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이명박은 되지 말자.

이글루스 운영정책이 변경된다. 네이트온 이용자들의 가입 가능, 만14세 이상도 가입 가능하도록 변경. 네이트온 아이디로 가입가능한 것은 별 신경안쓴다. … 회원DB 통합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다만, 미성년자 가입가능 조치는 불만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게,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거다. 안다. 우리는 이용자고 이글루스는 SK란 회사 소속이다. 우린 하숙생이고 SK는 하숙집 주인이다. 하숙집 주인이 어린 애들도 받겠다는데 받아야지, 뭐 할 말이 있을까. 그런데 말이다… 우린 여길 ‘하숙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집’이라 생각했었단 말이다.

성인만 하숙할 수 있다고 해서, 다른 하숙집들보다 뭐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끔 들려서 놀고가는 사람들 중에 어린애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민증 위조해서 들어와 있는 애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하지만, 성인들끼리만 모여있으니까, 아니면 덕후들이 많이 있으니까, 우리끼리 생긴 문화도 있고 코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야한 사진 방문에 붙여놓은 애들도 있고, 망콘x 처럼 방에다 놀이터를 차린 애들도 있었다. 야한 사진 나눠주면서 애들을 사로잡았던 레진도 있었고, 동인 얘기 즐기면서 수다떨던 친구들도 있다. 시덥잖은 얘기로 서로 난장판 벌리던 쌈꾼들도 있고, 이쁜 척 잘난 척 하며 살아가는 왕자/공주파 애들도 있다. … 근데, 그게 우리가 만든 코드고, 우리가 만든 문화다.

최소한 어린 애들은 아니니까-라는, 여기서 하숙하는 애들은 그래도 성인이니까-하는 그런 것들. 어디가면 꼴좌파에 꼴우익이란 소리를 듣는 애들도, 맨날 치고받고 싸우는 애들도, 또는 무심한듯 쉬크한 쿨게이들도,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여기서는 말이라도 통하는 것 같고, 꼴꼴스럽거나 쿨쿨스러워도 다른 이들이 관심은 가져주니까 있는 거다.

어쨌든 여기 사는 애들은 성인이니까, 옆 방에서 응-응-거려도 “시끄러-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해-” 라고 말하며, 벽 한 번 치면서 끝날 일이 된다. 이글루스 지식인 도와주세요-하고 물어볼 수도 있고, 실연 당했다고 스타일 구기면서 울수도 있다. 그게 엇비슷한 또래들의 감수성인거고, 그래서 놀 수도 있고 위로 받을 수도 있는 거다.

… 최소한, 싸이월드적 감수성은 여기서 별다른 취급 받지 못한다. 귀여니 스타일은 존대받지 못한다, 그 정도의 자의식 과잉, 또는 자부심은 있었다. 그게 우리가 만든 문화다. 우리는 여기서 살아왔고, 이 안에서 살아가는 스타일을 만들었다. 우리가 아니면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들도 많이 만들고, 쌓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어린 애들이 설치며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봐라. 물론 정책이 바뀌었다고 당장 애들이 들어오진 않을거다. ‘거긴 오덕들만 사는 곳이래-‘하는 소문도 있을거고, 거주민들의 냉대-라는 것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야한 사진 방문에 붙여놨던 애들은 떼야할지도 모르고, 응-응-거리던 애들은 응응거림을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 님하- 그래도 단군이 세계의 지배자였삼-하는 징징거림을 들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 것 몇번 겪고 나면, 귀찮아서 이 곳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들 불안해 하는 것은, 멀쩡히 잘살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겪기 싫다는 거다.

물론 하숙집 주인이 하숙집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어려울 수도 있다(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다른 하숙집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짜증날수도 있고, 여기저기 여러채의 하숙집을 운영하다가 이번 기회에 통합 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마-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 거다.

주인이라고 하숙생들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거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면 그런게 있다고, 미리 양해라도 구하는 것이 도리다. 내가 밖에 나가서 ‘우리 이글루스’라고 말할 때 그 이굴루스는 SK 소속의 블로그 서비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와 문화, 그래서 맺어진 인연과 일어났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말하는 거다.

근데 이게 뭐냐. 이제껏 ‘우리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힘없는 하숙생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드러나서, 민망해 죽을 지경이다. 뭐, 애시당초 ‘난 하숙생인걸 이미 잘 알고 있었지-‘하는 쿨한 친구들이야, 별 다른 반응이 없겠지만… 왠지 딱- 이명박식 소통과 마주친 기분이다. 일단 사건 벌리고 나서, 이건 다 너희들을 위한 일이었다- 어차피 소고기 다 먹을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기분이다.

어찌되었건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겠지. 하숙집을 떠나면, 그동안 이 안에서 쌓아왔던 많은 인연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도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망콘이 떠나고, 레진이 떠나고, 이규영은 뭐하는지 모르겠고, 쿄코님은 꿍해계실 것 같고…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다 떠나고 나면, 그 집은 그 집이어도 그 집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사람 좋아서 살아가는 것이지 집이 좋아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 공지가 … 왠지 나에게는, 그동안 잘 지냈으면 이제 방 비워주고 좀 나가라는 소리로 들려서, 많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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