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 2016년 한 해를 정리하는데 이만큼 딱 들어맞는 말이 있을까. 정말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였다. 옛 것은 지나가고 있는데 새것은 오라고 오라고 해도 오지 않았던 한 해. 일단 올해를 크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아이폰 출시 이전의 스마트폰 시장과 비슷하다
그런 2016년을 뒤흔든 네 가지 트렌드를 정리해 본다.
0. 2016년, 예측은 맞았을까?
먼저 가장 재미있는 일을 먼저 해보자. 올해 초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실은 올해 초에 한겨레 21(링크)과 YTN 사이언스를 통해 2016년 전망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과연 전망은 맞았을까 틀렸을까? 당시 이야기했던 것은 3가지다.
* 사물 인터넷 생태계 활성화
* 무인 자동차 기술 개발 경쟁
* 드론, 가상 현실 및 로봇 시장의 확대
+ 덤으로 ‘애플의 위기’
예상은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예상보다 확산이 느렸다. 사물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홈’은 아마존 에코의 히트와 구글 홈 출시 등으로 시장이 조금씩 열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히트작을 만들어내지 못 했다.
2016년 상반기 출시 예정이었던 가상 현실 기기들은 하반기에나 겨우 출시가 이뤄졌으며, 그나마 HTC 바이브 등은 개별 소비자 보다 ‘VR방’이나 테마파크 같은 자영업(?) 시장에 먼저 진출할 예정이다. 드론은 항공 촬영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지만 드론 배송 같은 다른 용도는 실험 중이다.
로봇과 무인 자동차 또는 커넥티드카 기술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일반인들에게까지 뚜렷하게 보이는 성과는 없다.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인공 지능이다. 사실 인공지능은 앞서 얘기했던 모든 트렌드의 배후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전면에 부각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1. 인공 지능, 새로운 시대의 선두에 서다
솔직히 말해 인공 지능이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2017년~2018년 쯤이라 여겼다. 2015년 말부터 인공 지능 관련 기술들이 오픈 소스로 공개됐기에, 그를 응용한 서비스들이 2017년 경부터 선보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인공 지능을 배경으로 둔 산업이 주춤하는 동안, 인공 지능 스스로 새 시대의 선봉장으로 치고 올라왔다.
이런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지난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의 펼친 바둑 대결. 인공 지능은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우리 머릿속에 아주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됐다. 이후 스마트홈을 비롯해 챗봇, 번역, 인터넷 서비스 등의 형태로 계속 다음 시대로 향하는 길을 닦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사실 지금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특히 지금 있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냐,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뭐 해서 먹고살아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가 많았다. 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지구 인류가 73억 명을 넘은 상황에서, 이제 인공 지능에 의한 자동화를 추진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인공 지능이 대체하는 일자리가 있긴 하지만, 그게 대체하는 영역이 자동화되기 쉬운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예측 가능한 일자리가 대다수일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다. 인공 지능으로 인한 자동화는 이미 진행 중이고, 이를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숙제로 남았다.
1-1. 로봇, 본격적인 발걸음을 재촉하다
인공 지능을 이용한 자동화가 화두라면,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생각보다 가정용 로봇이 많이 등장하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이미 우린 로봇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일단 기업용과 가정용을 분리해서 이야기하자면, 기업용 시장에선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미 한국은 노동자 1만 명 당 가장 많은 산업용 로봇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다만 가정용 로봇의 보급이 더딘데, 아무래도 가격과 기능이 여전히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4년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출시한 인간형 로봇 페퍼는 최근까지 1만 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주로 기업용으로 많이 팔리긴 했지만. 당분간 로봇은 이렇게 기업용으로 더 많이 팔릴 것이다. 로봇 주스 자판기를 비롯해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해질수록 로봇을 활용한 용도는 늘어간다.
앞으로 선보일 자율 주행 자동차 역시 로봇의 하나인 만큼, 내년에는 얼마나 다양한 로봇들이 저렴하게 출시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 가상 현실, 시장의 문을 열다
가상 현실 기기들은 현실이 되었다. 2016년에는 HTC 바이브나 소니 PS VR 같은 많은 가상 현실 기기들이 실제로 출시되었고, 이를 즐길 수 있는 장소도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대중화 원년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는 한 해. 전 세계적인 VR 시장 규모도 올해 들어 27억 달러, 약 3조 원 이상으로 커졌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흐름을 느끼기가 힘들다. 주요 게임 회사들이 VR 콘텐츠 개발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것도 있고, 정부 지원책 같은 것이 정치적인 비리와 엮이면서 상황이 아주 어려워진 것도 있다. 거기에 더해 삼성이 내놓은 신형 기어 VR에 대한 관심이 갤럭시 노트 7 발화 사건 속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해외에서의 관심은 상당히 높은 데다 관련 기기나 테마파크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한국에서도 붐업이 한번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3. 포켓몬고, 새로운 게임 시대를 데려오다
올해 초반 이슈가 인공 지능과 가상 현실, 후반이 갤럭시 노트7 발화였다면 중반은 포켓몬-고의 차지였다. 만우절 장난에서 태어난 게임이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게임 캐릭터의 승리, 추억의 승리, 위치 기반 게임 개발사의 승리다.
출시 후 3달 동안 다운로드한 숫자는 무려 5억 건이고, 인류는 출시 한 달 만에 1440000000000 걸음을 더 걸었다. 만보에 약 400kcal가 소모된다고 가정한다면 36억 kcal를 더 소모한 셈이다. 올해 매출만 약 7.8억 달러, 그러니까 대략 9천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화제를 모은 만큼 사건 사고도 많았고, 덕분에 각국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대응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꽤 있었다. 덕분에 ‘포켓 몬스터’ 같은 지적 재산권(IP)과 증강 현실에 대한 관심을 매우 높일 수가 있었던 것은 덤이다.
최근에는 이용자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앞으로 웨어러블 기기나 미래 스포츠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는 만큼, 포켓몬 고의 영향으로 인해 나올 새로운 게임들을 기대해 본다.
4. 스마트폰, 혁신의 한계에 부딪히다
마지막으로, 트렌드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역시 갤럭시노트7 발화사건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최신 스마트폰이 대거 발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리콜을 거쳐 결국 순식간에 단종까지 이르른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니까.
갤럭시 노트7뿐만 아니라, 애플 아이폰6s도 저절로 꺼지는 증상이 나타나 배터리 무상 교체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하고, LG G5는 모듈식 액세서리를 도입했다가 스스로 실패를 자인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하면서 기술 경쟁이 극한으로까지 치달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한 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아이폰이 등장하기 이전, 대략 20여 년 전의 휴대폰 업계 상황이 딱 올해와 비슷했다. 휴대폰 시장은 성숙해진 반면 카메라/음악 기능 강화를 제외하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폰에 PDA 기능을 탑재하면서 온갖 괴상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2005년 노키아는 하드 디스크가 달린 휴대폰까지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사이드킥’이나 ‘블랙베리’ 같은 제품들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변화는 생각보다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다가온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처럼, 그 변화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충격이 클 것이다. 10년 만에 조카를 다시 봤더니 애가 청년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옛 것은 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몰라도, 기술은 성장한다. 내년 한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기술 변화의 트렌드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행여 놓친 트렌드가 있다면(경영/정책적인 부분은 트렌드에서 뺐다.),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