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고 메모하는 독서법, 마지나리아(Maginalia)

 

저는 책에 줄을 치며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 전에 생긴 건 아니고, 아주 옛날,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그렇게 읽었습니다. 소설까지 줄쳐가며 읽는다고 친구들에게 한소리 듣기도 했죠. 굳이 보관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책은 찢어가며(…) 읽기도 합니다. 책 좋아하시는 분이 들으면 얼척없어질 얘기죠.

오늘에야 알았는데, 저 같은 사람을 ‘마지날리언’이라 부른답니다. 밑줄을 치는 행위가 마지나리아(Maginalia), 그렇게 줄치며 읽는 사람을 마지날리언. 김병익 선생님 표현으론 문장에 ‘댓글’을 단다고 하죠. 오스틴 크레온이 쓴 글을 읽다 알게된 사실입니다.

 

 

▲ 올리버 색스가 노암 촘스키 책을 읽으며 남겨둔 메모. 맨 위에 있는 사진도 올리버 색스의 밑줄 그은 책들입니다.

 

전 그냥 잘 까먹으니까, 한번 읽은 책 다시 읽다 보면 또 새롭게 보이니까, 자연스레 몸에 배인 일인데, 크레온은 이런 밑줄 긋기를 작가가 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독자가 되는 일’이고요. 김병익 선생님이 댓글이라 불렀던 것처럼, 스스로 책을 읽으며 책과 대화-를 한다는 얘기겠죠.

… 밑줄을 긋다보면, 독자와 작가의 어딘가, 독자도 아니고 작가도 아닌 어딘 가에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께 된다고. 이거 전에 제 친구가 추리 소설을 작가 입장에서 생각하며 읽다보면 더 재밌을 거라고 했던 말과 뭔가 비슷한 느낌입니다. 물론 신조어는 아니고, 아주 오래 전부터 행해진 행위라고 합니다(18C가 전성기).

 

 

크레온이 인용한 글에서는, 18C에는 책을 선물로 주거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줄 때 ‘밑줄 그은’ 책을 주는 게 사회적 관습이었다 말하기도 합니다만- 이제와 그러라면 무리 무리 무리.

아무튼 밑줄 그으며 책 읽기, 메모 독서는 책과 독서 경험을 실제로 소유하는 한 방법이자, 종이책이 왜 전자책으로 대체될 수 없는 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읽어야 한다, 이렇게까진 얘기 못하겠지만요. 저는 살다보니 이렇게 살지만, 책을 온전히 대해야 한다는 분과 밑줄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분들의 거리가, 생각보다 클거 같아서요.

요즘은 뭐, 알라딘 중고 서점 덕분에, 팔아버릴 듯한 책일수록 밑줄 못 긋게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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