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회장, 재벌 신문을 비판하다

우연히 재밌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박정희에 의해 ‘밤의 대통령’이란 칭호를 얻은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쓴 책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1965년 9월 22일 중앙일보가 창간됐다. 삼성을 등에 없은 종합일간지 출현에 언론계는 초긴장했다. 한 해 전 동양방송(TBC)을 개국한 삼성이 신문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려한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고 있었다. 중앙일보 창간에 앞서 이병철 씨가 홍진기 씨와 함께 언론사 순방 인사차 우리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내가 작정하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재벌이 어떻게 신문을 만듭니까. 나랏돈 갖고 돈 번 사람이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신문 사업이란 것이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어 우리도 겨우 먹고 살기 바쁩니다. 재벌이 왜 신문에까지 손을 대려고 합니까. 그럴 돈 있으면 신문에 광고나 많이 내 신문사들을 도우십시오.”

….

예상대로 중앙일보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우선 각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대량 스카우트해갔다. 특히 장기영 사장의 입각 후 입지가 흔들리던 한국일보에서 기자들을 많이 데려갔다. … 보급소도 공격을 받았다. 돈을 많이 준다니까 다른 신문사 보급소장들이 중앙일보로 몰려갔다. 이때부터 한국일보 판매망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동아일보도 타격을 받았다. … 삼성의 막강한 자금력이 언론 시장을 교란시켰다. 60년대 후반에 동양방송에서만 한 달에 100억 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상대할 수가 없었다. … 제일기획이라는 광고회사가 만들어져 삼성 광고를 중앙일보에 몰아줬다.

– 방우영,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김영사, 2008, p53~55


이때 당시, 언론의 공공성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재벌이 언론시장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방회장 말은 좀 구라인 것이… 방회장이 ‘밤의 대통령’이란 닉네임을 괜히 얻었겠습니까. 조선일보 역시 나중엔 정부에게 아부하는 신문이었을 뿐…이죠.

그리고 지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제 방송 시장에 뛰어들려 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잃어버린 TBC를 되찾겠다는 기세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종합보도 방송을 시작하려 준비중에 있습니다. 신문이 계속 죽어가는 이 마당에, 종이에는 미련없다 이거죠. 그것도 재벌과 합작으로 말입니다. 이들에게, 방우영 회장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응?)

재벌과 조중동이 어떻게 방송을 먹으려 합니까. 재벌과 조중동에게 팔린 방송이 재벌과 조중동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방송 사업이란 것이 오락 사업과는 달라 공공성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재벌과 조중동이 왜 방송에까지 손을 대려고 합니까. 그럴 돈 있으면 기부나 많이 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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