 돌아왔다.

행사 관련 소식을 챙겨보는데, 특이한 행사가 하나 보인다. ‘레트로 에어리어(retro area)’다. 고전 콘솔 게임기나 PC 게임을 위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레트로 게임기나 게임 소프트웨어를 거래하는 행사는 많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게임스컴답게 옛날 게임을 다시 체험하는 재미가 핵심이긴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출처=게임스컴 홈페이지
gamescom retro area

세상에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패미컴, 90년대에 나온 드림캐스트 같은 레트로 게임기를 위한 신작 게임이 게임팩과 게임 CD로 ‘지금도’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먼저 고전 스타일 게임을, 복잡하지 않고 간단한 게임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다. 구형 게임기의 게임팩을 쓸 수 있는 게임기도 있고, PC나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도 있다. 무엇보다 이젠, 게이머도 게임 개발자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만들고 팔고 사서 노는 사람들이 적당한 규모를 유지한다면, 시장이 유지된다. 만세!

레트로 게임 부흥 뒤에 숨겨진 인디 게임

이런 흐름이 그냥,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지난 십여 년간 빠르게 성장한 인디 게임 시장과 인디 게임 개발자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인디 게임은 인디 영화나 인디 음악처럼, 특정 회사나 자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이나 작은 팀이, 적은 금액으로 만든 게임을 말한다. 창의성이나 예술적 실험, 독자성은 인디 게임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지만, 사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출처=Elden pixels
패미컴용으로도 출시된 레트로 스타일 인디 게임, Alwa's Awakening

지난 50년간 게임 산업은 큰 변화를 몇 번이나 겪었다. 게임 시장이 처음 생긴 1970년대부터 시작해, 망했다가 부활한 80년대, 3D 그래픽 기술을 도입한 90년대,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2000년대 그리고 스마트폰이 등장한 2010년대까지 숱한 찬사와 비판을 함께 받으며 성장했다. 이렇게 시장이 커지면서 게임 개발은 점점 더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되어 갔다. 흔히 AAA 급이라 부르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선, 수년간의 개발과 수백억 원의 개발비가 당연히 여겨질 정도로 변했다. 문제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다 재미있는 게 아니듯, AAA 급 게임도 마찬가지라는 것.

출처=Mojang
세상을 바꾼 게임 마인크래프트도 처음엔 인디 게임이었다

2010년 초반, 인디 게임은 이런 시장 상황에서 급격히 떠올랐다. 투자자의 압박에서 자유롭기에, 다양한 창의적 시도를 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임이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인크래프트’다. 나중에 MS가 인수하긴 했지만, 개발사 모장 스튜디오(Mojang Studios)는 세 명으로 시작한 인디 게임 회사였다.

그동안 바뀐 게임 생태계도 인디 게임 보급에 한몫했다. 과거 인디 게임이 유통망을 찾지 못해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면, 인터넷 보급과 함께 다운로드 방식으로 게임을 파는 스팀과 같은 게임 마켓 플레이스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같은 콘솔 게임기에서도 디지털 다운로드 게임을 판매하기에, 가정용 게임기로도 팔 길이 열렸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게임 시장도 커졌다. ‘앵그리버드’나 ‘식물 vs 좀비‘ 같은 간단한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소규모 개발자가 많아지기도 했다. 게임 개발 환경도 좋아졌다. 유니티 엔진 같은 쓰기 쉬운 개발 도구가 보급됐다. 레트로 게임 스타일의 도트 그래픽으로 만든 게임도 재미있다면 팔리는 걸 알게 됐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초기 제작비를 모금하는 방법도 생겼다. 거기에 더해 트위치, 유튜브 라이브에서 진행되는 게임 실황 생방송 같은 콘텐츠에 많은 시청자가 몰리면서, 인디 게임을 알릴 방법이 많이 늘었다.

인디 게임이 주는 다양한 즐거움

지금 인디 게임은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장 주요 게임 웹진과 시상식에서 올해의 게임으로 뽑힌 인디 게임만 해도, 2012년 ’저니(Journey)‘를 시작으로 2017년 ’에디슨 핀치의 유산‘, 2019년 ’Untitled Goose Game‘, 2020년 ’하데스‘, 2021년 ’It Takes Two‘ ’인스크립션‘등 점점 늘고 있다. 최고 게임으로 뽑히지는 못했어도 ’언더테일‘ ’림보’ ‘데드셀’ ‘스타듀밸리’ 등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이 한둘이 아니다.

출처=itch.Io 홈페이지 캡처
인디 게임 전문 플랫폼 itch.Io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우선 인디 게임이 주는 다채로운 즐거움이 있다. 올해 많은 화제를 모은 고양이 게임 ‘스트레이’를 보자. 먼 미래, 지상에서 로봇이 사는 지하로 떨어진 고양이가 되어, 지상으로 탈출해야 하는 게임이다. 인류가 사라진 미래 세계와 그곳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행동을 실감 나게 묘사해서 (고양이 집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다른 동물로 장난을 치고 싶다면 ‘염소 시뮬레이터(염소로 도시를 파괴하는 게임)’나 ‘Untitled Goose Game(거위로 인간을 골탕 먹이는 게임)’도 있다.

좀 더 색다른 경험도 가능하다. ‘페이퍼 플리즈’라는 게임은 어떨까?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독재 국가의 검문소 심사관으로 일하면서,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입국 심사를 맡게 된다. 여행객이나 범죄자 같은 다양한 사람들을 심사하는 심심한 게임 같지만, 이 게임에서 입국을 원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게이머에게 호소하거나, 회유하거나, 매수하려고 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시대의 부조리함을 게임으로 느낄 수 있다. 컴퓨터에 담긴 인터뷰 영상을 확인하면서 사건을 추리하는 인터랙티브 게임 ‘허스토리’도 추천할만하다.

AAA 급 게임은 다룰 수 없는, 한 시대나 사회의 비극과 직접 대면하기도 한다.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육성 시뮬레이션으로 만든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다들 한번 해봤으면 하는 게임이다. 과거 대만의 비극을 다룬 공포 게임 ‘반교’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자라나는 씨앗’에서 만든 독립운동 게임 ‘MazM:페치카’나, 자살 예방 게임 ‘30일 어나더’도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사회적 영향력을 함께 추구하는 좋은 게임이다.

다른 게임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인디 게임은 정말 많다.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아픔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플로렌스’를 추천한다. 이사와 함께 하는 성장, 정리 정돈의 즐거움은 ‘언패킹’에서 느낄 수 있다. 숲을 산책하고 싶다면 ‘파이어워치’를 사도 좋겠다. 아름다운 그래픽을 자랑하는 퍼즐 게임 ‘고르고아’는 정말 재밌게 즐겼다. 최신작으로는 한편의 범죄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주는 ‘애즈 더스크 폴즈’가 있다. 솔직히 추천하고 싶은 인디 게임은 많아도 너무 많다.

인디 게임이 바꾸고 있는 세계

게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게임 연구가 제인 맥고니걸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 ‘누구나 게임을 한다’와 여러 강연을 통해 게임은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를 갖추게 하고, 거기서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태어난다고 말한다.

유감스럽지만, 게임이 직접 세상을 바꾸진 못했다. 최소한 책이 나오고 10년이 지난 지금, 게임이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지 평가해 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가끔 세상을, 또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놓기도 한다. 반면 게임은 그렇지 못하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산업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는 게임이 가끔 있을 뿐이다.

다만 게이미피케이션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게임화한 사회라고 해야 하나.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많은 사회적 활동, K팝 스타들의 팬클럽 등의 활동은 실제로 게임과 비슷하다. 신입사원이 매뉴얼을 원하고, 이곳의 규칙을 파악하고, 자신이 해야 할 미션을 찾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삶을 스테이지로 나눠 구분하는 인식도 널리 퍼졌다. 제인 맥고니걸의 말처럼,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가 형성되고 있는 과정이다.

거기에 인디 게임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발자를 공급한다. ‘나도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게임 업계로 끌어들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사실 인디 게임 대부분은 평가가 낮다. 그저 베끼기에 급급하거나, 자극적인 소재를 쓰거나, 실력 없는 사람이 만든 게임도 많다. 그러면 뭐 어떤가. 뭐든 시작은 다 그런 법이니까. 그런 쓸데없어 보이는 것이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우고, 작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으로 커간다. 게임스컴에서 선보인, 이걸 누가 살까 싶은 게임도 만들어지는, 레트로 게임기용 게임들처럼.

About Author


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 프로필 : https://zagni.net/about/ 브런치 : https://brunch.co.kr/@zagni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zagni_ 이메일 : happydiary@gmail.com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