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굶기는 법은 있을 수 없다

누가 그런 법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사람 굶기는 법은 있을 수 없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한겨레에 실린 「기초생활보장제 뿌리 흔드는 ‘부양의무자 조사’」를 읽다가 이 말이 생각났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는 조사는 작년에 구축된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을 기초로 한다. 이 전산망에 등록된 부양의무자 가족의 DB가 179만에서 240만 가구로 늘어나면서 재산 파악이 용이해져,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이번 부양의무자 조사는 기본적으로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기존에 잘 파악되지 않았던 ‘딸이나 사위의 재산’이 파악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보건복지부는 현재 153만명 정도인 기초생활 수급자 가운데 10만명 정도를 부정 수급으로 파악하고 이미 통보를 마쳤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수급액 삭감 조치가 취해졌다. 다른 특례조치등을 통해 절반 정도는 구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약 5만명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내년까지 줄이기로 목표로 세운 숫자는, 4만 5천명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복지부는 딸과 사위의 재산이 179억원에 이르렀던 사례, 자녀의 소득이 2960만원에 달하는 사례, 사위가 현직 학교장이었던 사례도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례가 몇 건이었을까? 3건이다. 10만명중에서 3명이다. 한달에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액수는 44만원. 보통 절반은 방값으로 내고(영등포 쪽방촌 방세가 월 18만원 정도다), 2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10만명은 이제 (소명 자료를 제출해 구제받지 않으면) 한 푼도 못받게 됐다. 다른 10여만명은 5만원정도씩 지원금액이 깍인다. 이미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 몇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달 44만원이라고 해도 10만명이면 월 440억. 1년이면 5280억이다. 올해 복지예산이 86.4조원이니, 약 0.6% 정도의 금액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국민의 세금이라면 한 푼이라도 아껴써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 44만원 받아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44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다. 몇몇 부정수급자들에게야 용돈이었을 수도 있지만, 다른 모든 이도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애시당초 탈락기준인 부양의무자 기준이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는 탓이다(부양의무자가 가구 최저생계비 130% 넘는 돈을 벌경우 탈락. 예를 들어 2011년 기준으로 혼자 사는 아들이나 딸이 월 69만원을 넘게 벌면 탈락). 이미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양의무자등의 조건에 걸려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사람만 100만명. 신청조차 못한 사람까지 합치면 약 400만명에 달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비수급 빈곤층’을 양산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누가 보기엔 단돈 44만원일수도 있지만, 최저 빈곤층에겐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다. 이런 문제를 전산 한번 돌려서 너 탈락-하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지독히 안일하다. 이들이 모두 죽어나가도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긴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긴다면 그건 이미 정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신중해져야만 한다. 예산에 맞추기 위해 집행되는 복지, 소명자료를 내면 구제해 줄께-하는 자세가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그들 삶의 여건을 존중해줘야만 한다.
빈곤층은 계속 늘어가는데 기초생활수급자 숫자가 더 안늘어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다. 최소한 국회입법조사처의 지적대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개선될 때까지 만이라도, 이런 식으로 전산망 돌려서 적발하는 작업은 멈춰야만 한다. 헤밍웨이가 맞다. 사람 굶기는 법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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