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전, KBS 에서는….

지난 토요일, 어머니랑 나란히 앉아 MBC 뉴스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뉴스후-는 MB 7개 악법에 맞선 언론노조의 총파업이 주제였습니다. 차분히 조중동의 주장을 하나하나씩 까고 있는데,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TBC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를 보다가,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십니다.

“저때 TBC가 심했지… 심지어 이병철 회장이 전라도 사람들 싫어한다고 해서, TBC에는 전라도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었어.”

“에에? 어머니 TBC에 계셨었어요?”

“아니, 난 KBS에 있었지. 19살에 KBS 들어갔다가 아나운서로 5년정도 일하고, 나중에 MBC 개국하면서 라디오 PD로 옮겨갔잖니.”

에에- 어머니께서 MBC 개국공신(?)이시고, 아나운서하다가 라디오 PD 하신 것은 알았지만… 그 직장이 KBS 였을 줄은 생각을 못했네요. -_-; 아참, 물론 제주도 지국..-_-; 입니다.

▲ 육지에서 높으신 분들 내려오셨을때 찍은 사진.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윤보선이었던가…(?)

그리고 침묵 -_-; 다시 열심히 뉴스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계엄령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왠 계엄령 얘기인가 싶었습니다.

“예전에 계엄령 내리고, 방송국 앞에 군인들 쫘악 깔린적 있었거든”

“언제요?”

“그러니까.. 언제더라… 아무튼 아나운서 할 때였어.”

어머니가 45년생이시니, 19살에 KBS에 들어가셨으면 63년 무렵입니다. 그 이후로 10여년을 근무하셨으니(73년 결혼후 퇴사), 그 가운데 계엄령이 떨어졌다면 박정희 정권 시절, 63년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막기 위해 내렸던 비상 계엄령과, 72년 유신체재 발족을 위해 내린 계엄령, 그 2가지 뿐입니다. 그럼 아마도 63년일텐데…;; 제주도에도 계엄군이? 그건 나중에 다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 당시 사무실에서. 뒤 책장에 꼽힌 것이 음반들이네요.

“그때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땐 방송국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서, 프로그램 내보내는데 엔지니어 하나, PD 하나, 아나운서 하나.. 이렇게 딱 셋 뿐이었거든. … 그래서 아나운서들이 방송시작하기 전까지 대본쓰고 그랬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오더니, 앞으로 자기들 한테 대본 다 검사 맡으라는 거야. 그때 방송국 위쪽에 군인들 사무실이 있었는데… 오전에 출근해서 아슬아슬하게 대본다쓰고, 가지고가면은 자기네들이 뭐 아나, 그냥 휙휙 넘기다가 도장 찍어주고- 그래서 그거들고 다시 방송국와서 방송하고… 그랬지.”

별 시기가 다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려는데, 어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요즘 이명박 정권 하는 것 보면… 꼭 그때로 되돌아가려는 것 아닌가 싶어.”

▲ MBC 근무시절(당시 MBC는 남양방송, TBC는 동양방송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문득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 들어갔던 직장에서 맞았던 계엄령의 기억이, 어머니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공포속에 타인이 나를 감시하고, 타인에게 모든 것을 검열받아야 했다는 그 상황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지금, 그 옛기억을 일깨워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십년을 같이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뭔가 하나를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면서도, 이런 기억까지 떠올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싫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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