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에는 칼 아이칸이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일의 배후에는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있었습니다. 칼 아이칸은 작년 10월 자신이 가진 지분을 늘려 모토로라 지분의 10.4%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모토로라의 기업 분할을 주도, 모토로라는 결국 모토로라 모빌리티와 모토로라 솔류션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이번에 구글이 사들인 회사로, 스마트폰과 TV셋탑 박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후 지난 7월, 칼 아이칸이 이번엔 모토로라 모빌리티에 강제로 특허를 매각할 것을 종용하게 됩니다. 그가 꼽은 이유는 지금이 특허 전쟁중이라 특허를 팔기 좋은 때이며, 특히 4세대 통신망에 대한 특허를 모토로라에서 많이 가지고 있기에 좋은 값에 팔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특허만 팔아버릴 경우 모토로라 모빌리티라는 기업 자체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현실입니다. 이미 모토로라는 작년 10월부터(칼 아이칸이 지분을 열심히 늘리던..) 애플등을 상대로 특허 전쟁에 돌입한 바 있습니다. (모토로라와 노키아는 현재 특허 전쟁을 일으킨 주범입니다.) 이 상황에서 특허만 팔아버리면, 자신이 가진 특허를 바탕으로 다른 기업들과 맺었던 크로스 라이센싱까지 모두 날아가게 됩니다.
... 이건 모토로라 모빌리티보고 휴대폰 만들지 말라는 얘기지요.
탱커, 구글의 등장
이 와중에, 다른 회사들(특히 MS)이 모토로라의 특허에만 군침을 흘리고 있을 무렵, 특허 전쟁의 방관자에서 탱커로 돌변하기 시작한 구글이 등장했습니다. 구글 입장에서 모토로라 인수는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일입니다. 이 거래로 인해 구글은 모토로라가 가지고 있는 특허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과 긴밀히 협조해 구글이 만든 OS를 바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레퍼런스 폰 + 휴대폰 기술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금액이 좀 크긴 하지만, 그 정도 금액이 아니었다면 이사회에서 승인해 주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 합병의 뒷 이야기는 몇년 안에 책으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확신합니다.) 아직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모토로라 입장에선 당연히 이득입니다. 안드로이드의 제작자인 구글을 등에 업은데다, 모토로라의 산자이 회장도 계속 경영 일선에 머물러 있을수 있을 것 같고(경영 환경이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칼 아이칸은 조단위의 이익을 올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른 회사들이 모두 윈도폰7을 함께 만들고 있을 때도 꿋꿋하게 혼자 안드로이드 제품만 만들어왔던, 그 충성도(응?)가 빛을 발한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 당장이야 윈-윈 하는 게임이지만, 과연 미래에도 그럴까요?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재앙이 아니라 희망이 되려면
사실 한국 기업들에겐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사실 자체가 재앙이나 다름 없습니다. 구글이 말로는 다른 기업들을 달래기 위해 모토로라에게 어떤 특혜를 주진 않을 것이다-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모토로라는 안드로이드 진영에게 있어서 레퍼런스급의 폰을 발매하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 폰 제작 실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예전에도 구글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실제로 레퍼렌스 형태의 폰과 태블릿PC를 여럿 발매해 왔습니다.
구글과 밀접하게 같이 일할 경우 OS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만큼 더 좋은(안드로이드 OS에 적합한) 폰을 발매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LG 같은 제조사들은 앞으로 윈도폰7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저가형 안드로이드, 고가형 윈도폰7으로 나간다고나 할까요. 망고 버전이 나온 이후, 윈도폰7 OS의 완성도는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한국 상황에선 MS가 폐쇄적인 정책을 융통성있게 풀기만 한다면, 당장 시장에 투입되어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물론, 구글이 그렇게 대놓고 차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 (구글 입장에선 죽어도(?) 다른 제조사들을 계속 끌어안고 가야만 합니다.)
제가 보기엔(..그리고 구글 공식 발표에도) 이번 인수에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노림수는, 바로 스마트TV 였거든요. 아시다시피 구글은 꾸준하게 스마트TV 셋탑박스 시장을 노리고 있었고, 이번에 인수한 모토로라 모빌리티가 만드는 또 하나의 품목이 바로 셋탑박스입니다. 왜 이 시장을 노리냐구요? 에이- 아시면서. TV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 시장..이거든요. 애플과는 좀 다른 이유죠. ^^
그렇다면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조금 쓰리긴 하지만 재앙은 아니고, 모토로라 인수를 통해 안드로이드 OS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으니, 다른 제조사나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일까요? 재앙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희망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현재 스마트폰은 기기 그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이 스마트폰 보급과 더불어 활성화되었듯, 이제 기기는 어떤 서비스를 함께 끌어안고 가야만 합니다. 기기만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시대는 애저녁에 멀어진 거죠.
...그런데, OS까지는 안바래도, 우리에게 그런 서비스가 있나요? 아니면 저들의 플랫폼이, 우리에게 그런 서비스를 만들 기회를 줄까요? 글쎄요.. ^^; 봐야 알겠지요.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회를 잡는 사람이 있다면 희망일 것이고, 안그렇다면 ... 아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