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 모습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남들보다 더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래놓고는 어쩌다 차가 막혀서 하루 늦으면, 왜 매일 같이 지각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죠.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도 어쩌다 술자리에서 실수 한 번 했다고, 사람들은 십년을 그 이야기 가지고 우려먹습니다. 참 답답하고, 때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만, 그게 인생인걸요.
그렇지만 가끔, 남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어떤지,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어떤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기왕 알고 있으면 덜 상처받고,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도 같구요. 맞아요.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남을 탓하기 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진짜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필요하답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무엇을 바꿀지, 아니면 받아들일지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러기 딱 좋은 시간이 왔습니다. 예, 연말연시.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삶의 쉼표 같은 시간. 그리고 지금 30분만 투자하면,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내 자신까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리뷰를 통해 발견하는 내 자신의 모습
자- 먼저 A4 용지 몇장과 올 한해 당신과 함께 했던 수첩이나 캘린더, 아니면 웹캘린더나 아웃룩…;;을 열어주세요. 무엇이든, 당신이 일정을 정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면 괜찮습니다. 어떤 분은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 그리고 첫번째 A4 용지에 크게 올해년도를 쓰고, 세로로 숫자를 12~1까지 거꾸로 기록합니다. 뭘 하려는 지 아시겠죠? 예. 지난 한 해 동안, 매달 일어났던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씩 적어보는 겁니다. 한 달에 3개까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을 적으시면 안되요.
지난 1년이 눈 앞에 스쳐지나가나요? 이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솎아낼 시간입니다. 이제 다른 A4 종이를 한장 꺼내서, 가로로 2번 접어주세요. 그럼 위에서부터 아래로 4칸이 생기죠? 첫번째 칸에, 먼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적어주세요. 참, 적으실 때 그 일로 인해 느꼈던 것을 간략하게, 꼭 적어주셔야 한답니다. 🙂 저 같은 경우에는 ‘7월 미국 여행 –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적어놓았네요.
그 다음 칸엔 2009년에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있었던 일 하나만 적어주세요. 누군가를 도왔던 일이 될 수도 있고, 저축을 많이 했다거나 부모님께 꼬박꼬박 용돈을 드렸다거나 집을 장만했다거나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음 – 하나씩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좋은 기분’이라고 적었습니다. 세번째 칸에는 올 한 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을 적어주세요. 저는 ‘연애 –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구나’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엔, 올 한해 만난 좋은 사람-을 한 명 적어주세요. 음, 세 명까지는 괜찮습니다. 🙂 이건 제가 적은 것을 이야기 드리기 어렵겠네요. 그리고 그와 어떻게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왜 당신이 그로 인해 영향을 받았거나,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에 대한 정보를 모으게 됐는지(꼭 직접 만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소녀시대의 윤아-라고 해도 괜찮아요!) 기록해 주세요.
…자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나이고, 그리고 가끔은, 내가 모르는 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돌아보는 내 자신의 모습
자- 이제 다시 한장 A4 종이를 꺼내주세요. 이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입니다. …그러니까, 롤링페이퍼를 돌려주세요. -_-; 대상은 가족도 좋고 친구도 좋습니다. 아니면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셔서, 나에게 하고픈 말을 써달라고 하세요. 🙂 기왕이면 무기명으로… 솔직하게, 나를 보면서 느낀 것이나, 또는 나에게 해주고싶은 말을. 롤링페이퍼 돌리기에 성공하셨다면, 정말 여러가지 말을 많이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_-;
어떤가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비슷한가요? 아니면 다른가요?
…아예 롤링페이퍼 돌리기에 실패하셨다면, 인간 관계를 다시 돌아보셔야 합니다. -_-; 가장 좋은 방법은, 12월 31일에 종무식하면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롤링페이퍼 돌리는 것입니다. 혼자하기 민망한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아니면 12월 31일날 가족 모임에서, 가벼운 게임처럼 같이 쓰셔도 되구요. 🙂
그리고 다시 A4 한장을 꺼냅니다. 그리고 가로로 2번 접어서 다시 4칸을 만듭니다. 맨 위에는 올 한해 들어 가장 후회하는 일, 또는 반성하는 말을 적으시면 됩니다. 저는 ‘말만 하고 지키지 못한 약속이 너무 많았다.’ 라고 적었습니다. 그 다음 칸에는 가족, 또는 친구나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으세요. 선언 같은 것도 괜찮고, 고맙다는 이야기도 괜찮습니다. 고맙다는 말이면… 상대방에게 꼭 들려주시기를 권합니다.
마지막 두 칸에는, 내가 내년에는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면 됩니다. 하나는 내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꼭 하고싶은 것들을.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고, 사업목표를 잡아도 괜찮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싶나요? 연애를 하거나 파워 블로거가 되고 싶다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내자’라고 적어봤습니다. …절대 연애 아닙니다. OTZ 함께 만들고 싶은 목표는, ‘가족들과 2번 여행 가기’로 잡았네요. 그 밖에도 목표가 몇 개 더 있지만, 공개적으로 이야기 드리기엔 민망해서.. 🙂
기록이 나를 만들어 간다
기록이 끝났다면 한번 쭈욱- 읽어보세요. 어떠신가요? 올 한해가, 내가 살아왔던 삶이 조금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다 적으셨다면 이제, 종이를 봉투나 파일에 집어넣고, 날짜를 적으시고, 창고나 책꽂이에 조용히 꽂아놓으시면 됩니다. 시간 나실 때 다시 읽어보셔도 괜찮지만, 굳이 다시 안 읽으셔도 돼요. 🙂 적은 것으로 충분하답니다. 다만 보관은 꼭 하셔야 해요. 그리고 내년 이 맘 때쯤, 작년에 적어놓은 것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참, 재미있으실 거에요. 🙂
신기하지만… 그렇게 적어놓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꿈은 이뤄집니다. 그렇다고 적어놓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용 없겠지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 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분명하게 인식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삶은 참 많이 바뀌는 법이니까요. 진짜인지 아닌지 궁금하시다면, 내년에 다시 한번 열어보시면 알게 되실거에요. 🙂
저는 어땠냐면… 작년에 다섯가지 적은 것 중에, 딱 2개만 빼고는 모두 이뤄져 있었답니다. … 물론 안된 것 중 하나는 연애-입니다만…OTZ (사,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더라구요!!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