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의 결정된 미래, 결정된 불행

챗봇은 이메일과 같은 혁명을, 스팸 메일과 같은 쓰레기를 낳을 것이다

 

인공 지능 컴퓨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마 영화 ‘아이언맨’이나 영화 ‘그녀(Her)’에서 볼 수 있었던, 목소리만 있는 어떤 존재를 떠올릴 것 같다. 애플 아이폰의 ‘Siri’ 같은 존재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 지능은 이런 것과는 다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간의 오랜 꿈이었던, 인간과 컴퓨터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어떻게? 바로 챗봇을 통해서.

 

영화 엑스 마키나

 

이미 정해진 미래, 챗봇

 

챗봇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채팅하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사람처럼, 인간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문자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또는 서비스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이 단순하니까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마치 친구나 전화 상담원처럼,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답을 얻거나 예약을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대화’다. 문자를 통하든 목소리를 통하든, 대화는 단순히 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떠나서, 인간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다. 괜히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 모른 척하고 말도 안한다-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공 지능’을 가지고 있는 가를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가 인간처럼 느껴지게 대화할 수 있는 가 없는 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다.

그렇다면, 최근 챗봇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인공 지능이 정말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인공 지능이 그런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말하기는 쉽지만 사람처럼 생각하고 대화하는 것은 바둑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대신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 지를 분석하고, 미리 저장해둔 패턴에 기반해 대화를 하는 것은 좀 더 쉬운 편에 속한다.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애플의 SIRI나, 구글 나우, MS의 코타나 같은 음성 인식 기반 도우미가 좋은 사례다. 우리들에게 유명한 ‘심심이’ 같은 서비스나, 2년전에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알려진 ‘유진 구스트만’ 역시 생각하는 인공 지능이라기 보다는 챗 봇의 일종이다. 현재 3대 IT 기업 말고도 위챗, 라인, 카카오톡 같은 주요 메신저들도 간단한 챗봇 기능을 탑재하거나, 탑재할 예정으로 있다.

 

챗봇이 각광 받는 이유

 

여기에 끼여든 것이 바로 페이스북의 챗봇이다. 페이스북의 챗봇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고 검색을 대신해주는 것을 넘어서, 쇼핑을 하거나 택시를 부른다거나 ‘오늘의 의상 코디’를 추천 받는 다거나 하는 일이 가능하다. 챗봇의 대화 기능에 기업과의 연결성을 더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웹이나 여러 앱들을 따로 따로 다운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챗봇은 그 과정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쉽고 편리하다’라는 것이 스마트 라이프에서는 정말 중요하다. 디지털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 많이 넘쳐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일부러 정보를 차단하고, 자기가 쓰는 앱이나 서비스만 계속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작은 회사나 상점들은 새로운 앱을 출시해도, 자꾸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 한 잔 마시려고 그 커피 회사 앱을 일일이 다운 받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럴 때 챗봇은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준다. 그냥 친구에게 말 걸듯 커피를 주문하면, 커피가 나온다. 피자를 주문하면 피자가 오고, 기차표를 사고 싶다면 기차표를 살 수도 있다. 게다가 채팅은 스마트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실제로 2015년부터 메신저앱은 SNS 앱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줄어든다. 일일이 개별 앱을 만드는 것보다 제작비도 싸고,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다.

사람들이 ARS에 대고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챗봇과 얘기하는 것도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 조지아텍에서 온라인 강의 조교를 ‘질 왓슨’이란 이름의 챗봇에게 맡긴 결과, 강의가 끝날 때까지 학생들은 그녀가 챗봇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몰랐다. 그렇게 사람이 모르도록 행동하는 것이, 챗봇이 가진 큰 장점이다.

 

 

어쩌면 챗봇이 낳을 무서운 미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챗봇이 널리 쓰일 수록 발생할 문제도 정말 많다. 불륜 조장 사이트로 유명했던 애슐리 매디슨을 기억하는가? 애슐리 매디슨이 해킹당한 결과 회원 정보가 공개되었고, 약 5%의 여성 회원과 95%의 남성 회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적이 있었다. 문제는 당시 공개된 5%의 여성 회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 인간이 아닌, 이 챗봇이었다는 것. 꽤 많은 남성들은 이들이 챗봇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돈을 지불하며 대화를 했다.

‘소셜봇’이나 ‘애스트로터핑’으로 불리는 불리는 문제도 있다. 일종의 여론 조작이다. 사람인 척 행동하는 챗봇들을 SNS에 풀어놓고, 그들이 특정 여론 조작을 위한 글과 반응을 계속 생성해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실험한 결과가 2년 전에 발표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계정이 인공 지능이 운영하는 가짜 계정이란 것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대선 과정에서 챗봇을 사용 금지 시키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미 한국에선 ‘인간 챗봇’들이 이런 화려한 초식을 오래 전에 선보인 적이 있지만, 이제 그런 것들을 챗봇들이 대신할 수 있다. 챗봇이 인간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면 할 수록, 그에 따르는 문제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고객 문의 전화나 웹사이트 고객 문의와 마찬가지로, 챗봇들이 하는 많은 일들은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회사의 비용을 줄이는 일’을 고객들에게 시키는 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미래, 챗봇

 

그래도 챗봇은 대세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아진다면, 분명히 회사 고객 담당자들이 해야할 일들을 많이 가져갈 수가 있다. 더 많이 더 싸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싼 노동력이 필요하고, 인공 지능은 이 더 싼 노동력을 담당할 것이며, 챗봇은 그런 시대로 들어가기 위한 첫 단추다. 확실하게 작동하고 확실하게 비용을 줄여주는 이상, 사람들이 메신저를 쓰며 메신저에 상주하는 것이 점점 더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이상, 챗봇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사실 많은 주요 IT 기업들이 챗봇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오래 전 SKT의 1mm 서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챗봇은 기본적으로 ‘다른 서비스, 상품’으로 연결 시켜주는 게이트 웨이다. 일종의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질문하면 그쪽으로 연결시켜주는 것이 일이다. 대신 뺑뺑이를 돌리려고 한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분들은 오직 그 건물만 안내하는 것처럼, 페북 챗봇은 페북안으로, 구글 어시스턴트는 구글 안으로, MS 코타나는 MS 안으로 사람들을 묶어놓으려 할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IT의 미래는 ‘시간 전쟁’이기 때문이다. ‘시간 전쟁’은 사람의 한정된 시간(=관심)이란 자원을 누가 더 많이 뺏어갈 것인가의 게임이다. 그런 전쟁에서 챗봇은, 확실히 매력적인 무기다. 확산 과정은 인터넷과 똑같다. 처음에는 정보를 제공하고, 다음에는 전자상거래로 연결한다. 그 다음은? 스마트폰과 TV와 자동차가 챗봇을 쓰기 위해 존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기는 플랫폼 몇 개만 살아남는다.

챗봇이 120 다산 콜센터가 될 수도 있다. 1:1 대화 형식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챗봇은 조만간 반드시 등장한다. 치매나 자폐증 환자 등을 위한 챗봇도 현재 개발중이다.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것들을 대화로 처리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굳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기생하는 챗봇만 존재하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챗봇들이 플랫폼을 벗어나 존재할수록, 우리 미래는 조금 덜 어두워질 것이다-라고 하고 싶지만.

… 음, 쉬울 것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IT 역사는, 성공하는 플랫폼에 얹혀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생존법이라고 늘상 말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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