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아주 놀라운 풍경이 거기 있었단다. 그것은 대안없는 비판으로 무장한 몇몇 좌파들만의 집회가 아니라, 초등학생 꼬마부터 아줌마, 할머니까지 손에 손에 우파의 노골적인 배타주의를 비난하는 피켓을 들고 모여있었단다. ‘옳은 것’이라는 신념이 그 꼬마들을, 보통의 서민들을 집회장으로 끌어들인 것 같더란다. 거기서 은정씨는 ‘신나게’ 데모를 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단다. 오면서 프랑스인들의 자유주의 정신과 가능성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진정으로 존경스러웠다고 한다. 물론 그날 밤 유색인종들의 상점은 부서지고 깨지는 테러를 당했단다.
역으로 가는 길에 거지들이 보인다. 유럽에선 흔한 거지들이라 난 이미 익숙해졌다. 그러나 은정씨는 그들을 보면서 가슴 아픈 얘기 하나를 해준다.
프랑스에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온 경찰이 비상에 걸려요. 바로 Homeless, 거지들이 동사하지 않도록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서지요.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거지들을 강제로라도 따뜻한 수용시설에서 재우려하고 그러면 거지들은 항의를 해요. 우린 우리가 있고 싶은 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
은정씬 잠시 말을 끊었다 다시 잇는다.
내가 한국에서 최일도 목사님이랑 같이 일한적이 있었어요. 왜.. 그 밥.퍼 라는 책으로 요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그 목사님 말이예요.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청량리에서 빈민활동을 하시다가 기막힌 꼴을 보셨다고 하더군요. 무척 추운 겨울날이었대요. 청량리역 근처에는 부랑자들이 많아서 아무대서나 잠을 자잖아요. 그날은 날씨가 무척이나 추워 거지들이 청량리 역사안으로 들어가려고하다 실랑이가 벌어졌나봐요. 들어가려는 부랑자들… 못들어오게하려는 역무원들… 튼튼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기를 하다 결국 역무원들이 이겼나봐요.
다음날 아침,.한 부랑자가 그 유리문을 붙들고 동사했답니다……
눈앞이 뿌해옴을 느꼈다. 좀 전까지 맑았던 스트라스부르크의 아침 공기가 갑자기 서울의 탑탑한 공기로 변한 듯 난 잠시 숨을 골라야했다.
– 하나물결, 프랑스에서 – 합리주의란 무엇일까? 중에서
한 사람이 메신저로 용산 참사에 대해서 물어본다. 이것저것 대답해 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겨울에 철거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내게 되묻는다. 뭔가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가, 잠깐만-이라 대답하고, 정말 예전에 읽었던 글들을 다시 뒤적였었다. 그리고 겨우 찾은 글을 메신저로 보내줬다. 미안하다고,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냥 이 정도 이야기로 갈음하겠다고.
언젠가부터, 어떤 이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고, 어떤 이에겐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해줘야할 때가 있다. 인권이란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권리는 왜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지. … 그래도 생명권에 대해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는 누구나 상식으로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후, 난 어떤 사람들에게, 생명권이 무엇인지 부터 다시 설명해 줘야만 했다. 뭔가 많이 뒤틀리고 끔찍하다. 경찰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럴때마다 다시, 차근차근, 우리가 잊었던 것들을 기본부터 다시 돌아보게 된다.
… 인권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부러 지워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를 그저 쪽수의 정치, 투표로 뽑으면 모든 것이 만고땡-인 제도로만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는 생명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권리고,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싸움이고, 그 싸움의 결과로 얻게된 희망이다.
답답하다. 이런 얘기까지 다시 해야한다는 사실이.
* 위 글은 예전, 나우누리의 한 통신 모임에 하나물결 누나가 연재하던 여행기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