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봉 시위, 대체 세계 어디에서 보도됐다는 거야?

지난 19일 대전에서 발생한 화물연대 시위와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껀수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한마디 했다고 한다.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떨어뜨리는 3가지 요인이 폭력 시위, 노사 분쟁, 북핵 문제로 조사된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과격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일단 ‘국가 브랜드’, 말 그대로 ‘국가 상표’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어쩔씨구리함’에 대해선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그냥 이미지 마케팅에 불과한 거다.)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야 누가 말리겠냐만, 그게 한 두번의 홍보나 몇가지 사건으로 결정될거라고 믿는다면, 바보인게지..뭐.

한국 시위, 정말 전 세계에 보도 된거야?

…그건 그렇고… 정말 궁금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정말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폭력 시위)이 전 세계에 보도된 거야?”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궁금증이다. 시위 자체에 대한 보도가 나갔는지 안나갔는지 묻는 말이 아니다. 그거야 AP에서 일단 보도했으니까, 외신으로 여기저기 실렸을 거고…

대통령의 말이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은, ‘폭력 시위가 일어났고, 그 사실이 전 세계에 보도됐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그 사실을 확연히 알게됐고, 그로 인해 한국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가진 정보망(?)에는 그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외신을 체크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화물연대 시위에 대한 반응이 해외에서 거의 잡히지 않았다. …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대통령 관련 기사 읽으면서 대체 뭐하는 소리인가- 했다.

그래서 구글 뉴스에서 검색해 봤다. … 그런데, 거의 없다. -_-; 그나마 있는 기사들도 “한국 경찰이 화물연대 노동자 400여명을 체포했다”라는 기사들 뿐이다. 그러니까, 그나마 관련 기사들을 모아봐도 아래 기사들 정도다.

까놓고 얘기해서, 통신사의 송고를 재전송한 몇몇 신문들을 제외하면, 관련 기사를 실은 언론사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뉴욕타임스도 찾아봤다. 없다. CNN도 찾아봤다. 없다.

…아니, 대체 어디에 어떻게 보도 되서 한국 이미지가 실추됐다는 거야?

솔직히 지금도 많이 궁금하다. 대체 어디에 보도됐는지, 알고 계시는 분 있으시면 제보 바란다. (…물론, 영어권이 아닌 다른 언어로는 검색해보지 못했음은 인정한다. 중국어, 불어, 일어등 전세계 언론을 모두 검색할 자신은 없다…)

한국 영자 언론에서만 사용한 말, 폭력(Violent)

그런데, 신문기사를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됐다. 관련 기사에서 제목이나 본문에 폭력(Violent)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기사는, 거의 대부분 한국 영자 신문들 이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 코리아 헤럴드, 중앙 데일리, 코리아 타임즈 등(조선일보 영문판에선 아예 기사가 없더라…이상하게. 왜?).

 

이런 결과를 모아놓고 얘기하자면, 아주 재미있는 결론이 하나 도출된다. 외국에 ‘폭력 시위’라고 타전한 것은 한국의 경찰(대부분 경찰의 발표를 옮겼다.)과 한국의 언론이며, 따라서 국가 브랜드를 추락시킨 것은 한국 언론이란 결론이. … 물론 다행히, 외국 통신사나 언론들은 우리를 외면했다. (응?)

어디에도 없는 말, 죽창(Bamboo spear)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막상 한글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영자 언론에서 죽창(Bamboo spear)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 죽창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딱 두번 봤다. 하나는 연합이고, 하나는 한겨레였는데- 각각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국무총리의 말을 옮기면서 사용했다.

반면 기사 안에서 코리안 타임즈와 AP는 ‘Bamboo sticks(대나무 막대기)’이란 표현을 사용했으며, 동아일보는 ‘Bamboo Batons(대나무 바통)’과 ‘bamboo flagpole(대나무 깃대)’이란 표현을, 중앙 데일리와 AFP는 ‘Bamboo pole’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다.

…뭐, 여기에 대해선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죽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여론 조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위를 했던 사람들에게 ‘살인마’같은 과격한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민주당보고 좌파나 빨갱이라고 불렀던 것과 하나 다르지 않은 색깔 칠하기.

…그런데 웃긴 것은, 영어로 번역된 말을 받더니 그 의미가 굉장히 분명해 진다는 것. 창과 봉의 어감 차이는 좀 불분명한데, Spear랑 Stick 의 어감은 확 다르게 느껴지니까…-_-;;

어쨌든 그건 그렇고…. 정말 갈수록 정부가 하는 일이 너무 유치해지는 느낌이다. 하긴, 이거야 지난 10년동안에도 잘 먹혔던 짓이니까 하는 짓이 계속 하는 거긴 하지만…. 수틀린다 싶으면 색깔 칠하기, 여론이랑 다르다 싶으면 여론 깔보기, 문제 해결할 생각은 못하고 때려잡을 생각만 하기… 그러면서도 똑같은 일을 저지르는 자기편은 봐주기.

어찌됐거나 딴 건 안 바란다. 최소한,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얘기라면 좀 근거는 갖추자. 이글루스 블로거들도 목이 매여 부르짖는 것이 팩트다. 우리도 이리 팩트를 찾는데, 대체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얘기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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