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때 TBC가 심했지… 심지어 이병철 회장이 전라도 사람들 싫어한다고 해서, TBC에는 전라도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었어.”
“에에? 어머니 TBC에 계셨었어요?”
“아니, 난 KBS에 있었지. 19살에 KBS 들어갔다가 아나운서로 5년정도 일하고, 나중에 MBC 개국하면서 라디오 PD로 옮겨갔잖니.”
에에- 어머니께서 MBC 개국공신(?)이시고, 아나운서하다가 라디오 PD 하신 것은 알았지만… 그 직장이 KBS 였을 줄은 생각을 못했네요. -_-; 아참, 물론 제주도 지국..-_-; 입니다.
그리고 침묵 -_-; 다시 열심히 뉴스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계엄령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왠 계엄령 얘기인가 싶었습니다.
“예전에 계엄령 내리고, 방송국 앞에 군인들 쫘악 깔린적 있었거든”
“언제요?”
“그러니까.. 언제더라… 아무튼 아나운서 할 때였어.”
어머니가 45년생이시니, 19살에 KBS에 들어가셨으면 63년 무렵입니다. 그 이후로 10여년을 근무하셨으니(73년 결혼후 퇴사), 그 가운데 계엄령이 떨어졌다면 박정희 정권 시절, 63년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막기 위해 내렸던 비상 계엄령과, 72년 유신체재 발족을 위해 내린 계엄령, 그 2가지 뿐입니다. 그럼 아마도 63년일텐데…;; 제주도에도 계엄군이? 그건 나중에 다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때 낮 12시에서 1시 사이에 나오는 가요 프로그램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땐 방송국이 지금처럼 크지 않아서, 프로그램 내보내는데 엔지니어 하나, PD 하나, 아나운서 하나.. 이렇게 딱 셋 뿐이었거든. … 그래서 아나운서들이 방송시작하기 전까지 대본쓰고 그랬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오더니, 앞으로 자기들 한테 대본 다 검사 맡으라는 거야. 그때 방송국 위쪽에 군인들 사무실이 있었는데… 오전에 출근해서 아슬아슬하게 대본다쓰고, 가지고가면은 자기네들이 뭐 아나, 그냥 휙휙 넘기다가 도장 찍어주고- 그래서 그거들고 다시 방송국와서 방송하고… 그랬지.”
별 시기가 다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려는데, 어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요즘 이명박 정권 하는 것 보면… 꼭 그때로 되돌아가려는 것 아닌가 싶어.”
그제서야 문득 깨닫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 들어갔던 직장에서 맞았던 계엄령의 기억이, 어머니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공포속에 타인이 나를 감시하고, 타인에게 모든 것을 검열받아야 했다는 그 상황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지금, 그 옛기억을 일깨워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몇십년을 같이 살았지만, 어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뭔가 하나를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면서도, 이런 기억까지 떠올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싫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