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LG전자에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스타일러스2 플러스’. 5.7인치의 대화면에 펜을 장착한 보급형 스마트폰이다. 잠깐 살펴보는데, 의외로 괜찮다. 풀 HD 해상도, 전면 800만, 후면 1600만 화소 카메라, 3G 램에 32G 저장용량, 셀피용 플래시, 간단하지만 나쁘지 않아 보이는 펜, 무난한 디자인. 지난 3월에 발매한 약 40만 원짜리 ‘스타일러스2’와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한다면, 꽤 쓸만한 보급형 스마트폰이 나온 셈이다. 뭐, 모든 제품은 만져보기 전에는 모르고, 아직 한국에는 출시되지도 않은 폰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관심이 생겨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 보는데, 조금 기분이 이상해진다. 뭐랄까. 진작에 이런 제품을 만들어 내보냈어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이랄까. 생각해 보면 LG전자는 이런 회사였다. 뛰어난 기능을 가진 제품보다는 쓸만한 기능에 예쁜 폰을 만드는. 최고라기보다는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쓰고, 그래서 가끔 쿼티 키보드를 가진 옵티머스 Q나 4:3 화면비의 옵티머스 뷰 같은, 뜬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마니아들에게는 사랑받는 폰을 내놨던. … 물론 좀 팔린다 싶으면 후속작을 만들고, 안 팔리면 바로 시리즈의 맥을 끊는 철학 없는 행보도 계속 보여주기는 했지만.
요즘은 어떨까? 지난 2015년은, 솔직히 말하기도 싫다. G3의 성공에 취해서 ‘정신 못 차리고’ 내놓은 것이 역력히 보이는 그런 물건들. 본질을 벗어나 멋, 또는 욕심에 취해 있던 스마트폰들. 실력도 없으면서 잘난 척하는 그런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LG전자는 그렇게, 자신에게 돌아왔던 단 한 번의 터닝 포인트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오래전 맥스폰/뉴초콜릿폰의 악몽이 떠올랐던 한 해.
2. 관심 있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소니는 2015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냥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소니 부활 원년”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흐름을 바꿔놓았다. 금융 위기 이후 누적 적자 1조, 2015년 초에는 약 500억 엔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극적인 변화다. 이런 반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엔저 효과에 힘입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핵심에 집중해 사업을 재편한 것이 주효했다. 소니의 자존심 같았던 TV 사업은 분사, 컴퓨터 사업부는 매각하고, 모바일 사업부는 축소했다. 대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원래부터 수익을 내고 있었던 생명 보험 등 금융 사업으로 기초를 다지고, 카메라 모듈(이미지 센서) 사업과 게임에 집중했다. 결과는 대박. 이제 끝났다, 죽은 목숨이라고 평가받던 소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 센서나 콘솔 게임 사업은 논할 필요도 없이 소니가 세계 1위다. 세계 1위라는 말은,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소니는 아직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지 못 했다. 하지만 자신감은 넘친다. 히라이 소니 사장의 말대로 대중적인 제품보다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니는 앞으로 이제 누구나 쓸 수 있는 대중적인 제품보다, 소니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소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이미 미래 성장 4대 분야로 디지털 기기/게임/영화/음악을 택했다. 가상현실 헤드셋 ‘PS VR’의 출시는 그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포다.
중국의 샤오미는 다르다.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까지 올라갔었지만 최근엔 3위로 밀려났다. 예전엔 샤오미에 대해 새로운 애플이라고 열광하던 사람들도 많이 시큰둥해졌다.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하고 추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겉만 보면 그렇다. 속을 들여다보면 좀 다르다. 샤오미는 생태계 구축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샤오미는 이제 스마트 기기뿐만 아니라, 가성비를 내세우며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두 만들어내는 그룹이다. 당신은 별 고민 없이 샤오미 제품을 사면 된다, 필요한 것은 모두 우리가 만들어 팔겠다-라는 느낌의.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습관적으로’ 샤오미를 사게 만들겠다는 이야기. 무시하지 마라. 지금은 잡화점처럼 보이겠지만, 소프트웨어는 통합되어 있다. 생태계가 어느 단계에 들어선 다음엔, 사람들은 쉽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지금의 애플처럼.
3. LG 전자의 사업부 구조 재편에 대한 얘기를 얼핏 들은 것이 작년 여름이었다. 모바일 사업부를 줄이고 자동차 부품 사업부를 늘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조금 갸우뚱했던 것은, 소비자 대상 모바일 기기 사업과 기업 대상 자동차 부품 사업은 그 사업 모델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연 LG 전자가 스마트 기기 사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G5 출시 이전까지 별다른 소식은 별로 들려오지 않았다. 2016년 1/4 분기 미래 자동차 관련 미국 특허 정보를 확인하다가 LG 전자의 이름을 잠깐 본 것이 전부다.
G5를 출시하면서, LG 전자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달랐다. 납득하기 어려웠던 G5 가격 정책, 홍보, 모듈 생태계 전략까지. 보는 사람들에겐 전혀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익을 최대화하겠다는 욕심은 보이는데 이걸로 어떻게 뭔가를 바꾸겠다는 패기는 보이지 않았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제품과 함께 회사의 꿈, 이미지를 산다. LG 전자는 좋은 폰을 내놓고도 스스로 망치고 있었다. 결국 들려오는 사업부 재편 소식들. 공식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만, 이젠 다들 알고 있는 LG 전자의 정해진 미래.
앞으로 LG전자는 어떻게 될까? 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가전제품 사업을 중심에 놓고 차량 부품 사업을 키우면서, 스마트 기기 사업은 ‘소니’냐, ‘샤오미’냐를 선택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차별적인 기기를 매력적인 가격에 선보이는 회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양하고 저렴한 기기를 선보이면서 LG전자의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 LG전자는 여전히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보급형 X 시리즈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최고급형 스마트폰에 집중하겠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도, LG가 지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욕심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이후 LG 전자 스스로 증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은 대안은? 사실 선택지는 소니-밖에 없다. LG 전자의 생태계를 만들기엔 이익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았고, 그 덕분에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어버렸다. 결국 다시, 사업 자체는 축소할 수밖에 없겠지만, 최고의 폰이 아닌, 차별화된 기기를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기술은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나처럼 욕심과, 사내 정치다. LG 전자는 과연 혁신할 수 있을까? 언제나처럼, 지켜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