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죽은 그 아이의 미니 홈피는…

링크(LINK),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거는 마지막 희망

그 아이는 며칠 전 죽었습니다. 그것도 비참한 모습으로 슬프게. 앞으로 무엇이 되면 좋을지 막막하다고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어떤 멋진 남자와의 사랑을 꿈꾸던 아이였고, 지난 여름에는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폰카로 셀프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학생회 활동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던 아이였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수능 시험을 보고, 어쩌면 내년에는 어떤 대학의 풋풋한 신입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귀엽게 살찐 두 볼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도 알고 있으면서, 또 모르고 있을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기억나는가요? 얼마 전에 천안에서 살해당한 여고생의 이야기가. 위에서 말한 것들은 바로 그 살해당한 아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나는 그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 그 아이를 알지만 그 아이는 끝까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요?


초부족 사회의 익명성

데즈먼드 모리스의 『인간동물원』이란 책에는 이런 주장이 나옵니다. 인간 사회의 생활 단위가 점점 커지면서 부족 사회에서 초부족(超部族, super-tribe) 사회로 바뀌고, 그 사회의 특징은 구성원(시민)들 각자가 더 이상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이렇게 사회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게 되고, 시민들이 익명성에 파묻히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은 무서운 비율로 늘어나게 됩니다. 어쩌면 지난 몇 세기 동안 인간이란 종족이 보여준 야만성은 이런 초부족 사회에 기반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초부족을 뛰어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런 성격이 더욱 강화됩니다. 사람들은 더욱 익명성 속에 파묻히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로그램의 구동 방식에 순응하고, 타인들에게 정도 이상으로 다정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말하지 말아야 할 나쁜 말들을 더욱 쉽게 상대방에게 내뱉으며, 하지 말아야할 나쁜 행동이나 범죄를 더욱 쉽게 저지릅니다.

문제는, 우리가 초부족 사회에 그다지 적합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따뜻함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취미나 관심사에 따라 더 작은 단위로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과 만나서 웃고 떠들고, 다양한 부족적 일체감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떠나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인터넷 세상이, 다시 사람을 매개로 하는 인터넷 세상으로 변화하게 된 이유입니다.

당신과 나는 그렇게 연결되며 살아갑니다.

어떤 동일한 관심사, 작은 호기심, 그런 것들이 바로 당신과 나, 당신과 당신, 우리를 이어주는 링크(LINK)입니다. 우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서로 엮이기도 하고, 내 게시물에 관심을 표한 아주 짧은 당신의 댓글을 통해서 엮이기도 합니다. 또는 친구의 홈페이지에 남겨진 당신의 방명록을 통해서 엮이기도, 커뮤니티의 모임을 통해서 엮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연결되는 링크를 찾게 될 때에, 당신은 더 이상 ‘어느 누군가’가 아니게 됩니다. 당신은 이제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이며,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닌, 보게 되면 반가운(또는 도망가게 되는), 내가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누군가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아무도 나를 아는 이 없는 이 막막한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을 부르는 것이며, 내가 당신에게 불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게 됩니다. 보이는 만큼 알고 사랑하게 됩니다.

쌀쌀한 세상에 걸어보는 희망, 링크

그리고 때로는, 이미 죽은 당신의 미니 홈피를 우연하게 들리면서 엮이기도 합니다.
와, 대단하네요. 방문횟수는 이미 2만 번을 넘었습니다. 방명록에는 1만 개가 넘는 추모의 글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찬찬히 게시판과 사진첩을 둘러봅니다. 그 아이가 살아왔던 모습과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모습, 좋아하던 이야기들을 훔쳐볼 수가 있습니다. 참, 정말 많이, 귀여운 아이네요.

이제 당신은 내게, 천안에서 살해당해 죽은 한 여고생이 아니라, ‘슬지’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나는 많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이곳에 들리면서, 당신과 함께했던 사진과 이야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올린 추모의 글을 보면서, 당신이 없는 삶을 위로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씩 잊혀지겠지요. 가끔, 아주 가끔씩만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겠지요. 방명록에는 점점 스팸 광고가 늘어가면서, 그렇게 풀이 무성한 쓸쓸한 무덤이 되어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떨까요. 이렇게 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가끔 나를 기억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들이 잠시 다녀가면서 쉴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오늘은 작년에 자살한 후배의 홈페이지에나 다녀와야겠습니다. 나는 가끔 그 아이의 홈페이지에 들리면서, 봄이다- 여름이다- 가을이다- 겨울이다-, 무심하게 이런 소리만 적어놓고 돌아 나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알고 있겠지요. 그것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라는 이야기인 것을.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라는, 많이 아픈 눈물이란 것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들로 연결되어서 살아가고,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이상, 당신과 나는 떨어져 있는, 서로 모르는 어떤 누군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가 인터넷에 거는, 이 지독할 정도로 쌀쌀맞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걸어보는 희망입니다. 그것이 링크(LIN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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