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드님의 글 「애플은 어째서 삼성을 견제하려고 할까?」를읽고 씁니다. 글의 내용은 이제까지 있어왔던 애플 역사에서, 스티브 잡스가 여러차례 배신을 당했기 때문에 배신자들을 싫어하며, 삼성도 안드로이드폰 출시라는 배신을 했기 때문에 견제하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글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제가 관련글을 쓰는 이유는 그 글에 담긴 근거를, 저는 다르게 해석하가 때문입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애플 기업 역사상 되풀이 되어온 사건에 기인한다. 핵심 문제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 에 있다.

애플에게는 자기들이 컴퓨터의 역사에서 혁신을 전부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 혁신과정에서 애플은 일부 부문을 맡겨서 함께 커오던 파트너 회사에게 결국 압도당했다는 뼈아픈 과거가 있다. 애플 입장에서 그것은 통렬한 ‘배신’이고 파트너 회사 입장에서는 언제까지나 남의 밑에서 일할 생각이 없기에 취한 당당한 ‘독립’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두 가지는 MS의 배신, 다른 셋은 어도비, 구글, 삼성의 배신입니다. 그런데 그 사례들이 정말 ‘그랬던 것’이었을까요?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 이 남자가 진짜 악당인 것은 맞는 말입니다..

1) 잡스가 애플2 컴퓨터를 위해 빌 게이츠의 베이직을 사들였다. 그로 인해 힘을 얻은 빌게이츠는 IBM에 MS-DOS를 공급하면서 순식간에 애플을 넘어서는 기업이 되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빌 게이츠는 MS의 경영자이기 이전에, 한명의 뛰어난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애플2 출시 이전 알테어8800용으로 공급된 MS베이직은 아이러니한 이유로 인해, 당시 시장의 사실상 표준이었습니다. 반면 애플2는 이제 막 시장에 출시된 개인용 컴퓨터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잡스가 베이직을 사줬기에 MS가 성장했다, 라는 것은 별로 적절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애플2에 장착된 베이직으로 인해 MS의 매출이 높아지고, 애플2의 성장에 맞춰 MS도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애플2가 MS에 대해 어느 정도 의존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당시 애플2의 성장 배경에는 OS상에 베이직 언어가 탑재되었다는 점(전원을 넣으면 바로 프로그래밍 가능, 이전에는 대당 500달러를 주고 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70년대말 미국 고등학교 정규 교과과정에 베이직 교육 과정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이로 인해 애플의 교육용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1985년 만료를 앞두고 맺은 MS와의 라이센스 계약에서, 당시 개발중이던 (MS 베이직보다 뛰어난) 맥 베이직을 영원히 포기해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MS는 맥 베이직이 MS 베이직보다 뛰어난 것을 알고, 재계약조건으로 맥베이직 포기요구, 이후 1달러에 인수한 다음 영원히 묻어…버렸습니다.)

2) 매킨토시를 개발한 잡스는 그 안에 쓸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빌게이츠는 매킨토시용 오피스 개발을 승락하고는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매킨토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대한 일부 기술과 권리를 요구했다. MS는 얼마후 그 기술을 가지고 윈도를 내놨다.

여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미래를 만든 Geeks』에 잘 소개되어 있기에, 그 책의 일부(p299)만을 인용해 봅니다.

“당신은 우릴 속였어!” 잡스가 소리쳤다. “나는 당신을 믿었는데 당신은 지금 우리 것을 훔치고 있어.”

그러나 빌 게이츠는 냉정하게 그 자리에 서서 잡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찡얼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봐, 그 일을 보는 데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에게는 둘 다 제록스라는 부자 이웃이 있었고, 내가 TV를 훔치러 그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당신이 이미 TV를 훔친 사실을 안 것과 비슷하거든”

MS는 맥에 들어갈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맥 인터페이스를 사용할 권리를 (당연히) 얻었습니다. 조건은 맥 발표후 1년간 마우스 기반 SW를 출시하지 않겠다는 것. 계약서에 명시된 출시일은 83년 9월이고, MS의 윈도 발표는 85년 11월이니 계약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중에 애플 소프트웨어 갱신 계약(85년 11월)을 이용해, 맥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영구 라이센스를 얻어냈습니다. 잡스 퇴출 이후이며, 애플 역사상 최악의 거래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잡스가 빌 게이츠를 믿기는 개뿔이요. 잡스는 MS가 그런 것을 할 능력이 없다고 믿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MS는 1990년에 출시된 윈도3.0에서나 겨우 비슷한 정도의 GUI를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 이 아저씨도 만만하진 않다능..

3) 어도비는 결국 윈도우로 포토샵을 비롯한 모든 기술을 포팅하면서 맥을 ‘배신’했다. 그리고 잡스는 한참후 어도비의 플래시를 아이폰에서 배제함으로서 이 배신에 ‘복수’했다.

굉장히 복잡한 여러 정황이 있긴 하지만, 어도비는 PC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하리라 여기고 애플을 경시했습니다.

4) ‘안드로이드’란 개방형 운영체제를 내놓고 스마트폰 경쟁자가 된 구글의 행동은 잡스를 격분시켰다. ‘애플은 결코 검색시장에 진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글은 스마트폰에 진출했다.’ 

사실입니다.

5) 아이팟에서부터 부품공급업체로 이어져오던 좋은 관계는 삼성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독자적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를 내놓아 히트시키면서 파국을 맞았다. 그것은 애플과 잡스에게는 이젠 익숙해져버린 파트너 회사의 ‘배신행위’ 로 보였을 것이다. 

애플은 삼성하고만 특허 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htc를 비롯, 거의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와 특허 분쟁에 돌입했습니다. 게다가 삼성은 항상 부품공급자이며 제조사인, 그런 불안한 칼날 위에 서 있었습니다. 삼성의 경제 외교 역량중 상당수가, 삼성이 제조사라는 사실이 부품 공급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다시 말해 내부에 더 우월한 조건으로 부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쓰여진다고 합니다.

자, 실은 여기서부터 제가 하려는 말이 있습니다. 애플이 삼성을 제소한 것이 과연 잡스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MS, 어도비, 구글을 자신이 키웠는데 그들이 배신을 때렸기 때문일까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삼성에게도 이어진 것일까요? 대답은, 아니오-라고 생각합니다.

잡스가 애시당초 외부의 누구를 키울 인물도 아니고..-_-; 위에서 살펴보았듯, 그들은 서로 명백한 공생 관계였습니다.
MS 베이직은 애플2을 통해 매출이 발생하고, 애플2는 MS 베이직이 있기에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애플이 어도비에서 포스트스크립트 특허를 라이센스했기에 어도비는 성장할 수 있었고, 어도비가 있었기에 맥은 데스크탑 출판 환경에서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디자이너-등이 사용하는 전문가용 컴퓨터로 인식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이폰에 구글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탑재한 것은 상호 윈윈이었습니다.

…오래된 말을 다시 써먹자면, 이 세계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습니다.

비지니스 세계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분명히 여러가지 감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여러가지 정황을 하나의 감정-배신-이란 키워드로 이해하게 될 경우 이해는 쉬워지지만, 진짜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MS는 여전히 애플의 중요한 협력사입니다. 어도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바일 사파리는 여전히 구글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맞아요. 잡스는 폭군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과 충성심입니다. 충성심이 모자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해도 그에 대한 댓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질이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이제, 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보일 지언정, 그렇게만 운영되기에는 너무 큰 회사가 되버렸습니다.

…결국 우리는,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조금 더 차가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합니다. 어떤 이익 없이 애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플이 노리는 것은 구글이다

사실 특허 분쟁은 현재 비지니스 세계에선 매우 일상화된 일입니다. 특허 괴물들의 등장이후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들은 특허를 통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만큼 견제합니다. 여기에 적군 아군은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골탕을 먹이고, 판매를 방해하며, 안되더라도 크로스 라이센스 협정을 체결할 수 있으면 그 뿐입니다.

좀 성급한 이야기지만, 앞으로도 삼성과 애플은 쭈욱 지금 같은 관계를 가져갈 겁니다. 삼성이 그런 VVIP 고객을 잃고 싶어할 리도 없고, 애플에게 삼성만큼 안정된 품질의 부품을 저가에 다량으로 공급해주는 회사도 없을 겁니다. ..오죽하면 이번 특허 소송이, 삼성이 부품 공급 단가를 올리고 싶어했기에 제기됐다-라는 말까지 들릴까요.

그렇다면 애플은 왜 요즘, 소송 문제로 별로 쿨하지 못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여주고 있을까요? 하나는 내부적 요인. 스티브 잡스가 그만두기 전, 어떤 사업 모델을 완성시켜 놓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요즘 강하게 받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기적 요인. 요즘 특히 심하다 싶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시장이 확장되는 시점에 이런 특허 소송은 자주 일어나는 편입니다. 시장이 역동적이기에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선 즐겁지만.

마지막으로, 애플이 진짜로(실은 대놓고) 노리는 것은 바로 구글입니다. 스마트폰 제조사와의 특허 소송은 빙산의 일각일뿐, 최근 일어나는 대부분의 특허 관련 이슈는 모두 구글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히 안드로이드폰이며, 애플은 자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시장을 구글과 나눠먹을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구글도 결코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반격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루한 전쟁은, 결국 별 다를 것 없이 끝나고 말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이 진짜 노리는 것은, 소송 자체의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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