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연예인, 그리고 인터넷 모욕주기

1. 어제 화제가 된 연예인 동영상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조금 놀랐다. 이제까지 연예인 동영상이 유포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수로 흘러나왔거나, 돈을 벌려는 목적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방을 ‘처벌’하려는 용도로 섹스 동영상을 유포했다. 뭐냐 이 놈은?

나체 사진을 찍거나 성행위 동영상을 찍어 협박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깡패나 정신이상자(?)들이 상대에게 그런 짓을 해댄다. 이유는 뻔하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고, 때론 영원히 남을 낙인을 찍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이 없었던 것은, 이번 사건의 경우 ‘자신의 친구’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동영상을 유포한다.

법에 이야기할 일을 동영상 유포로 복수하려고 한다. 그것도 깔끔하게 치고 빠졌다. 파일이 아닌 게시물 동영상 삽입이라는 방법으로. 대체 이게 뭐냐? 싶지만-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관심없으므로 여기까지만. 하지만 굉장히 찌질하게 -_-; 여겨지는 녀석인 것은 틀림없다.

2. 모욕 주기는 대부분 법이 아닌 규범-에 관계된 처벌 행위다. 법으로 처벌하긴 애매하지만,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룰을 깨는 행동들에 대한. 그래서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모욕주기는 항상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타진요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사실 모욕 주기는 근대 이전엔 흔한 처벌 행위였다. 고대 로마인은 범법자의 이마에 범죄를 상징하는 문자를 낙인 찍었다. 서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서는, 그런 처벌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감옥 같은 다른 처벌 방법이 생기면서 모욕주기 처벌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모욕주기가 다시 부활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는 매춘을 한 남성의 이름, 사진, 주소를 TV를 통해 방송한다. 오클랜드에서는 도둑들에게 범죄내용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으라고 요구한다. 메사추세츠와 로드아일랜드에서는 체납자의 이름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리고 인터넷은, 우리가 타인을 모욕하는 일에 매일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3. 모욕 주기의 미덕은 분명하다. 점점 무례하고 난폭한 행동이 늘어나는 세상에서, 모욕주기는 사회의 예정과 에티켓 규범을 지키는데 도움을 준다. 개똥녀 사건이후 지하철에 애완동물을 공개적으로 데리고 타는 사람들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기업들에 대한 성토는 우리가 좋은 상품을 고르고, 기업들이 서비스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반면 개인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다. 인터넷 모욕주기의 가장 큰 문제는, 통제하기 힘들다는 점이며, 때문에 누군가의 자아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기가 쉽다. 법은 ‘너는 나쁜 짓을 했다’라고 말하지만 모욕주기는 ‘너는 나쁜 놈이다’라고 말한다. 모욕주기는 공동체에 개인이 다시 합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슬픈 것은,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는 루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별 생각없이 그것이 사실인양 믿는다. 검색으로 얻은 단편적인 정보는 그 사람의 속죄를 반영하지 않는다. 때론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모욕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타블로를 거짓말쟁이로, 최민수를 노인을 때린 나쁜 놈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판사라도 되는 양 누군가를 심판하고 악인으로 몰아간다. 구스타프 르봉이 말한 것처럼 “군중은 범죄자처럼 쉽게 용감해 진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많은 경우 집단이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면 의견이 대립화하는 경향을 띄며, 결국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그 과정의 촉매자는 흔히 트롤이라 부르는 관심받기 원하는 자들이다. 트롤들은 인터넷의 거짓 명예를 얻기 위해 타인을 모욕하는 일에 집중하며, 타인이 그쪽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4. 내가 보는 사건은 간단하다. 사귀다 헤어졌다. 동영상을 올린다고 협박했다. 혼났다. 미국으로 출국해 동영상을 올렸다. 끝. 보통 맞은 사람은 자신이 맞은 것에 집중하지 타인을 모욕주는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동영상을 공개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찌질하게.

…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관련 기사 댓글엔 낚시성 좌표글과 내 이메일로 동영상 보내달라는 댓글이 넘쳐났다. 이런 동영상에 대한 호기심을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이 출연했던 TV프로그램에서 출연 분량을 통편집 당했다. 애인이랑 잔 것이 죄도 아닌데 결국 죄인처럼 딱지가 붙어 버렸다.

올린 놈은 이미 사시미를 쑤셨고, 그 사시미를 쑤시는 데 도와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호기심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누가 그랬는 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누가 찍혔는 지만 기억할 것이다. 먼 훗날에도 여전히 어떤 이들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댓글에 비디오 운운하며 수치심을 주는 놀이를 즐길 것이다.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워 하면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법적으로 잘못한 일이 있다면 법에서 수사하라고 맡기자. 욕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말하지도, 옮기지도, 꺼내지도, 기억하지도 말자. 당신이 망각하고 있는 것을 굳이 꺼내려는 사람이 있다면, 하지말라-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렇기 싫다고? 뭐, 그럼 말고.
그 영상을 올린 트롤의 수작에 놀아나고 샆다는데,
그걸 누가 말리겠는가.

About Author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