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나는, 아이패드를 보면서, 왜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이패드는 기계다. 그렇지만 그냥 기계가 아니다. 예전에 애플이 그랬고, 맥킨토시가 그랬고, 아이폰이 그랬듯, 아이패드에는 꿈이 담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꾸었던 꿈이, 그들이 고민했던 철학이.
…잊지 말아 달라. 진짜 멋진 제품들은 그런 것이다. 세상엔 그냥 존재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어떤 것에도 이야기가 있고 철학이 있고 역사가 있다. 멋진 제품들은, 그 안에 담겨진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빚어진 존재다.
터치, 인간이 처음부터 꿈꿨던 컴퓨터 인터페이스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개발된 초기, 인간은 단순한 오퍼레이터에 지나지 않았다. 계산은 컴퓨터가, 자료 입력은 인간이. 이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런 타입의 인간 존재는 지금도 영화 같은 곳에서 많이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우주전함에서 근무하는 오퍼레이터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데이터를 입력하고 단순히 출력된 데이터를 읽어주는 존재로 설정된다.)
이 입장에 반기를 들고,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고민한 사람이 바로 베니버 부쉬였다. 그가 제안한 컴퓨터 시스템의 이름은 ‘메멕스’. 매멕스는 “인간의 기억을 보조하는 기계로서, 개인이 책, 기록, 통신 내용 등을 저장하고 손쉽고 바르게 이 문서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된 장치”였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이상적인 인터페이스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터치스크린 시스템이다. 후에 그 생각은 이반 서덜랜드의 ‘스케치 패드’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 인터페이스는 한편으론 터치 인터페이스의 시조였고, 다른 쪽으론 앨런 케이-에게 영향을 끼쳐, 이젠 다들 흔히 쓰고 있는 맥이나 윈도우 같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로 진화하게 된다.
아이패드 – 제프 래스킨과 뉴튼의 부활
그렇지만 MS 윈도우의 보급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정한 GUI 인터페이스는 일종의 만능 도구 상자였다. 앨런 케이는 수많은 창들을 열어놓고, 그 창들을 서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이 자라나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었다. 맞다.
GUI의 윈도우 시스템은 온갖 잡동사니를 늘어놓을 수 있는 책상이다. 노트가 필요하면 노트를 꺼내놓고,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꺼내놓고,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음악을 듣는 기기를 올려놓는다. 모든 것을 늘어 놓을 수 있는 책상, 그것이 들어있는 상자, 그게 바로 GUI 시스템이다.
…반면, 매킨토시의 진짜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 래스킨은, 그런 분주함과 복잡함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가 꿈꿨던 컴퓨터는 속은 복잡하더라도 겉은 지극히 단순하게 보이는 것. 사용자들은 그 속을 알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그런 컴퓨터였다.
“내 원칙은… 슬롯들을 모두 없애서 고객들이 컴퓨터의 내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고정된 사이즈의 메모리 안에서 모든 애플리케이션들이 구동되고, 스크린과 키보드, 대용량 저장장치가 한데 탑재된 진정한 완전체로서, 개발자인 우리가 그래픽 화면 등 모든 것을 일관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당신이 뭔가 떠올렸다면, 맞다. 그거다. 바로 맥을 비롯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에 적응된 기술적 원칙, 그 자체다. 제프 래스킨이 보기에 한 기계는 가급적 한 가지 목적에 이용되고, 무조건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우리가 전자레인지를 사용하기 위해 전자 레인지의 원리를 알 필요는 없는 것처럼, 우리는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도 기계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스, 애플의 전직 CEO 였던 스컬리는, 그런 철학에 자신의 메시지 패드라는 아이디어를 담아서 뉴튼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실패.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기계가 너무 일찍 나왔다. 기술 수준은 아직 그런 아이디어를 구현하기에 많이 미흡했다. 대신 팜에서 비슷한 기기를 만들어낸다. 간단한 비지니스 목적, 비서가 아니라 수첩의 역할을 하는 그런 기기, PDA를.
크런치 패드와 넷북, 어디서나 웹에 연결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21세기가 되었다. 인터넷망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하고, 이제 사람들은 웹을 이용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언제나 인터넷을 꺼내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맞다. 실은, 네트워크는, 웹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계속 연결되고 있었다. 스크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장치에는, 금방 네트워크가 연결되었다. 노래방 신곡 업데이트, 일기예보 알림 장치, 재고 정보 송신, 무선 펌웨어 업데이트 등.
그렇지만 웹은 스크린- 일종의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한다. 이제까지 디스플레이 장치는 앉아서 사용해야만 했다. 아니면 지나치게 인터넷 연결이 복잡하고 어렵거나. 그래서 누군가가 열망했다. 옮겨다니면서 웹서핑을 하고 싶다고. 어디서나 웹에서 정보를 얻고 싶다고, 읽고 싶다고, 연결되고 싶다고.
그래서 나온 것이 (하드웨어에만 치중한) 넷북이고, (라이프 스타일에 비중을 둔) 크런치 패드라는 아이디어다. 크런치 패드가 뭐냐고? 이 문단 위의 사진, 한 아가씨가 무릅에 놓고 쓰고 있는 기기가 바로 그것이다. 맞다. 저 기기는 아이패드가 아니다. 크런치 패드다. 어디서나 쉽게 웹서핑을 할 수 있는 웹서핑용 단순기기.
… 물론, 현실화 되지는 못했다. 이 꿈을 현실화 시키려는 것이 바로, 안드로이드 넷북이랄까.
아이패드, 이제 인터넷은 생활 속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아이패드가 나왔다. 아이패드의 컨셉은 간단하다. 변신 괴물이다(응?).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기본적인 개념이 똑같다. 필요할 때 필요한 기기로 변신한다. 이것저것 다 늘어놓고 쓰는 윈도우가 아니다. 아이폰이 있는데 왜 나왔냐고? 역시 간단하다. 아이폰은 휴대성에 중점을 둔 기기다. 간단하게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통화를 하면서 간단한 앱들을 이용한다.
입과 귀는 걸어다니면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읽는 것은 그렇지 않다. 못할 것은 없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아이폰의 작은 화면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맞다. 휴대성을 좀 희생하고, 읽기를 위해 화면을 더 키우면 된다. 아이패드는 아이폰에서 희생했던 한가지 특징, 바로 ‘읽기’에 좀 더 특화된 변신 괴물…이다.
게임도 하고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그것보단 눈으로 하는 행동에 더 많은 도움을 준다. 더 크게 영화를 볼 수 있고, 웹 서핑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 3G가 연결되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즐길 수도 있다. 왜 와이파이와 3G 버전이 같이 나왔냐고?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동하면서도 이 제품을 쓰고 싶어하겠지만, 이 제품은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앉아서’ ‘하지만 인터넷 연결을 고민할 필요없이’ 사용하는 기기다.
애플의 꿈은 완성되었다. 평소엔 아이패드로 웹서핑과 영화, 책등을 즐기고, 이동중엔 아이폰으로 친구들과 전화, 음악등을 듣는다. 조금 복잡한, 말 그대로 일(Work)은 범용성을 띤 PC나 노트북으로 해결한다. 오케이. 이것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가 있다.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놀이하며 사는 세상. 이제 우리의 삶은 일상적인 게임으로 전환된다. 언제 어디서나 스크린을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오케이. 나는 이제 잡스가 왜 이 제품을 최고로 꼽았는 지를 알게되었다. 이제 PC는 우리 삶에 완전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앉아서만 쓰는 PC는, 결국 만들어진 그 때처럼, 업무용 목적을 제외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이제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계(Symbiosys)가, 1차적으로 완성되었다. 이제 점점 더,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접근하고, 다르게 놀기 시작할 것이다. 다르게 생활하기 시작할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이 첫 번째,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이 두 번째, 휴대폰과 인터넷의 등장이 세번째 변화였다면, 이제 네 번째의 변화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앞으로 이 게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이 게임을 어떻게 즐길 것일가-하고 머리를 굴려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