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리고 봉하마을의 마애석불

지난 4월 22일, 봉하마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별 일은 아니었고 그냥, 혼자서 다녀왔었다. 진영역에서 내려, 한 가게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먹었다. 여기서 봉하마을까지 머냐고 묻고, 그릇을 비운 후 계산을 하려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놀러온 옆 가게 아주머니에게 그런다. 이분 ‘노무현 생가’에 가신다고.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거긴 가서 뭐할라꼬? 노무현이 다음 주면 구속된다는데.

그 말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적의에 흠칫 놀랐다. 버스를 기다리기 어려워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아저씨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내가 같은 고향 사람이라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만…” 이번엔 아저씨에게, 노무현 대통령을 감싸는 이야기를 한참 듣고 있어야만 했다.

봉화산의 마애석불

막상 찾아가긴 갔는데, 마을은 적적했다. 여기저기 진을 치고 앉아있는 기자들, 가끔씩 들어오는 관광버스의 관광객들. 그것을 빼면 마을은 조용했다. 마을을 한바퀴 다 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서울에 올라가기 뭐해서 봉화산에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팔라서 놀랐다. 그 산에서, 세 불상을 만났다.

하나는 ‘호미든 관음상’. 봉화산의 꼭대기에 있다. 다른 하나는 법화경 제5 종지용출품의 한 장면을 나타내는 보살상. 땅에서 보살이 솟아나는 모습으로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진영 봉화산 마애불’이다. 1970년대에 발견된 여래좌상으로, 봉화산의 중턱 바위틈에 끼어 옆으로 드러누운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너무 허전했기 때문이다. 바위에 도톰하게 불상이 새겨진 것이 전부였다. 왠지 시간이 오래 지나 빛바래진 그림을 보는 기분이었다. 뚜렷하고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들만 가득찬 세상에서 살다가, 이런 불상을 보니 뭔가 속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마애석불을 지나 계속 등산을 하는데, 아까 본 그 불상이 자꾸 생각났다. 그 흐릿하고 뚜렷하지 않은 얼굴이, 자꾸 보고 싶어졌다. 다른 부처상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더 그랬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에 다시 들렸다. 그러니 왠걸, 이젠 저 흐릿한 얼굴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말없이 웃으며 누워있는 얼굴이 바보 같기도 하고, 머리 뒤로 따뜻하게 내려앉는 오후의 햇살도 정겹고, 그 얼굴과 어깨를 따라 쪼르륵 돌아다니는 여치도 반갑다. 많이 포근한 풍경에, 말없이 십여분을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슴 안에 와서 박히는 천년의 세월.

…천년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세상사 다 일장춘몽에 불과한 것. 지나고 나면 다 덧없고 덧없는 것.

노무현의 꿈, 노무현의 죽음

결국 그날, 나는 그냥 허탈하게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만 했다. 하긴 뭐 특별하게 할 것이 있어서 내려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노무현의 꿈을 보았다. 그 마을에는 곳곳에 노무현의 꿈이 배어있었다. 노란색 오리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미래를 타진하던 사람들, 푸르게 여물고 있던 논밭의 곡식들.

거창하게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뭔가 해보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마을이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변화를 위한 준비가 여기저기 준비되고 있다는 느낌. 그리 나쁘지 않은 설레임. 물론, 곳곳에 진을 친 기자들의 피곤해 죽겠지만 한건 해보겠다는 욕망도 꽤 느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노무현이 오늘 죽었다.

봉하마을을 다녀온 후에 이어졌던 많은 사건들은 잘 알고 있다. 친절한 검찰에서 끝없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흐트러질까봐, 계속 떡밥을 뿌려주시는 통에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입다물고 있었다. 내가 할 말이 없었고, 뭔가 확인되기 전에는 얘기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조금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 빠져야만 했다. 노짱이 죽었다. 정치적 사지에 뛰어들기를 한번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 사내가, 오늘, 죽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죽음의 이름을 달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서거했다.

▲ 4월 22일, 이날 노짱은, 인터넷에 자신을 버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진이 찍히던 시간, 집에는 노짱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함께 있었다.
…그때 노짱은, 글을 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노무현을 존경한 적이 없다.

나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 적이 없다. 그가 참여정부 대통령이었던 시절, 무던히도 많이 비판했고, 씹었던 사람이다. 특히 한미 FTA나 비정규직 문제, 이라크 파병 문제가 나왔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그의 비전에 의문을 품었던 적도 많다.

…그렇지만, 그를 좋아했다.

대통령 선거 전날, 정몽준이 등을 돌렸을때, 친구들에게 투표하자고 미친듯이 전화하고 문자를 뿌려댄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욕할 때 혼자서 그를 옹호한 적도 여러 번. 나는 어제까지도, 그가 직접 뒷 돈을 먹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증거도 없는 그런, 그냥 믿음에 가까운 것. 근거는 없었지만 그냥,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는 김어준의 말마따나, 앞으로 두 번 다시 우리가 가져보기 힘든, 그런 꼴통 대통령. 그렇지만 한번쯤은 분명히 있어야 할, 그런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리고 앞으로, 자칭 보수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도 대충 눈에 보인다. 며칠은 추모분위기일거고, 그러면서도 그가 미화되는 것을 경계할 것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어떻게 대처할 지를 주시할 것이다. 경찰은 지지자들이 열 추모제를 한두번은 허락하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진다 싶으면 바로 진압에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이번 일로 피해받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그래도 수사는 계속해야 한다고 외칠 것이며, 잘 죽었다고 외칠 미친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낙하산식 자리 나눠먹기는 계속 진행될 것이며, 그를 위해 한예종 사태 같은 일은 죽어도 계속 밀고나갈 것이다. … 심지어 그들 스스로 노무현을 팔아먹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정말 분명하다.

권력을 위한 폭력은, 절대 사그러 들지 않을 것이다.

노짱, 세상사 다 잊고, 잘 가세요…

죽음으로 인해 아무것도 바뀌진 않는다. 다만 보수세력들은 손쉽게 때릴 수 있는 상징을 하나 잃었으며, 이제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죽을 때까지 당신들을 향해 칼을 갈게될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전 대통령을 자살까지 이르게 만들었다는 책임론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며, 보수 언론은 자신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 양 도망갈 것이다.

…앞으로 있을 통신비밀보호법, 비정규직법 개정, 안기부법 개정, 집시법 개정, 미디어법 등을 둘러싼 입법 전쟁은 다들 단단히 각오를 하는게 좋겟다. 내년 지방자치제 선거, 내후년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한이 되어 틀어박힐 것이다.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의 죽음을 전해듣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데, 괜히 아프다. 아까운 사람을 하나 잃었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이 메아리친다. 노무현의 자식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생각도 난다. 그 사람들은, 결국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할 텐데, 그 생각에 목이 메일텐데.

… 그렇게 있는데, 마애석불의 얼굴이 떠오르더라. 괜히 그 얼굴이 떠오르더라. 그래, 천년의 눈으로 보면 세상사는 아무 것도 아니지. 어떻게든 살아왔는데, 앞으로 또, 어떻게든 살아가지 못할까.

그러니 노짱, 세상사 다 이제 잊고- 편안하게 가세요. 편안하게 그곳에서, 이젠, 그냥 세상사 신경쓰지 말고, 행복하게 사세요. 남은 건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터이니, 우리가 정말 당신을 편안하게 버릴 수 있도록, 당신도 그곳에서, 그냥, 행복하게 사세요… 정말 이 지겨운 이승, 두 번 다시 생각하지도 말고.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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