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속으로 생각해도 입으로 내뱉어선 안될 말이 있습니다. 늙으신 분들 앞에서 “그냥 돌아가세요”라고 말하던가, 장애인들에게 “병신”이라고 말하던가- 연예인들이 일반인을 “평민”이라고 말하던가… 제가 ‘비하 발언’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누구도 상대방에게,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해도 좋을 권리는 없습니다.
…그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대중매체에서의 발언은 상당히 신중해야만 합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디어에서 한 발언은 전달됩니다. 만약 “남자의 키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라고만 말했거나, “내가 키가 크서 키큰 남자가 좋다”라고만 말했어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미수다에서의 발언은 그 선을 넘었습니다. 난 키가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키가 크니 키 큰 남자가 좋다, 그래서 난 키 작은 남자가 싫다-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키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다 바보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수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도 그런 거였을 거에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충돌하게해서, 각 국 문화의 서로 다름에 대해 알게 만드는. … 유감이지만, 우린 외모로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조건을 따지며 사람을 사귀는 문화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런 컨셉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 ‘깨는 컨셉’으로 잘 나가는 김구라, 지상렬, 신봉선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 선은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자리에서 너무 나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미수다 작가들이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키는 경쟁력이다, 다른 나라 봐도 키 작은 남자들 놀림 받더라, 그래서 나는 키 작은 남자가 싫다-라는 이야기가, “앞 못 보는 사람은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앞 못 보는 사람이 싫다”라는 얘기나 “애도 못 낳는 여자는 여자로 자격없다, 그래서 나는 애 못 낳는 여자가 싫다”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요?
위에서 바보로 만들었다고 썼네요. 아뇨, 아닙니다. 사람들을 모욕한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다 말로 뱉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은 해도 말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져서 불쌍한 인생 따위는 없어요.
…최소한,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남을 비하하는 말은 공중파에서 함부로 하지 마세요.
거울 이미지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사실 저런 생각을 꺼리낌없이 말하고, 설사 대본이 주어졌다고 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럽습니다. 자카린 쇼어는 「생각의 함정」이란 책을 통해, 이런 것을 거울 이미지의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도 다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란 착각에, 저런 이야기를 꺼리낌없이 하는 거라는 거죠.
아마 주변 친구들은 다 저런 이야기에 동조해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키 작은 남자애들 재수없지 않냐? 난 걔들만 보면 진짜 웃기더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대고 웃었을 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방송은 친구들과의 수다가 아닙니다. … 솔직히 말하면, 그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것은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이런 이야기가 도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진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가 이미 ‘조건’보고 연애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실사판 프린세스 메이커(?)도 나올 수 있는 거죠. 왠지 조선 시대에 얼굴도 안보고 시집-장가 가던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찌보면, 또 하나의 거울 이미지겠지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 저 사람도 당연히 조건 따지며 사람을 만나려 들거야-하는 식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미수다에서도 저렇게 얘기한 애가 있으니, 이 사회는 조건 보고 연애하는 사회가 맞아-라고 생각하는. … 저도 입밖으로 내뱉지 말아야 할 말들을 내뱉으며 살고는 있는지, 한번도 돌아보게 되는 저녁입니다.
* 맨 마지막 문단은 사족 같네요. 꼭 한마디씩 덧붙이고 싶어하는 이 버릇, 어찌하면 고칠까요…
* 미수다에서 루저 발언을 한 학생들을 제적시키라는 서명운동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루저 발언을 해서 학교의 명예를 추락시켰으니 제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쟤는 오덕에 안돼여라 학교에 다니면 명예를 추락시키니 제적”, “쟤는 입진보에 좌빨이라 학교에 다니면 명예를 추락시키니 제적”, “쟤는 환빠에 공상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니 제적”, “쟤는 수구꼴통 파시스트적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학교에서 제적” 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뭐가 다릅니까?
…말 한번 잘못했다고 인생 끝장내려는듯 덤비는 사람들, 그런 걸 전체주의, 또는 파쇼라고 합니다. 세상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옳든, 그르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