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일 중국 화웨이의 최고 재무책임자 멍완저우 부회장이, 미국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됐다. 나중에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긴 했지만, 이후 흐름은 정확하게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중국 시장에서 반미 정서가 강해졌다. 12월 10일, 중국 법원은 아이폰 구형 모델에 대한 수입 및 판매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나왔다. 애플은 서둘러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2019년 1월 2일 애플 CEO 팀 쿡은 중국 실적 부진을 이유로 1분기(2018년 4분기) 실적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
한국 증시는 유탄을 맞았다.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반도체 기업 주가가 내려가면서, 코스피 지수가 2000 이하로 밀렸다. 따지자면 중국 경기 둔화 흐름에 따른 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부채질을 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는데, 왜 미국은 굳이 화웨이를 때렸을까?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 미·중 무역분쟁을 보다 유리하게 이끌고 싶었다. 명목상 멍 부회장이 체포된 이유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다. 미·중 무역협상과 상관없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이는 별로 없다. 대부분 미·중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작업이라고 본다. 미 언론에 따르면 화웨이에 대한 조사는 이미 2016년부터 시작됐다. 체포된 12월 1일은 미·중 정상 회담이 있던 날이다. 그 시점에 맞춰 중요 인물을 체포했다는 사실은, 두 사건을 따로 놓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둘, 미국을 비롯한 북미권 국가는 오래전부터 화웨이를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에겐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스마트폰 회사로 알려졌지만, 화웨이는 시장 점유율 28%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제조회사다. 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화웨이 장비가 사용된다.
인텔보다 많은 약 18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2017년 매출액은 925억 달러로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3배가 넘는다.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해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공식적으론 민간기업이지만, 2012년 10월 미국 하원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화웨이 기기에는 ‘킬 스위치(기기 무력화)’나 ‘백도어(원격 접속)’등 중국 정부의 활동을 돕는 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화웨이는 외부의 엄격한 보안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2018년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는 화웨이 통신 장비에 대해 ‘제한적 보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화웨이에서 제출한 소프트웨어 일부가, 테스트할 때와 실제 네트워크상에서 움직일 때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은 이미 국가 보안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장비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셋, IT 코어 기술을 방어하려고 한다. 이번 사건은 화웨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미국이 때리는 것은 ZTE를 비롯한 중국산 통신 장비 전체다. 다시 말해 IT 장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기도 하다. 현재 화웨이 5G 장비의 기술력은 다른 통신 장비 업체보다 약간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격은 더 저렴한 편이다. 얼핏 보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이번에 LGU+에서 화웨이 장비를 쓸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볼 수 있듯, 한번 쓰면 그 장비에 대한 의존도는 계속 이어지게 된다.
향후 인공지능을 비롯한 산업 혁신을 가속할 기반이 5G 네트워크인 것을 고려하면, 중국에 절대 내줄 수 없는 기술 영역이다. 작년 3월 미국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 못 하게 막은 거나, ZTE에 대한 수출 규제를 건 거나, 중국이 퀄컴이 차량 반도체 회사 NXP 인수나 한미일 연합이 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제동을 건 일이, 각자 IT 핵심 기술 산업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조치였다. 현재 중국은 삼성, SK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을 독점 금지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는 복잡하게 꼬여있다. 지난 11월 화웨이가 글로벌 핵심 협력사 명단을 공개한 이유다. 우리를 건드리면, 모두가 상처받는다고. 거기에는 인텔,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미국 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삼성과 SK 하이닉스도 화웨이에 반도체, 센서 등을 판다.
당연하지만, 화웨이는 판매자이면서 구매자다. 모두 미국에 협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분위기는 다르다. 독일은 중국에 협조하며 ‘인더스트리 4.0’ 전략에 사용될 산업용 표준 규격을 만들려고 한다. 세계 경기 하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정보통신업계 전체는 국가를 포함해 사활을 걸고, 적도 동지도 분명하지 않은 조용한 난투극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도 쉽게 앞날을 예상하기 어려운, 그런 싸움을.
* 지난 1월 임볼든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