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죽은 후에 소문을 들으니까, 강기봉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은 살아서 석방됐어요. 그 사람이 석방되고 날 만나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당신네 신랑은 어떤 날 어떤 곳에서 자기하고 같이 있다가 죽었다고. 그래서 우리집에서 신랑이 팔월 몇 일에 죽은 걸 확실히 알게됐어요. 그리고 나한테 이렇게 전하라고 했더라구요. …. 자식들 서너명 있으니까 그 자식들 잘 기르고 잘 살라고 했데요. … 나 이제야 눈물도 나는 거지, 신랑 죽고 자식 죽어도 안 울어본 사람이에요. 죽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 살 생각만 났지 죽을 생각 울 생각 안 났어요.
– 강도화, 여, 1923년생
「정신분석과 문화연구」 수업 레포트로 ‘제주 4.3 항쟁’이란 소재를 택했다. 너무나 큰 일이어서 아예 금기시 되었던, 제주 사람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던 그 사건. 아이디어 차원에서 손을 댔는데, 자료를 조사하면 할 수록 아뿔싸-라는 비명이 터져나온다.
이래서 아무도 얘기하지 못했구나, 이래서 그 가슴 속에만 묻고 살았구나, 이래서, 이래서, 이래서-
구원해줄 신 따위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던 시대, 전쟁이 끝나면 될 꺼야, 세상이 바뀌면 될 꺼야라는 희망 따위도 품을 수가 없었던 시대. 사람이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놓고도 아무렇지 않은듯 침묵하고 있었던 시대. … 무려 5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침묵. 내가 고향이라 부르는 곳에서 있었던 일.
…이걸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그 땅에서 태어난 댓가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록을, 그 말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걸까. 나는 어쩌면, 건드리지 않았어야 할 문을 건드려 버린 것은 아닐까.
내중에 죽은 후젠 소문 들으니까 동광이옌 헌디 강기봉이옌 헌 사이 있었어요. 그 사이 살안 석방을 시켰어요 그사은 어쩐지요 석방을 시켜서 날 면대허고 얘기를 해주더라고. 당신네 신랑은 아뭇날 아무디서 자기허고 같이 있다가 죽었다고. 경허니까 우리집이 신랑이 팔월 열룻날 죽은건 확실히 알았어요. 팔월 열룻날 죽은거는 확실허게 알았고 그 강기봉이엔 헌 사람이 말해주기도 허고 전기도 이젠 딱 철저허게 했드라고 나한티…. 자식들 서너개 되니까 네개나 되니까 그 자식 잘 길르고 잘 살랜 해연. 그 말을 목이 맥히게 전기를 했더라고요.(울먹) 나 이제사 눈물도 나는거주 나 신랑 죽고 자식 죽어도 안 울어본 사이예요.(눈물흘림) 죽을 수, 울 수가 없는 음이랐어요. 너무 강해서…. 살 생각만 났지 죽을 생각 그거 울생각이 안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