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최진실을 죽인 것은 악플일까?

자살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살 자체를 나쁜 일로 보는 시선(기독교, 칸트, 헤겔 등), 다른 하나는 자살을 일종의 권리로 보는 시선(공리주의적 관점)이다. 지배적인 관점이 자살을 부정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자살이 미화된다면, 사회공동체의 지속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그 안에서는 다시 두가지 관점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타살(뒤르켕)로 보는 것이다.

 

이 중 어떤 관점을 택하는 가에 따라, 자살의 원인을 찾는 시선도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자살의 원인을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살의 원인이 개인의 정신장애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악플러 때문에 죽은거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살을 사회적 타살로 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자살한 사람은 말이 없다. 그렇기에 자살의 원인을 똑 부러지게 둘로 나눠서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살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접근과 사회 구조적 접근,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최진실을 죽인 것은 악플일까?

 

최근 한나라당은 최진실의 자살 사건을 빌미로,기존에 추진했던 사이버 모욕죄와 인터넷 실명제를 근간으로 한 일명 ‘최진실법’을 상정하겠다고 밝혀논란이 일고 있다. 최진실의 자살에 악플이 끼친 영향이 큰 만큼, 이번 기회에 인터넷 악플을 근본적으로 없앨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한나라당이 최진실의 자살을 이용해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일단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최진실을 죽인 것은 악플일까? ‘사채설’을 둘러싼 악플 때문에 최진실이 상처받았고, 그래서 자살을 택한 것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의심해볼만한 여지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80년대후반 갑자기 활동을 정리했던가수 이지연이 최근 밝힌 것처럼, 연예인을 둘러싼 루머는 예나 지금이나 있었고 그 내용도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인터넷을 통해 그 확산 속도가 더 빨라졌을 뿐이다(만약 대상이 일반인이었다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실제로 최진실의 자살은최고스타의 자리에서 밀려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전 남편의 재혼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고통, 그리고 사채설의 유포에 의한 심적 고통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도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나 그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병행하지 않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이 모든 것은 기사 보도에 따른 추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악플 하나 때문에 자살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사채설’에 관련된 문제는 ‘연예인 루머 유포’에 관련된 문제지 ‘인신공격성 악플’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다.

 

 

정보의 배포자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누군가는 “루머를 생산한 것은 아니지만, 그 루머를 유포한 것은 악플러들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건을 분명히 보자.악플러를 공격하는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루머를 유포한 장본인이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이다. 이미최진실과 안재환 자살을 둘러싼 언론들의 선정적 태도는 많은 비난을 받은 바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증권가 찌라시에 올라간 정보를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이번 사건은 네티즌의 추측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 증권사 직원이 루머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 다음, 그것이 증권가에 떠돌고, 기자들 사이에서 회람되고, 그 사실을 최진실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해 알게 만들고,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언론이다. 이것이 바로 ‘루머 유포’ 사건과 ‘인신공격 악플’ 사건의 차이다. (연예인의 죽음 뒤에 미니홈피에 달린 악플 같은 것과는 다른 문제다.) 결국 정보를 배포해 놓고, 그 정보 때문에 발생한 악플러들을 공격하는 것이 지금 몇몇 찌라시 언론의 정신분열증적 태도다.

 

그러니 한나라당은 사건 원인을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그냥 기회가 생기는 듯 보이니까 에라 좋구나-하고 묻어가려는 형국이다. 악플은 매우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악플은 전체 댓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이번 사안과는 상관관계는 의심스러워도 인과관계는 없다. 반면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라 법을 개정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침묵의 복종’ 현상이 생길 우려가 크다.

 

따라서, 보다 깨끗한 인터넷 환경이 더 나은 토론 문화를 만들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정 원한다면 네티즌을 처벌하기 이전에, 찌라시 기사들을 양산한 언론들을 먼저 처벌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숨겨놓은 최진실 법의 비밀

 

현재 한나라당이 ‘최진실법’이라고 명명한 법안들은, 아직 확실히 무엇인지 내놓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주장했던 정보통신망법 개정 및 사이버 모욕죄 신설이 주된 골자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정보통신망법 개정은 ① 인터넷 실명제 확대 ② 포털 사이트에 게시물 모니터링 의무 부과  ③ 불법 정보에 대한 판단을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린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신고가 들어온 게시물은 즉시 삭제나 블라인드 처리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사이버 모욕죄는… 아직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결국, 맘에 안드는 인터넷 게시물을 때려잡을 수 있는 몽둥이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다른 야당들의 주장대로, 명예훼손등의 문제가 현재의 사법 체계내에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명예훼손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경찰이 지금까지 되는대로 다 잡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갑자기 좀더 강도 높은 법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첫째로, 자기 검열의 내면화를 통해 위험한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효과를 들 수가 있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터넷 자체에 재갈을 물리거나, 통제를 하겠다는 의혹이 더 크게 든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제출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인터넷 실명제 적용 사이트 숫자가 늘어난다면, 적용 대상 이용자 수도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51.5%에서 74.5%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한국 국민이 이용하는 대다수 사이트의 이용자를 포함하는 규모로, 이대로 된다면 경찰은 각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의 행동 대부분을 감시할 수가 있다.

 

네티즌 활동 대부분을 감시하고, 이에 대해 간단히 신고를 통해 통제할 수 있고, 그 정보의 유해성에 대한 판단을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 간단히 말하자면, 법에 기반하지 않으면서도 네티즌들의 활동 자체를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인터넷 권력’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이런 법안이 실제로 실행되었을 경우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뻔하다.

 

인터넷에 글 올리는 사람들은 강력한 필터링, 아니면 선검열 시스템을 통해서만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사람들은 더이상 글을 올리지 않게 될 것이며, 이제 아름답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블로그나 동영상 UCC의 규모는 대폭 축소될 것이고, IT 산업 자체가 축소될 우려도 있다. 사람들은 20세기 후반, 와레쯔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외국의 서버에 둥지를 틀고, 감시자의 눈을 피해 돌아다닐 것이다.

 

법무사에선 인터넷 평판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제공할 서비스는 간단하다. 인터넷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누군가에게 안좋은 글이 올라오면 바로 삭제요청을 해버리면 된다. 맞다, 이러면 인터넷 알바의 합법화를 통해 구직란이 조금 덜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새롭게 돌아오는 한 시대를 맞게 된다. 바로, 90년대 후반, 인터넷 원시시대다. … 역사상 이런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 나라가 있긴 있었다. 바로 18세기 프랑스다. … 물론 그 결과는,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오긴 했지만(해롤드 이니스,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프랑스’편 참조).

 

 

욕할 것은 악플이 아니라 당신들의 욕망이다

 

유감스럽게도, 악플, 일명 플레이밍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우리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 좀 점잖거나 그렇지 못한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이는 사람들이 어리거나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인간이 어떤 정보를 만들어내는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라면 나쁜 평은 없고 좋은 평만 존재하는 상품후기 게시판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물론 심한 악플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악플이 지나치면 오히려 정보의 생성과 흐름을 차단한다. 지나치게 맑은 물에서도, 지나치게 흐린 물에서도 고기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시스템과 사람들의 합의다. 그 과정은 조금씩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일명 ‘선출판-후여과’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흔히 추천/반대 제도라고 불리는 것이 좋은 예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어리석은 욕망이다.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통제를 통해 우리가 잃을 것이 훨씬 더 많다는 말이다. 지금 정부가 방통위를 내세워 만들고자 하는 ‘최진실법’은, 인터넷을 방통위의 지배하에 넣고 편한대로 관리하겠다는 ‘파시스트의 욕망’이 읽힌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것은 그들의 권력이겠지만, 잃을 것은 우리들의 민주주의다. 자고로 눈에 보기 좋은 것만 남기고 보기 나쁜 것은 없애야 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쳐넣고, 더 많은 사람들의 입을 닫아버린다면 과연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글쎄, 그랬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왔던 ‘민주주의’는 모두 헛소리였다는 것이 된다. 시민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통제하지 말고 지원하라. 한나라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통제의 욕망을 거둬야한다. … 애시당초 당신들 공약이 ‘최대한 규제를 철폐하겠다’라는 것 아니었나? 당신들 공약은 대기업에만 적용되고 포털사이트 같은 IT 기업이나 시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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