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열린 애플 아이폰 11 발표 이벤트에 대한 간단한 후기입니다. 진지한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늦었지만 당일 행사를 보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일단 혁신이 없었다는 말은 넘어가겠습니다. 앞으로 그거 없을 거라고 얘기한 게 3년전이고, 이미 그럴 단계 지났거든요. 당연히 앞으로도, 지루할 겁니다. 당장 애플 이벤트 자체가 예전만큼 화제가 되지도 않아요.
… 뭐 그래도 10억 사용자가 있는 기기의 신제품 발표니, 안볼 수도 없습니다만.
다만, 이번엔 뭔가, 다른 이벤트보다 더, 조금 얄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뭐랄까. 왜인지 눈쌀을 찌푸리게 했던, 어떤 수익을 노리는 애플의 비지니스 마인드…가 더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요. 뭐, 회사가 수익을 노리는 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만. 뭔가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풀어가는 거, 그냥 싫어해서 그렇습니다.
맞아요. 이번 이벤트를 보면서, 장삿꾼과 엔지니어-라고 속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전반에 아이폰 11 프로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유달리 영상도 많이 틀고, 사람들이 웃지는 않았지만 자꾸 웃길려고 애쓰는 느낌도 들고, 애플 워치 발표회 할때는 감성팔이도 좀 하고.
반면 아이폰 11 프로 발표할 때는 뜬금없이 AP에 대해 장황한 설명… 애플이 기술에 대해 이렇게 늘어놓던 기업이 아니었는데요. 뭔가 어필할 포인트를 잘 찾지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뭐가 그리 애플을 몰아갔는 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폰이 많이 안팔렸거든요.
애플 워치, 완성형이 되다
가장 실망했던 제품은 아이러니 하게도, 기대도 없었던 아이패드 7세대. 뭐 나오는 게 이상하진 않습니다만- 이제와서 A10 프로세서를 채택? 좋게 보면 애플이 앞으로 전개할 구독 서비스의 최저선을 A10 프로세서로 가지고 가려고 하는 구나- 아이폰7 잘하면 장수하겠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굳이 따지자면, 교육용으로 내놨는데 뭔가 잘 안되고, 키보드가 필요하단 소리가 들리고, 그러니 기존에 내놓은 스마트 키보드 커버 쓸 수 있게 케이스만 바꿨다-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걸로 끝. 교육용 299 달러면 참 싸긴 한데, 펜슬이나 키보드 커버 가격 생각하면 이쪽은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지는 않고요-
애플 워치는 이제야 0.x에서 1이 되었습니다. 맞아요. 시계인데 시간이 안보이는 건 이상하죠. 스마트 밴드도 아니고. 그걸 지금까지 몇년이나 참고 참아서야 드디어, 화면이 보이게 된 거니(…). 지난 애플 워치 4세대가 하드웨어 완성도를 높였고, 5세대 와서야 남아있는 중요 포인트 하나를 채웠습니다. 그렇다고 3세대 남기고 4세대 단종은 좀 아니지 않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 4세대를 지금 3세대 파는 가격으로 내렸으면 엄청나게 팔렸을 텐데요.
애플 TV, 애플 아케이드, 쇼크
애플 TV+와 아케이드는 두 가지 의미에서 충격. 하나는 생각보다 가격이 싸서 놀랐고, 다른 하나는 좀 있으면 서비스 시작하는데 뭐 준비된 콘텐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서 충격. 그러니까, 지금은 쌀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요. 그러니 새 기기 구입하면 애플 TV 1년 무료-라고 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콘텐츠가 없으면 일단 회원 확보라도 해둬야지요.
다시 말해, 애플 TV+에 대해 거는 기대는 0 입니다. 한국에 당장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애플 아케이드는 시작하면 일단 구독해 보겠지만, 역시 큰 기대는 없습니다. 이벤트에서 보여준 게임 정도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정말 안이한 거죠. 어차피 추가 애플세 거두려고 시작한 사업인데, 세금 낼 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사실 서브스크립션 비즈니스 해본 사람들은 아는데, 이거 정말 쉽지 않거든요.
아이폰 11, 이름을 바꾸니 …
작년 애플은, 결론적으로 전략적 실수를 크게 하나 저질렀습니다. 아이폰 XR 입니다. 아이폰8과 아이폰 X를 동시 발매한 이후, 이게 장사가 되자, 애플은 지금까지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비싼 초고가폰, 보급형 아이폰 투트랙에 + 기타 저렴한 입문폰 조금. 아이폰8 발표때 이게 먹히자, 아이폰 XR 을 발표하면서 슬그머니 가격을 올렸죠.
근데 이게 잘 팔릴 줄 알고, 생산량 절반 정도를 이쪽으로 돌렸는데, 생각보다 잘 안팔리는 사태에 부딪히게 됩니다. 기억하실 분 계시려나요? 작년 말과 올해 초, 많은 미디어에서 아이폰XR은 실은 보급형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하는 리뷰가 나왔던 걸요. 그게 다 안팔리는 폰을 팔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아무튼 마케팅 드라이브 꽤나 걸었었네요. 어떤 나라는 가격 인하하고, 한국은 중고 아이폰 가격을 좀 더 쳐주면서 아이폰 XR을 팔려고 노력했죠. 결국 아이폰 XR이 올해 단일 기기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기기가 되었지만, 전체 아이폰 판매량 저하는 못 피해갔습니다. 팀 쿡이 웃으면서 아이폰 XR 잘 팔려요! 하며 말한 것, 어떻게 보면 판매량 저하에 대한 눈속임이라니까요.
애플이 선택한 것은, 아이폰 XR 후속 기종을 아이폰 11, 다시 말해 애플 아이폰 라인업의 정규 계승자로 선포(…)하고, 기존 X 라인업을 ‘프로’라 부르면서 고가 라인업처럼 보이게 이름을 바꾼 것. 전 좀 전문적인 작업 하는 사람들이 쓰는 기기를 ‘프로’라 부른다 알고 있었는데, 이제 프로는 ‘고가 라인업’을 뜻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아.
좋아졌나고요? 좋아졌죠. 진작 작년에 이렇게 나왔어야 했는데, 아무튼 카메라 하나 더 달린 아이폰 XR 완성형입니다. 아이폰 11은. 작년에 이걸 빼서 아이폰XR을 보급형으로 전락시킨(…). 아이폰 11 프로? 동영상 찍는 능력에 반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걸로,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만족시킬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지는 모르겠어요.
제게 있어 프로란,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것을 만족하게 만들어 납품하는(…) 사람이거든요. 무엇보다 그 인덕션 디자인, 솔직히 이 글에 듀얼 카메라 다다다다 붙은 사진 올린 것도 기분이 안좋은데, 그 3개짜리… 물론 제 문제이긴 합니다만, 보면 속이 안좋아져서, 못보겠습니다. 농담 아닙니다.
… 그러니까 아이폰 11이니 프로니, 판매를 위한 말장난처럼 보여요. 심리적 앵커를 잡기 위한. 그래도 상관은 없는데, 그럼 작년부터 그랬어야지(…).
잘팔리긴 하겠지만, 아이폰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이폰 11이 잘팔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대놓고 기존 아이폰 사용자, 그 중에서도 중국(…) 사용자를 노리고 나온 제품이거든요. 1억 정도로 여겨지는 아이폰 7 이전 폰을 가지고 있는, 중국 사용자. 안그러면, 아무리 환율을 감안해도, 50달러 낮아진 아이폰 11을 중국에서 1000위안이나 인하할 이유가 없죠.
북미를 비롯한 주요 시장은 솔직히 더 기대 못하고, 인도를 비롯한 신흥 시장은 애플이 들어갈 구석이 없고(삼성/샤오미 경쟁이 아예 애플이 발딛을 틈조차 없애 버렸습니다.), 중국 시장 판매량에 따라 애플 매출이 흔들흔들 거리는 탓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애타게 사랑한다 외치는 것도, 이해합니다.
… 다만 중국이 적극적으로 5G 네트워크 상용화 준비하고 있는데다, 경기 불황 + 애국 소비 분위기까지 불어닥쳐서, 판매량이 많이 늘어날 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어쨌든 이젠 돈 나올 곳을 찾아 산기슭을 방황하는 한 마리 하이에나처럼 보인다는 것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추가 비용을 지출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듯요. 못하는게 아니라 일부러 아이폰 XR 진화(?)를 늦췄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래서 씁쓸-하죠.
* 당황했던 때는 두 번, 하나는 애플이 프로세서를 설명하면서 다른 회사 프로세서랑 비교했을 때. 세상에, 애플이 지금까지 안하던 짓을. 다른 제품 신경 안쓰던 애플이.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갑자기 애플 구형 제품 매입 제도를 설명하는데, 원래 안하던 건데 새로 시작했나? 하는 착각까지.
* 살다 살다 환공포(…) 때문에 제품 살 생각도 안드는 날이 두번째로 올 줄이야. 게다가 하필 둘 다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