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꼬리칸에 대한 짧은 이야기

* 스포일러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칸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고나서 처음 든 의문이, “왜 저 사람들을 살려두는 거지?”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일하지 않습니다. 가끔 부품-으로 조달되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 3요소- 토지, 자본, 노동중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잉여입니다.

그렇습니다. 꼬리칸은 ‘잉여’입니다. 그리고 잉여의 역할은 ‘폐쇄된 시스템’의 제어할 수 없는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입니다. 설국열차의 시스템 역시 100% 완벽한 것은 아니고, 어딘가에서 분명 헛점은 계속 드러납니다.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은, 그런 시스템의 오류를 교정하는 역할로, ‘사육’됩니다.

… 현실로 따지자면 하위 1%, 100량 차량의 단 1량. 홈리스와 비슷한 최하층 계급. 미디어에선 지워져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설국열차의 ‘꼬리칸’입니다.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가 그들을 ‘사육’하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보다 안정된 시스템일수록 ‘오류’를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취급합니다.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그래서 그것을 콘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필수적입니다. 꼬리칸의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합니다.

가끔 필요한 노동력을 조달하고, 열차 생존에 필수적인 키작은 아이들을 수리공으로 생산하고, 가끔 반란을 일으켜 설국 열차의 시스템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독재자는 언제나 적을, 악마를 필요로 합니다. 히틀러가 유태인과 집시를 그렇게 대했던 것처럼, 내부의 적을 만듬으로써 사람들을 통재할 합당할 권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상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가축을 사육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사육하는 메카니즘을 목격합니다. 교배, 적정량의 출산, 품종 개량, 도태… 그리고 도축. 그것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인간은 비바람을 막기 위해 집을 만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집은 다시 인간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그래서 설국열차는, 굳이 따지자면…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의 생각, 제 생각만은 아닙니다. 실은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자신의 책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에서 했던 이야기랍니다. 꼬리칸의 역할을 생각하다가, 오래전에 읽은 이 책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을 뿐이죠. 이 책의 규칙을 따르면 설국 열차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길들이는 추진력’ vs ‘야수화의 추진력’ 사이의 대결이었다고.

머리칸의 사람들이라고 달랐을까요? 비록 꼬리칸의 사람들보다 훨씬 문명화된 삶을 즐기는 것 같지만, 그들도 본질적으로 설국열차의 시스템속에서 사육당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는 확실히, 슬로터다이크가 말하는 ‘휴머니즘’의 결정판입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연히) 채택된 시스템. 하지만 역으로 인간의 삶을 결정하고, 어떤 계층에겐 폭력으로 드러나는 시스템. 존재의 근거이자 경배의 대상.

…열차안 사람들은 윌포드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열차를 숭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들이 채택한 시스템에 사육당하며 결국 자신들이 왜 살아가야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

시스템의 사육을 벗어나는 방법? 그건 다른 시스템을 상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남궁 부녀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열차안 권력을 놓고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열차 밖을 볼 줄 아는 마인드. 엔진칸의 문이 아니라 열차의 출입구를 열고 싶은 욕망. 말그대로 ‘다른 세상을 상상하라’는 오래된 구호의 재림.

아아, 짧게 쓰려다가 얘기가 길어졌네요. 아무튼 오랫만에 이것저것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영화를 만났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쏟아지니 글을 읽으며 아하, 그럴수도 있겠구나-하고 상상하는 재미도 즐겁습니다. 조만간 아무래도 다시 한번 보러가야 할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의 또 다른 생각은 어떠실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설국열차 글을 읽고 생각남 김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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