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제로라이터란 제품이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몇년 전에 소개한 필통 컴퓨터와 비슷한 디자인에, 라즈베리 파이 제로2W를 장착하고 글쓰기 기능만 남긴 전자 타자기였습니다. 그때도 상용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사실 이런 제품이 제대로 나온 적이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간 기억. 그런데 이번에, 그걸 진짜로 출시하겠다고 합니다. 제로라이터 잉크 전자종이 타이프라이터( Zerowriter Ink e-Paper Typewriter) 라는 제품입니다.
모양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필통처럼 뚜껑이 달린 형태에서, 프리라이터처럼 평평한, 그런 모습입니다. 안에 들어가는 하드웨어도 바뀌었네요. 솔더드 일렉트로닉스(Soldered Electronics)와 협업해 5.2인치 전자잉크 패널을 붙였습니다. 해상도는 1280×720. 라즈베리 파이 대신, 원래 이 전자잉크 패널에 부착된 ESP32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사용합니다. 사실상 전자잉크 패널 사와서 기계식 키보드를 붙인 제품입니다. USB-C 충전이 가능한 5000mAh 배터리가 들어가 있고, 무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쯤에서 경고 하나 드립니다. 일반인(?)은 이 제품을 일단 고려하지 마세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아두이노 플랫폼에 기반한 SW를 사용할 수 있지만, 거꾸로 이건 일반 사용자를 지원할 기반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ESP32 컨트롤러도 원래 사물 인터넷이나 교육용으로 쓰이는 제품이라, 성능이 상당히 낮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범용 컴퓨터(스마트폰이나 PC 등)에 들어가는 프로그램과는 많이 다릅니다. 당연히 한글 지원 문제도 확인할 수 없고요.
아두이노 한글 라이브러리는 존재하지만, 저 제품에 포함될 워드프로세서에 반영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누군가가 직접 넣으면 되지만, 그걸 당신이 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죠. 그런 기능이 갖춰지는 것을 본 다음, 구입을 고려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음, 애당초 이런 전자 타자기를 사실 분이 무척 적기는 하겠지만요. 왜냐고요? 이름 그대로, 그저 글쓰기에만 특화된, 인터넷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제품이라서 그렇습니다.
… 누군가는 반드시 DOOM을 돌리겠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건, 이런 제품을 예전부터 꽤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요. 예전에 방콕에 있을 때, 꽉 막히는 상황에 택시 안에서 급하게 원고를 쓴 적이 있거든요. 사실 아이패드 화면을 쳐다볼 생각은 못하고, 그냥 펼쳐놓고 눈으론 거리를 보면서, 생각하면서, 키보드로 똑딱 거렸는데… 의외로 집중해서 원고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냥 시간 아까우니 개요나 정리하자- 정도였는데, 택시 내릴 때(한 시간 정도 지나서) 보니 대충 원고를 다 썼더란 말입니다.
그 후 이런 제품을 여러 번 찾았는데, 포메라에서 나온 제품은 한글 지원이 안돼(일본 회사 제품), 프리라이터는 비싸고 문제가 많고(한글은 나중에 지원), 전자잉크 타자기는 대부분 DIY 제품이었습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서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전자책 리더기를 모니터로 쓰게 만들어주는 앱도 있는데, 이건 스마트폰+키보드+전자책 리더기를 다 주렁주렁 들고 다녀야 하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오픈 소스로 공개된 플랫폼에서 공개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이 제품은 선녀죠. 안되면 누군가는 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다려봅니다. 제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성공적으로 출시됐기에 여러 사람이 뚝딱거리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기를… 우리 같은 일반인은, 구입을 그 후에 고려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현재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중이며, 더 많은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