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다를 떨어야만 하는 이유

팟캐스트 녹음 중에 한 컷

영원한 이별.
그것은 대화의 영원한 중단을 의미한다. 이별의 의미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지한다는 것이고, 만남은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같이 살면서도 대화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미 그 사람과 이별한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이별이든 우리가 이별을 슬퍼함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게 됨을 슬퍼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부모·자식·부부·연인·친구·동료 등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는 곧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인간관계가 있고 나서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서 인간관계가 생산된다.

나는 내가 맺고 있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집합점이다. 내가 있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바로 나의 삶과 자아 정체성을 결정한다. 나는 곧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총합이다. …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들과 어떠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가 곧 당신의 삶을 결정짓는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이 대화할 수 있으면 그것은 같이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화상 채팅을 하는 사람들은 비록 지구 반대편에 있다 하여도 함께 있는 셈이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데, 그것은 곧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죽음은 내가 맺고 있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순간적 소멸이라 정의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닫을수록 당신의 인간관계는 하나하나 소멸되어 갈 것이며, 그만큼 당신의 삶 역시 사라져 갈 것이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 신문방송학)_시사저널 2003/08/07 719 호

 

수다는 삶의 부수적인 활동이 아니다.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만이 삶을 만들지 않는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는 가도, 그 삶이 지닌 색을 만든다. 생산성 없는 그 많은 활동이 바로 나다. 우리는 수다 속에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진짜 갓생은, 몇 시에 일어나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운동을 하는 가가 아니라, 누구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가에 달렸다. 한 푼 값어치 없을지도 모를, 내 몸값과 하나 관계 없는 그런 활동이 실은 행복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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