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처리를 증오하는 이유

오늘 재검토해보겠다는 발표가 있긴 있었지만, 며칠 전 국방부에서 “예비군 훈련을, 원래 복무했던 부대에서 받게 하겠다”라는 방침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지자 국방부가 내놓은 말이 가관. “일단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수정하겠다”였다. … 그런데, 이런 태도가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법이 아직 제정되기 전에,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회에 참석했던 노동부 주무 과장이 주장했던 것도 이런 식이었다. 기업들이 해고가 쉬워야 고용도 좀 많이 하지 않겠냐- 2년 이후 정규직 전환을 규정한 것은 2년쯤 계속 썼으면 그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지 않겠냐-는 의미다- 일단 고용이 중요하니 비정규직법을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계속 수정, 보완해 나가면 되지 않겠냐-라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다. 해고가 쉬우니 고용을 많이 했던가? 비정규직 비율은 엄청나게 높아졌고, 2년이 되어가면 짤리는 경우가 다반사. 어느덧 대졸 취업생들의 소원이 “정규직”이 되는 것이 되어버린 나라. 실질 실업률은 별로 떨어지지도 않았으면서, 불안정한 비정규직 비율만 확 늘어나 버린 세상.

…이거 하면 세상 좋아진다고 했던 놈들 다 나와! 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랄까.

3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정책의 변화라는 것은 늘상 이런 식이다. 순식간에 무엇인가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야금야금 세상을 바꿔버린다. 그래서 어떤 것이 지금 변하면, 당장 세상이 엉망이 될 것 같다고 외치는 호들갑은 별로 믿지 않는다. 한미FTA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FTA, 할 수도 있다. 그걸 한다고 해서 세상이 당장 지옥이 되는 것도, 천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큰 정책 변화일수록 길게 봐야한다. 조심해서 봐야 한다. 좋기만한 정책도, 나쁘기만한 정책도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 지금 호들갑을 떨며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익은, 그 다음에 자라나는 세대의 피해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파견법으로 인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10년후의 청년 세대였던 것처럼(2011년 비정규직의 61%가 20~40대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국가간 조약을, 그것도 상당한 강제성을 가지는 조약을, 언론에 공개되는 것도 쪽팔려서 밀실에서, 날치기로 처리해 버렸다.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을텐데 좋은 것만 보라고 말한다. 한미FTA의 장미빛 미래만 보여주려고 한다.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난 못믿겠다. 작년만 해도 G20 정상회담의 경제적 효과가 최소 21조에, 취업유발효과가 16만명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 그거 어디 갔는지 아는 사람?

▲ 같은 의미에서, 옛날 FTA는 좋았다-라고 말하는 것도 못믿는다

한나라당의 한미FTA 날치기 처리를 증오하는 이유

솔직히 한미FTA의 파급 효과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나는 평범한 시민이다. 살아가기도 바쁜데 협정문을 다 읽어보며 검토할 시간이 있을리 만무하다. 아니, 최근까진 한미FTA에 대해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들이 4년을 기다렸다는 시간 동안, 한미FTA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그 대책을 검토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손해보는 쪽과 이익보는 쪽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FTA와 같은 형태의 협정을 통해 흥한 나라도, 망한 나라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더 발전하지 말란 법도 없지만, 멕시코꼴이 나지 말란 법도 없다. 정부말 믿으라고? 우리 밭에서 정부말 믿고 바나나 재배했다가 갑작스런 수입개방으로 박살났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한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 두렵다. 도시에서 사는 시민으로써 가장 두려운 것은, 의료와 교통, 에너지 같은 공공부문이 민영화되고,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고, 요금이 오르는 것이다. 안그래도 살기 어려운데 공공부문까지 민영화되고 요금이 오른다면, 그건 굉장한 스트레스속에 살아가라고 밀어넣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이런 사례는 이미 숱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확실히 안하겠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보다 진지한 논의가 필요했다.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해. 그런 것은 우리가 이미 다 준비해뒀으니 니네가 따라오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어떤 이익과 어떤 피해가 있을 것이고, 그러니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해보자-라는 논의가.

…그런데 이게 뭐냐. 4년간 속씀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날치기?
이것이 내가 지금, 한나라당의 한미FTA 날치기 처리를 증오하는 이유다.

안한다고 세상 나빠지는 것 아니다

지난 2009년, ‘비정규직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었다. 2007년에 시행되었기에 2년 정도가 흘러갔고, 2년동안 고용한 비정규직들이 자동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한나라당과 경영자 단체, 보수 언론들이 이를 질색했다. 이 법이 그대로 존재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사업자들은 그럼 비정규직을 다 자를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고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말고, 계속 비정규직으로 놔두자”라는 아주 대담한 주장이었다. 무려 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개정되지 않으면 “100만 실업 대란”이 일어날 거라 주장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개정되었을까? 아니었다. 논란 끝에 개정안은 결렬되고 법은 그냥 그대로 남았다.

그럼 100만 실업 대란이 일어났을까? 개뿔. 혼란이 있었을까? 개뿔. 그냥 둬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럼 정규직은 엄청나게 늘어났을까? 개뿔. 애시당초 정규직 늘리려고 만들어진 법안이 아니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지만,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준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아무리봐도 토론도 준비도 부족하다. 그래서 한미FTA 무효화 운동을 지지한다. 하지만 동시에, 조약 비준 철회가 어렵게 됐을 경우도 함께 준비하기를 희망한다. “통과되면 대한민국 망한다”라고만 말하지말고, 어떻게든 대책을 준비해야만 한다.

…뭐, 진보세력 집권후 폐기도 대안이라면 대안이겠지만, 이건 말이 쉬운거고-

* 그나저나 이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설득하다가, 설득이 안먹히면 강행하는 태도를 단 한번도 버리지 않는다. 참 대단하다. 참 대단해서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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