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미로 얘기하자면, '다름을 인정해달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맞아요.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지요. 살아온 환경, 개인적 경험, 독특한 습관... 그러니 서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것을, 일일이 왜 좋아하는지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때 쓰는 말이 바로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다.
예를 들어 내가 BL을 좋아하는 남자이건 아니건(모님 패러디...), 롱부츠에 패티쉬가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가젯 오타쿠이건 아니건, 예술 영화를 싫어하건 말건, 소녀시대보다 카라를 더 좋아하건 말건... 그걸 일일이 누군가에게 설명해야만 한다면, 얼마나 피곤할까요. 아니, 애시당초 연애하는 사람들한테 '너 그런 애랑 왜 연애하냐?'라고 묻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잖아요.
부정적 언사에 대한 대답, 취존중
앞서 살펴봤듯, 취존중은 상대방의 '부정적 언사'에 대한 대답입니다. 부정적 언사에 대한 대답인만큼, 그 말은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취존중'은 다시 한번, 대화의 단절을 낳는 발언인 것만큼은 맞습니다. 그런데요, 그렇다고 해서 꼭 취존중이 부정당해야만 할까요?
물론 취향은 바뀌고, 모든 것을 취향이란 말로 끊어버리는 것은 어떨 때는 좀 못되게 느껴지기도 해요. 왜냐구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끊어버리니까요. ... 하지만 취존중이란 말이 나오기 전에,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갈 수 있는 비밀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그러니까, 취존중이 무례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하고픈 말을, 내가 당신과 계속 얘기하고 싶은 욕심을 끊어 버리는 것에 있으니까요.
여기서 취존중이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당신과 취향이 다른 사람과는 애시당초 얘기하지 않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래리킹이 자신의 책 '대화의 법칙'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당신이 관심을 갖는 이야기에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가능한 한 예의를 다하면서 대화를 관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 ... 굳이 지겨운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장 간단한 비결인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는 당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BL를 좋아하는 어떤 남자가 있다고 합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남자가 BL 같은 것을 왜 좋아해요?"
...뭔가 부정적인 질문입니다. 이럴 경우 상대방은 '취존중'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죠. 그렇지만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BL 좋아하세요? 요즘 어떤 작품이 읽을만 한가요?"
랄랄라. 물론 질문을 하는 사람이 BL을 정말 정말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상대를 잘못 찾은 것이니 애시당초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취존중'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신, 당신은 흥미진진한 BL 세계(?)에 대해 하나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변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을 뿐인 겁니다. 다름에 대한 존중은 그냥 말로서 존중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주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이 그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가 이야기할 만한 것을 물어봐 주세요.
그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 다음엔 당신에게 물을 겁니다(관계의 황금률).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 물론, 맘에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친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말입니다. ^^
* 쓴귤님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를 읽다가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