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맘 때쯤 죽었다. 가수 유니도, 정다빈도… 한참 일이 없다가, 겨우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 딱 그 시점에서.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감, 무엇인가에 쫓기는 기분.. 그 압박 때문이었을까. 매일같이 가위눌린 듯한 기분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것일까. 물론 경찰의결론은 언제나, 우울증이었지만.
…하지만 증상이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증상을 원인으로 얘기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일뿐. 살아남은 사람들의 섣부른 마침표.
어저께는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천안함 실종자 구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 분, 진짜 군인이었다. 그냥 우리가 아는 그런 군인말고,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어떤 군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임무이니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돌아오겠다
– 소말리아 파병전, 해군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 그렇지만, 어쩌면 이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는 부족한 모든 것을 몸으로 떼우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정신력의 승리인양 포장한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한다는 세세한 매뉴얼을 갖추고 있지 않다. 당연히 갖추고 있었어야 할 기본적인 장비들, 기본적인 안전을 위해 제공되어야 할 것들이 충분히 제공되지 못한다.
그런 사건들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어쩌다 한번 일어날 것들에 돈을 써서는 안되니까. 실적과 성과 위주…라고 말을 하면서도, 그 뒤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정치들. 그리고 그 정치에 밀려나는 기본적인 것들… 언제까지 우리는,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기도를 해야하고, 기적만을 바래야 할까.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막을 수 없는 사고가 터진다고 해도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매뉴얼대로 대처하는 모습을, 그래서 당연히 가질 수 있게 되는 신뢰를, 왜 우리는 갖지 못하는 걸까. … 뭔가, 우리가 잘못해서 아까운 사람을 하나 잃었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해 진다. 당신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 것 같은데, 괜히 보는 우리가 미안하다.
한주호 준위의 순직에 대해,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그를 위험한 상황에 내몰수 밖에 없게된 원인을 나중에라도 찾고, 반성해야할 문제다. 안그러면 같은 문제가 언젠가는 다시 반복된다. 누구라도 죽어서 영웅이 되기 보단 살아서 가족들 얼굴 보기를 간절히 더 원할거다…
그리고 오늘은, 한 꽃다운 청춘이 생명을 잃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씨다. 고인은 며칠전 급하게 상태가 악화돼 중환실로 들어갔다가, 결국 세상을 등졌다.
지연씨가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한 건 강경여상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4년 12월이었다. 어머니 황금숙씨는 취업한다던 지연씨에게 “빚이라도 내 줄 테니 2년제 대학이라도 가라”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힘들게 일하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라던 지연씨의 생각은 달랐다. 알코올 중독 증상이 있던 아버지, 급식소 보조로 일하는 어머니, 대학에 다니고 있는 오빠…집안 사정은 빤했다. 지연씨는 자신의 꿈을 접었다. 대신 식구들의 꿈을 택했다.
일이 많아 ‘1일 2교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130여 만원을, 일이 없어 ‘1일 3교대’로 일할 때는 한 달에 100여 만원을 벌어 가며 지연씨는 식구들의 꿈이 이뤄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입사한지 2년 7개월만인 2007년 7월, 속이 미식 거렸고 하얀 방진복에 하혈하는 일도 생겼다. 설마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더 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라는 진단에 이어 대전성모병원, 서울의 여의도성모병원까지 오는 사나흘 동안 가족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 한 번 안 다니고 자랄 만큼 건강했던 지연씨였다. 가슴 졸이며 도착한 여의도성모병원 의사가 지연씨에게 제일 처음 물었던 말은 “화학약품 만지다 왔느냐”였다고 했다.
사흘간 연달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도 멍하고 가슴도 멍하다. 그리고 이제 다가올, 다른 죽음들을 확인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냥, 뭐냐 이게, 뭐냐 이게-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십 몇 년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이무너질 때가 다시 생각나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죽어간,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가족들은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늘상 하는 말이지만, 그건 정말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 막막함과 고통을. 그 억울함과 한을. 가슴을 누가 인두로 지지는 듯한 그 심정을.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 정말, 어쩌면 좋을까…
지난 몇 년간 계속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들 곁을 맴돈다. 늘상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야만 하는 시대다. 행복하기를-이 아니라, 조금 덜 억울하기를- 바래야만 하는 세상.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라서 기도밖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 바라봐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