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IT 트렌드 총정리. 세계에는 어떤 일이?

미안하다. 제목부터 거짓말이다. 이미 늦었으니까. 써놓고 잊어버렸다. 내가 봐도 내가 한심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썼으니 올린다. 한국인에게 유독 더 다사다난했을지도 모를 2017년, 그만큼 다사다난했던 2017 IT 이야기. 슈퍼 사이클, 테스트 베드, 한계-라는 3가지 키워드로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1. 슈퍼 사이클

특정 시장의 상품 가격이 오랜 기간 상승하는 추세를 슈퍼 사이클이라 부른다. 올 한 해 IT 기업들, 특히 삼성전자를 위시한 반도체 기업은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스마트 기기 저장 공간이 계속 늘어나고,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메모리 반도체가 많이 필요하지만, 시설 투자 정체와 기술 난이도 증가로 인해 공급량은 크게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D램 가격은 2016년 6월 이후 1년 6개월 동안 160%가 넘게 상승했다. 관련 기업들이 거둔 순이익은 100조 이상일 것으로 예상한다. 거기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등 신사업 분야 핵심 기술이 확산하면서 수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가 D램 생산 설비를 소폭 증설하고 있지만, 2019년부터 다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확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반도체 기업들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탔다면, 미국에선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라 불리는 5개 IT 기업들이 미국 증시 상승을 견인했다. 애플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기업은 인터넷 기반 플랫폼 기업이다. 상품이 아니라 슈퍼 사이클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이들이야말로 2013~14년경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들이다. 처음에는 이익도 내지 못하면서 이용자 숫자만 늘리려고 한다고 거품이란 평가를 받다가, 지금은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기업이 됐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 역시 이들 FAANG의 성장과 맞물려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주요 스마트 기기에 사용되는 OS와 스마트 기기에서 이용하는 콘텐츠를 이들이 만든다.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이들이 제공한다. 앞으로 기술 혁신기를 이끌 새로운 기술을 연구/투자하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인터넷 기반으로 출발했던 기업들이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세계를 휘어잡는 주도적인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은 세계가 플랫폼 기업의 세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반도체 시장 역시 이 플랫폼 기업의 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2. 테스트 베드

2009년 아이폰 3GS와 함께 본격 등장한 스마트폰 시대는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컴퓨터 부품, 센서 부품 가격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뜨린 것이다. 값싸진 부품 가격과 빨라진 네트워크 속도는 그로 인한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이 대표적이며, 가상현실과 지능형 로봇, 자율 주행차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2017년은 이런 신기술이 현실 사회에서 실증 테스트를 시작한 한 해다. 자율주행차가 대표적인 예다. 도쿄 모터쇼에선 사람을 태우고 혼자 움직이는 자율주행차 실증 실험 영상이 화제가 됐다. 구글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율주행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선 LV3라는 이름으로 자동차 회사, IT 회사, 보험 회사 및 정부 단체까지 모두 참여하는 자율주행차 실증 운행 테스트가 시작됐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만든 휴머노이드 페퍼가 한국에 도입됐으며, 일본 소니에선 애완견 로봇 아이보를 다시 출시했다. 여성 로봇 소피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받기도 했다. LG에서 만든 안내 로봇도 인천 공항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인간과 함께 작업하는 코워킹 산업용 로봇이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외골격 로봇 실증 실험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긴 하지만, 우리 눈에 서비스 로봇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현실은 VR방의 형태로 우선 도입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일본에선 꽤 호응이 좋다. 시부야에 등장한 ‘VR 도쿄’라는 이름의 실내 테마파크는 많은 인기를 얻어 2호점을 냈고, 비슷한 형태의 실내 테마파크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 동영상 플랫폼 DMM에서 시작한 VR 영상 서비스는 1년 만에 매출 20억 엔을 거두며 흑자를 냈다. PS VR은 공급 부족에도 불구하고 100 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앞으로 저가형 VR 헤드셋이 더 많이 등장할 예정인 만큼, 2018년에는 확실한 성장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지능형 스피커다. 미국에선 아마존 에코, 애플 시리, 구글 어시스턴트, MS 코타나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한국에선 갤럭시S8에 탑재된 빅스비가 주목을 받았다. 반면 실제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카카오에서 멜론 전용기기로 발매한 카카오 미니와 네이버 뮤직 전용기기인 네이버 웨이브와 프렌즈다. 적당히 인상적인 음성 인식과 저렴한 가격으로 시작한 지능형 스피커 판매는, 앞으로 어떤 서비스와 연결되는가에 따라 확산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3. 한계

올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삼성과 애플, 그리고 샤오미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건을 극복했고, 애플은 아이폰 8과 아이폰 X 투 트랙 전략을 쓰려다 아이폰 X을 중심에 놓고 가기로 방향을 틀었다. 잊혀질 줄 알았던 샤오미는 인도 시장을 바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렇지만 2017년 스마트폰 시장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 명백하다. 디스플레이 포맷 변경, 베젤리스 디자인, 듀얼 카메라, 인공 지능 어시스턴트 탑재 등으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지만, 결국 채택한 것은 작은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핑계로 판매 단가를 올려 수익을 높이는 전략이다. 성숙기가 지난 시장의 특징으로, 고급화를 통해 가격을 높이는 것과 부가 액세서리를 더 만들어 추가 수익을 올리는 전략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 편 새로 선출된 정부의 이동통신비 인하 정책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쟁이 일어났다. 약정 할인 인상, 기본요금 인하, 단말기 완전 자급제 등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번 논쟁은 명확한 결론을 낼 수는 없었지만, 정책 결정 과정 자체가 밀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누구나 볼 수 있는 공론장으로 이끌려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아쉽지만 어떤 결론이 내려도 누구도 만족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 큰돈이 걸려있는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론이라도, 시장을 바꿀 것은 분명하다.

해킹에 취약한 나라라는 것도 여전했다. 인터넷 나야나 랜섬웨어 사태와 IP 카메라 해킹을 통해 사생활을 도청한 일이 발생했으며, 하나투어, 비트코인 거래소 빗썸 역시 해커에게 개인 정보를 유출 당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널뛰기하는 가운데 비트코인 사기단이 활개치고 다녔던 일은 2017년 IT 산업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다. 비트코인이 망가져도 블록체인 기술은 지금 계속 연구되고 있으며, 조만간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기억해 두자.

 

상상이 현실이 되는 2018년을 꿈꾼다

그 밖에도 2017년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리니지, 스타 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으며, 한국 회사에서 만든 게임인 배틀 그라운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모바일 페이 경쟁이 계속 이어졌고, 인공 지능을 통한 언어 번역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드론과 사물 인터넷에 대한 연구도 계속 이뤄졌지만, 예전만큼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반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회사들이 인수합병을 하기도 하고, 협력을 선언하기도 했다.

처음 꿈을 꿨던 것과는 다르게, 실제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런 변화가 그냥 어쩌다 떠오른 트렌드가 아닌, 기술 진보에 기반을 둔 자연스러운 과정임에도 그렇다. 배가 나갈 방향은 크게 바뀌고 있는데, 지금 타고 있는 조류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써먹으려고 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지금 살아가는 2018년에는, 조금 더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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