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LG에 올라온 황재선님의 글 「개발자가 기획자를 쓸모 없다고 오해하는 이유」를 읽는데, 왠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기획이란 ‘Why to do?’와 ‘What to do?’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써 ‘왜 할 것인가?’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대체 이 문장이 왜 걸리는 거지?라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며칠전 읽었던 책에 나온 문장과 묘하게 겹쳤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류의 비지니스 잡문집, 『무취미의 권유』에 나온 문장과. 그 문장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리더의 ‘자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지녔어도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리더는 조직을 위험에 빠뜨린다. 리더는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 무라카미 류, 무취미의 권유, p78~79
사실 그렇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좋은 리더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도, 비전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조직, 또는 우리가 지금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실은 그 사람이 좋은 리더입니다.
사실 일을 하다보면 지금 이걸 왜하는지, 해서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긴급한 지시라고 해서 실컷 해놓고 나면 됐다고 하기가 일쑤. 해봤자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일도 그저 닥치고 시키는 데로 하라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되면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청대행업자, 까라면 까고 말라면 마는 로봇이 된 기분이 듭니다.
그런면에서 좋은 기획자는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이것저것을 누군가에게 해달라고 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체 흐름속에서 다른 사람이 맡은 역할이 어떤 것인지, 이런저런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납득하고 이해시킬 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이 쉽지 기획자가 늘상 팀장인 것도 아니고, 조용히 사람간의 관계를 조정하며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지만요. 하지만 좋은 리더의 조건을 뽑으라면, 전 분명히 이 점을 들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지 알고 있는 사람, 또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나저나 이 책, 남에게 꼭 읽으라 권하기엔 너무 가볍습니다. 그저 읽기 편하고 독설이 들어간 무라카미 류식의 에세이집입니다. 그렇지만 류의 에세이는, 어떤 이가 읽느냐에 따라 담아갈 것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가끔은 전혀 의도치 않게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거든요.
무취미의 권유 – 무라카미 류 지음, 유병선 옮김/부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