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은 우리 두뇌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십 몇 년 전, 아직 21세기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그때 한창 유행하던 PC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소설들을 즐겨 읽었다. 주로 읽는 곳은 출퇴근 하는 지하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txt 파일로 갈무리 받아, 팜VX로 글을 읽었다. 참 재미있게 읽긴 했었는데, 나중에는 결국 갈무리 받은 파일을 죄다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에 붙여 넣은 다음, 글씨 크기를 키워서 후르륵 읽어버리고는 말았다. 조그만 화면으로 읽자니 너무 감질나서 어쩔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겠지만, 화면으로 글을 읽는 것에 별로 부담은 없었다. 북토피아에서 구입해 읽은 책만 백 여권. 이때만해도 앞으로 책은 이렇게, 텍스트 콘텐츠로 변하게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싸고,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저장공간도 필요없으며, 아무 때나 필요할 때 사서 볼 수 있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런 내 생각이 벽에 부딪힌 것은 북큐브 B815를 구입하고 나서였다. 그동안 북토피아에서 구입했던 전자책을 모두 옮겨받았을 때만 해도 뿌듯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 「전자책의 충격」을 구입해서 읽는데, 이게 왠 일, 분명히 어려운 책도 아닌데 글을 읽다가 자꾸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것이다. 딴 생각으로 빠진다고 할까, 아니면 집중하기가 어려웠다고나 할까. 그 다음 「브리다」를 읽을 때는 더 확실해졌다. 소설책 한 권을 읽는데 평소보다 2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중간중간 집중이 안되서 몸을 배배꼬기도 여러 번. 책 한 권 읽으면서 이렇게 힘들어보기도 오랫만이었다.

 

 

 

▲ 예전에 가지고 다니던 팜VX

 

 

책 읽는 맛이 달라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냥 책을 읽을 때와 단말기를 통해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전자잉크가 달린) 전자책 단말기로 책을 읽을 때가 서로 달랐다. 가장 쉽게 읽히는 것은 당연히 종이책이고, 그 다음은 백라이트가 달린 컴퓨터 모니터나 아이패드 같은 단말기, 가장 읽기 힘들었던 것은 전자책 단말기였다. 전자책 단말기가 읽기 편하지 않냐고? 물론이다. 눈도 덜 아프고 글 읽기도 편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니콜라스 카의 신작,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다루고 있는 것도 바로 나 같은 사람들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너무 익숙해져서, 정보를 사냥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깊게 읽는 능력은 점점 약해져가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비밀은 뇌에 있다. 뇌는 너무 적응력이 좋아서 우리가 어떤 미디어를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능력을 더 확장시키기도 하고 더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그 행위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해가고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만 한다.

 

 

미디어는 우리의 주인도 도구도 아니다. 미디어는 그냥 우리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갈라지는 지점도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는 가에 따라 결정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뇌는 말만 하며 사람들의 뇌와는 다르며, 그래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 행동을 낳게 된다.

 

 

 

 

 

인터넷이 우리 뇌를 바꿔 놓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과 그를 뒷받침하는 디지털 문화는 우리 뇌를 예전 세대와는 다른 뇌로 바꿔놓고 있다. 월터 옹의 지적대로 구술 문화가 비선형적 사고, 문자 문화가 선형적 사고를 낳았다면, 인터넷 문화는 진중권 선생님 말대로 2차 구술 문화, 비선형적 사고를 낳는 문화다.

 

 

인터넷이 비선형적 사고를 낳는 것은 인터넷 미디어 자체에 내재된 구조 때문에 그렇다. 인터넷은 수많은 정보로 꽉 차있다. 그 정보들은 하이퍼링크에 의해 연결되며, 구글과 같은 검색 기술을 통해 접근 가능하다.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주로 하는 행위가 검색-클릭-검색-클릭의 연속인 것과 같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의 뇌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부하가 걸려버리기 때문에, 텍스트 내용에 깊이 집중할 시간이 없다. 따지자면 우리가 웹 상에서 글을 읽는 행위는 ‘Reading’이 아니라 ‘Scanning’이나 심하게 말하면 ‘Hunting’에 가깝다. 흝어보고 골라서 클릭하면 바로 새로운 정보가 뜬다. 이는 링크를 클릭하는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보상이다. 이 보상은 우리 뇌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무엇을’ 찾고 있었는 지는 뒷전이고 아무 생각 없이 클릭, 클릭, 클릭하며 웹서핑을 하게 된다. 쉬운 보상이 있는데 어려운 보상을 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차분하게 글을 읽으며, 그 과정 속에서 고통을 겪다 이르게 되는 어떤 즐거움, 선형적인 사고는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그런 무의식적인 미디어 사용 습관 속에서 우리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예전 사용 습관과 새로운 사용 습관이 충돌해 혼란을 낳기도 한다. 전자책 단말기로 책을 읽다가 내가 느낀 혼란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 그곳엔 페이지를 넘기는 맛도, 손에 느껴지는 무게도, 어느 만큼 읽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책 두께도 없었다. 책 길잡이들이 다 사라진 꼴이랄까. 그러다보니 어느새 책을 읽다가 내 손과 눈은 길을 잃고 헤맨다. 손과 눈이 길을 잃고 헤매니 자연히 집중은 어려워지고 책 읽기가 힘들어진다.

 

 

 

 

 

 

 

다시 하이아라키의 시대가 온다?

 

 

이런 시대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다가올까. 진중권 선생님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고는 한다. 그저 사람들의 사고와 문화가 달라질 뿐이라고. 글을 쓰는 방식이 정보를 모아서 조립하는 것처럼 변해갈 뿐이라고. 니콜라스 카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러다가 잘못하면, 아~주 옛날 글을 읽고 쓰고 해석하는 것은 특정 계급(고위직 사제 = 하이아라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한마디로 비선형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나무는 봐도 숲은 보지 못한다. 추상적 사고에도 익숙하지 못하다(아프리카의 문자가 없는 부족들은 지도를 읽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 . 그가 보기에 집중하는 것, 사색의 시간을 보내는 것, 선형적 사고를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 어떤 패턴을 파악하거나 구조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지금, 인터넷 미디어 소비 습관에 익숙해져 가면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버리고 있다. 그게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붙인 이유다. 대안은? 글쎄…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우리가 인터넷을 버리지 않는 이상.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조심하며 살아갈 수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6점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청림출판

 

* 저자는 결론적으로 인간이 인터넷 미디어 소비습관에 익숙해지고, 그 습관을 조장하는 미디어(예를 들어 구글)가 효율성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점점 그 효율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이 글을 제대로 읽어줄 사람이 있을 지조차 장담하지 못하겠다.

 

* 책은 뇌과학과 미디어 연구, 두 가지를 바탕으로 씌여졌다. 내용은 흥미로우나, 어떤 사람들에겐 읽기 불편할 지도 모른다. 번역은 나쁜 편이다. 특히 책 안의 인용된 문장을 번역할 때는 더 심하다.

 

* 컴퓨터 바탕화면에 자연풍경을 깔자. 이미지로라도 자연풍경을 보게 되면,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한다.

 

* 이 책을 읽고 인터넷 미디어 사용습관으로 인해, 스스로가 산만해졌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창조적 단절』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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