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페이스북에 새로운 놀이가 퍼졌다. ‘The 10-Year Challenge’란 불렸던 이 놀이의 규칙은 간단하다. 10년 전 자신을 찍은 사진과 지금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붙여서 올릴 것. 그게 전부다. 이 놀이를 통해 자신이 더 멋있어졌거나, 어른이 되었거나, 여전히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놀이에 참여하는 이유다.
그냥 놀이일까? 와이어드에 실린 케이트 오넬의 칼럼에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페이스북이 나이에 따라 변하는 얼굴 인식(안면 인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사진을 수집하고 있는 거라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안면 인식 기술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널리 퍼졌으며, 앞으로 더 많이 쓰일 가능성이 높다. 무척 편리하면서도, 위험하게.
카메라가 왜 내 얼굴을 쳐다볼까?
얼굴 인식 기술은 사진이나 동영상, 생물의 얼굴에서 정보를 파악하는 기술을 말한다. 다른 신원 인식 방법에 비해 인식 장치에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용자의 거부감이 적어서 많이 쓰인다. 주로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노화나 병을 파악하는 용도로도 쓰이고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의 얼굴을 파악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196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상품화가 이뤄진 건 90년대고, 최근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되면서 정확도가 많이 높아져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국 회사들이 수많은 실증 테스트를 이용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기술력을 높이면서 치고 올라오고 있다.
2018년 미국국가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주관한 ‘얼굴인식 알고리즘 테스트(FRVT)’에서 상위 5개 알고리즘을 만든 회사는 모두 중국 기업이었다.
보안과 감시의 얼굴 인식 기술
겉으로 보이는 쓰임새는 크게 보안과 신원 확인으로 나뉜다.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역시 보안/감시 분야다. 일부 공항이나 카지노, 경기장 등의 장소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 출입구에 설치해 출입자를 통제하기도 한다. 범죄 용의자를 찾아서 체포하는 등 공공 안전 분야에서도 쓰이고 있다.
상용화 초기에는 상황에 따라 얼굴인식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분야 선두 주자인 이투가 2018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오탐지율은 백만 분의 일 정도로 99% 이상 인식 정확도를 보여주고 있다 오류 허용률에 따라 인식률이 달라지기는 한다. 실제 인식률은 운영하는 사람이 어떻게 설정해 놓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범죄자 인권’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 중국이다. 2017년 안면인식 보안 시스템을 구축한 상하이는 3개월 동안 567명의 범인을 검거했으며, 칭다오 맥주 축제에서는 범죄 용의자 22명이 잡히기도 했다. 2018년에는 한 가수의 콘서트에서 안면 인식 기술을 이용해 범죄자 8명을 체포하는 일도 생겼다.
위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센젠에선 신호등 앞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이용해 신호 위반자를 적발하고, 자동으로 적발 사실을 문자 메시지로 위반한 사람에게 보낸다. ‘쉐량(雪亮)’이란 이름으로 중국 전역 농촌 마을에 안면 인식이 탑재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만 이러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시스템을 중국은 남미 지역 국가들에게 수출하기 시작했다.
- 말레이시아 경찰은 얼굴 인식이 가능한 바디캠을 도입했다
- 미국에선 2004년부터 지문과 얼굴 인증을 이용한 보안 시스템을 공항과 주요 항만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뉴욕에선 주요 다리에 터널에 설치되어 운전자 얼굴을 인식한다.
- 영국에는 이미 300만 대 이상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이 중 일부는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AFS)‘을 쓰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콘서트나 경기장에는 모바일 감시 카메라도 배치된다.
아이폰, 안면인식 기술을 널리 퍼트리다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분야는 신원 확인이다. 이미 한국 정부 청사 등에서 이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 X를 내놓으면서 ’ 페이스 ID’를 통한 인증 방법을 제시한 이후, 스마트폰 잠금 해제 용도로도 많이 쓰이기에 일반인에게도 익숙하다.
출입국 심사 분야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데, 미국 국토안보부(DHS)에선 안면인식만으로 여행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으며, 상하이 홍차오 공항 국내선에서는 안면인식 무인 출입 심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공항과 베이징 신공항에서도 안면인식만으로 출입국 심사를 마치는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중국 HSBC 은행에선 안면인식만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한 앱을 내놓기도 했고, 중국 농업 은행 등 50여 개 은행에선 안면 인식으로 돈을 뽑을 수 있는 ATM 기기도 도입하고 있다. 중국 대출 업체 제다이바오에선 신원 확인을 얼굴 인식으로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중국 베이징 사범 대학 등 많은 대학에선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무인 편의점이나 알리페이 같은 간편 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때 안면인식을 통해 결제하는 서비스도 중국에선 이미 제공되고 있다. 심지어 로봇 강아지 아이보도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주인을 알아본다.
안면인식 카메라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보안과 신원 확인 분야가 아니어도, 얼굴 인식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연령 및 성별, 감정 상태를 구별할 수 있으며, 카메라가 얼굴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콘텐츠 제작자들이 시사회를 하며 관람객들의 얼굴을 분석, 영화에 대한 예상 반응을 검토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예다.
- 자판기가 고객 얼굴을 확인해 물건을 권유한다거나, 상점에 드나드는 고객의 성별과 연령을 확인해 통계 리포트를 작성하는 실험이 이뤄지기도 했다.
- 지금도 대형 점포에서 얼굴 인식을 통해 고객을 추적하며 동선을 확인하는 곳도 있다.
- 중국에서는 돼지, 아일랜드에서는 소의 얼굴을 인식해 관리하는 시스템도 연구 중이다.
- 현대 자동차는 CES 2019에서 탑승자의 감정을 인식해 반응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 이용자의 얼굴을 매칭해 소개팅 상태를 골라주는 앱이나 닮은꼴 연예인을 찾아주는 앱은 다들 써보지 않았을까?
- 인신매매된 아동이나 실종 아동을 찾는 경우에도 쓰인다.
- 스탠퍼드 대학은 안면 인식을 이용해 개인의 성적 성향을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도 했다.
- 얼굴을 분석해 건강상태나 질병 유무를 판단하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우리는 이미 안면인식 카메라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얼굴 인식이 되는 앱으로 귀여운 토끼귀가 달린 사진을 찍고, 얼굴 인식으로 사람 이름이 태그 되는 SNS에 사진을 올린다. 노트북과 스마트폰 암호를 얼굴로 대신하고, 내 얼굴을 찍어 만든 아바타로 이모티콘을 보낸다.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외모를 바꾼 가상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보고, 가상 메이크업 앱을 이용해 화장을 하거나 머리색을 바꿔본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보고 웃으면 셔터를 누른다.
안면인식 기술이 괴물이 되기 전에
많이 쓰이는 만큼, 불완전해서 생기는 오류나,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엔 미국 실업급여 신청서 검증에 쓰이는 안면인식 시스템 아이디미(ID.me)의 인식 불량으로 24개 주에서 실업 급여 신청이 보류되는 일이 일어났다. 2020년 일어난 BLM(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에서, 미 경찰이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자, IBM과 MS, 아마존은 경찰에 얼굴 인식 기술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중국에선 2019년 12월부터 휴대전화 개통 시 의무적으로 얼굴을 스캔해야 한다. 중국에 설치된 CCTV는 약 4억대 이상으로, 전 세계 CCTV의 절반 이상이다. 2019년 2월에는, 중국 신장성 위구르 지역 소수 민족 250만 명을 감시하던 안면 인식 모니터링 업체의 DB가 유출된 적도 있다. 빅브라더는 이미 지구에 존재한다.
얼굴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매우 편하면서도 위험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지긴 했지만, 얼굴은 쉽게 바꿀 수 없고, 외부에 공개적으로 노출하는 개인 정보라서 그렇다. 원하면 누구도 쉽게 수집할 수 있고, 쉽게 조작할 수 있으며, 쉽게 추적할 수 있다.
감시 사회가 될 거라는 위험이 있지만, 무조건 막을 기술도 아니다. 얼굴 인식 기술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더 쓰일 예정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표정을 보여주거나, 로봇이 인간을 인식하거나, 원격으로 근무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렇다.
어쩌면 좋을까. 프라이버시와 감시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이다. 그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라는 이분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편리함과 억압의 사이에서, 안면 인식 기술이 괴물이 되기 전에,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기술은 편리하기에, 너무 쉽게 악용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