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추석 내내, 전자책 리더기만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전자책의 충격』은 B-815를 통해 읽었던 책 가운데 한 권입니다. 전자책을 다룬 책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상당히 빨리(6개월만에) 전자책으로 풀렸더군요. 구입가는 6500원(종이책 대비 50%). 조금 낯설고 어색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전자책이 왜 갑자기 문제가 되는 걸까?
전자책이 책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떠들던 것이 10여년 전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왜 갑자기 전자책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저자인 사사키 토시나오의 지적은 매우 간단합니다. “새로운 플랫폼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출판 유통망을 바꿔놓을 지도 모를, 그런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거지요.
그 선봉에 서 있는 것은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마존의 ‘킨들’입니다. 이들은 때론 협상하고,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손해보면서까지 전자책이 유통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때가 바로, 올해입니다. 그럼 그런 플랫폼 구축을 통해 바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토시나오가 말하는 ‘앰비언트’. 항상 우리 곁에 있으면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원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 다시 말해 ‘책의 유통 과정’ 그 자체가 입니다. 예전에는 작가가 책을 쓰고 출판사가 기획, 편집, 유통을 맡으면 독자가 책을 사서 읽는 구조로 되어 있던 환경이, 아무때나 책을 사서 읽을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낯선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음악 산업’이 변해갔던 구조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잘 구축된 초고속 네트워크 인프라, 누구나 살 수 있을만큼 값싸진 전자 기기들(치프 혁명), 콘텐츠 제작 환경의 변화는 먼저 음악 산업에 영향을 미쳤고, 영상 산업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리고 이제 출판 산업에게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정도의 환경이 만들어진 것 뿐입니다.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것이 그리 쉽게 이뤄질까요? 클레이 서키의 지적대로 “손해보는 사람이 없다면 혁명이 아”닙니다. 모든 변화의 뒷 편에는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하게 됩니다. 온라인 서점의 등장이 대형 서점의 확장과 소형 서점의 폐점을 불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책이 앰비언트하게 변해갈 때도, 분명 손해보는 사람과 이익 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에 대해 작가는 분명히 말하기보단, 두루뭉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방법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런 두리뭉실한 방법 속에도 분명, 누가 손해를 보고 이익을 얻게 될 것인지는 눈에 보입니다. 우선 이익을 볼 사람은 결과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사람들일 겁니다. 바로 아마존과 애플-입니다. 영화로 따지자면 플랫폼은 CGV 나 메가박스, 롯데 시네마 같은 영화관 체인들과 비슷합니다.
망하는 것은 당연히 기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던 출판사와 도매상, 서점…들일 겁니다. 이들은 영화로 따지면 기존 극장주, 기존 영화제작자들이죠. 이들의 일부는 ‘플랫폼의 일부’가 되며 살아남을 것이고, 몇몇은 끝까지 저항하다 망할(?) 것이고, 몇몇은 빨리 손을 털고 떠날 겁니다. 아니면 독립 영화관 같은, 전혀 다른 형태의 극장으로 변신해야 살아남겠지요.
이 와중에 작가-들은 이제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플랫폼과 완전히 동떨어진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현명하게 플랫폼을 이용해 살아남던지, 어찌되었건 전혀 다른 생존 방법을 모색해야만 합니다. 초기에야 저작권 문제 등으로 많은 갈등을 겪겠지만, 이 상황은 결코 기존 유명 작가들에게만 유리하거나 하는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토시나오가 책에서 전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의 발리움 라발시크가 2009년 토론회에서 남긴 말은 작가들에게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 이제부터 저널리스트들에게 필요한 기술
- 적합한 타이밀에 적합한 내용의 콘텐츠를 적합한 방법으로, 다양한 미디어에 발신하는 기술
- 다수의 팬들과 이야기해 가며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
-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좋은 콘텐츠를 찾아내 일부는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기술
- 링크로 서로 이어져 있는 웹의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정보를 발신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술
-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다른 전문가들, 그리고 자신의 콘텐츠를 좋아해 주는 팬들과 협력해 가는 기술
– 전자책의 충격, 사사키 토시나오, 커뮤니케이션북스, 118/250
소셜 미디어가 만들 미래의 독서
앞서 살펴보았듯, 사실 이 아저씨(?)가 그리는 전자책의 미래는 단순합니다. 플랫폼의 전환을 변하지 않을 기정 사실로 간주하고, 작가는 다양한 형태로 살아남기를 시도하고, 출판사는 작가를 전방위로 서포트하는 에이전시로 바뀌고, 플랫폼은 애플과 킨들(등의 대형 유통사?)들이 장악할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왠지 어디 비슷한 구조가 머릿 속에 떠오르실 겁니다. 예, 현재 연예 산업계의 구조…와 비슷합니다. -_-; 작가는 연예인이, 독자는 관객이자 팬이 되는 셈이죠. 플랫폼은 공중파 방송사, 극장 체인, 또는 이통사등 대형 기업으로 생각하시면 얼추 들어맞습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어떤 작가가 뜨고 어떤 작가가 질 지-를 결정하는 것은(말하건데, 이런 구조에선 ‘어떤 작품’이 아니라 ‘어떤 작가’가 더 중요하게 됩니다.) 그 작가를 둘러싼 팬들과의 관계, 그리고 블로그나 트위터, 게시판 같은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책은 말 그대로 텍스트-입니다. 어떤 완결된 구조를 갖는, 처음과 끝을 가진 닫힌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게 되는 텍스트가 된다는 거죠.
이제 텍스트는 독자가 생각하는, 또는 초기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배치하는 맥락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속 배치에 즐거움을 찾아낸 독자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며 소비되게 됩니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OSMU(원 소스 멀티 유즈)이기도 하고, 팬픽, 동인지, 드라마 팬카페-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다만 이제까지 그런 것들을 행하는 것에 ‘회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면, 이제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속에서 소통되는 것들이, 그 관계를 만들어주는 중간 영향력자(매개자, 쉽게 말해 파워 블로거?)의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해 진다는 것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렇게 쉽게 세상이 바뀔까
하지만 과연 그렇게, 저자가 말하는 대로 쉽게 세상이 바뀔까요. 애플의 아이팟 효과는 콘텐츠가 미래에 어떻게 소비될 것인지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힌트를 던져주었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 많은 콘텐츠 소비 구조가 애플이 만들어 놓은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지요. 하지만 때론 그것은, 우리에게 일종의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그런 새로운 출판 플랫폼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전의 출판 산업을 약화시킬지 언정, 그 산업이 음반 산업 모델로 전향할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출판 모델, 또는 작가가 놓여지게 된 환경은… 이미 예전에 보여졌던 것입니다. 에이전시 모델은 연예 산업계에서 이미 행해지고 있는 일들로 우리에게 익숙한 상황이고, 자주 출판등 작가의 활동 모델은 60~70년대 시작된 미국 출판계의 동호회(클럽) 문화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또는 꽤 오랫동안, 전자책은 기존 출판 산업 모델과 공존하고, 계속 싸우고, 때론 타협하며 진화할 것입니다. 전자책 리더들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개량되고, 전자책 포맷 역시 모든 리더기에서 읽힐 수 있는 표준 모델로 진화할 것입니다. .. 물론 예측입니다…만, 이제까지 모든 ‘포맷’들은, 그런 쪽으로 발전해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편리한 쪽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한국에선, 예전에 성행했던, 일종의 ‘만화 대여점, 책 대여점’의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저렴한 가격의. 보통 한번 보고 마는 대중적인 컨텐츠들의 소비 기기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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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충격 –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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