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IO 2019와 제로 터치 인터페이스

* 작년 구글 I/O 2019를 보면서 느낀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올리는 것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올해 구글에서는 구글 I/O 2020을 개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올려 둡니다.

 

▲ 영화 그녀(Her, 2013)는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노총각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 지를 실감 나게 그렸다(농담).

 

영화 ‘그녀(Her)’의 주인공 테오도르 트웜블리는 편지 대필 작가다. 대필이라고 썼지만, 펜을 잡거나 키보드를 치지 않는다. 말을 하면, 컴퓨터가 인식해 글자로 바꾼다. 이 시대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음성이다. 스마트 기기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모든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왜 음성 인터페이스를 영화적 장치로 채택했을까?. 간단하다. 음성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의사소통 방식이니까. 아기는 태어나 처음 ‘말’을 배우지 ‘글자’를 배우지 않는다.

 

구글 I/O 2019, 구글이 조용히 보여준 미래

 

‘구글 I/’O는 구글이 주최하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다. 구글 플랫폼을 이용하는 개발자들이 모여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 트렌드를 공유한다. 그해 구글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행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구글 제품과 기술이 가장 먼저 소개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구글은 이 자리에서 AI 기반 서비스와 하드웨어를 메인 스테이지에 올렸다. AI 퍼스트를 선언한 해다. 2017년, 구글은 사물을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 ‘구글 렌즈’와 음성 인식 스피커 구글 홈을 선보였다. 2018년에는 사람처럼 사람과 대화하는 인공지능 기술, 구글 듀플렉스가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다른 구글 서비스도 AI 기반 기능이 추가되며 변해갔다.

 

2019년, 구글은 지난 몇 년간 개선한 기술을 성공시킬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찾았다. 올해 구글 I/O에서 선보인 내용은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 ‘상어’를 검색하면 눈앞에 ‘실제 크기의 상어’를 증강현실로 보여준다. 구글 어시스턴트를 스마트 폰에 내장해 인터넷 연결 없이도 쓸 수 있게 된다. 픽셀 3a는 기존 픽셀 3 반값에(40만 원대) 같은 카메라 성능을 자랑하는 스마트 폰이다.

 

듀플렉스 기능을 이용하면 ‘다음 여행을 위해 차를 예약해줘’ 한 마디에, AI가 내 일정을 자동으로 확인해 적당한 렌터카 예약을 찾아준다. 검색도 보다 똑똑해져서 검색어와 관련된 정보도 모아서 함께 보여준다. 구글 렌즈는 식당 메뉴를 찍으면 바로 번역하고, 리뷰 정보와 결합해 추천 메뉴까지 찾아준다.

 

 

 

제로 터치 인터페이스 시대가 온다

 

바탕에는 더 똑똑해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제 폰에 내장할 정도로 작게 만들 수 있고, 정보를 둘러싼 맥락을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정리해 줄 정도로 영리해졌다. 소프트웨어를 성장시킨 먹이는 빅데이터다. 구글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자율학습을 하며 스스로 성장했다.

 

작고 똑똑해진 AI는 상용화를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을 얻었다. 바로 ‘속도’다. 우리를 괴롭혔던 딜레이, 느리고 굼뜬 반응을 최소화했다. 이제 구글 어시스턴트에 뭔가를 질문하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구글 렌즈나 검색, 캘린더 등 인공지능이 적용된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공부하고, 명령어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말만 하면, 스마트 폰이 알아서 ‘제대로’ 인식해 필요한 일을 처리해 준다.

 

구글은 이번 구글 I/O를 통해 사실상, 터치와 키보드 입력이 필요 없는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시대, 영화 ‘그녀’에서 보여준 제로 터치 UI 시대로 세상이 진입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런 세상이 오면 뭐가 좋냐고? 끔찍하게 좋다. 굳이 ‘헤이 구글’하고 부르지 않아도 ‘광화문까지 어떻게 가?’하고 말하면 ① 내가 있는 장소를 확인하고 ② 평소 선호하는 이동수단과 구글 캘린더에 적혀 있는 일정을 확인해서 ③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안하게 된다.

 

‘이번 부산 출장 보고서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① 캘린더에 있는 일정을 확인하고 ② 영수증 찍어놓은 사진에서 금액을 뽑은 후 ③ 회의 일정과 경비 명세 등을 어느 정도 정리해서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키보드, 마우스, 터치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음성 인식은 기존 UI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우며, 사용하기 쉽다.

 

 

 

웹, 모바일 그리고 AI 음성 도우미

 

새로운 세상에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화장실에서 오븐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경계가 충분히 흐려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구글이 제시한 인공지능 기반 음성 인식 도우미는, 컴퓨터(웹)와 모바일(스마트 폰)의 뒤를 잇는 새로운 UI와 플랫폼의 초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세상은 넓고 복잡해서, 항상 개발자 의도와는 딴판으로 굴러간다. 기술 발표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 생길 문제도 있다. AI 도우미가 제공할 정보는 누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오게 될까? 정보의 신뢰성은 누가 담보할 수 있을까? 도우미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많은 개인정보가 필요한데, 이런 정보는 광고나 다른 비즈니스를 위한 기초 정보, 다시 말해 누군가의 자산이 된다. 특정 회사가 이런 정보를 독점하게 놔둬도 괜찮은 걸까?

이번 행사에서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어디에 살고 있든, 어떤 것을 목표로 하든지 간에 모두를 위해 더 쓸모 있는 구글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쓸모 있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지식을 쌓고, 성공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이 세상의 유틸리티 기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말이다.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싫든 좋든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은 말로 하는 게 어색하지만, 곧 누구나 말로 기기와 대화를 주고받는 시대가 온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 디바이스 등도 나타날 것이다.

 

구글 I/O에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보여줬지만, 제조업 현장을 비롯해 의료, 도소매, 금융, 미디어, 물류, 요식업 등 모든 분야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런 변화는 결국, 다시 우리 삶을 바꾸게 되고.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기술을 우리가 하는 일에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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