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아트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가

트위터에 리트윗된 아래와 같은 글을 보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쿠반 아티스트 에릭 라베로의 ‘언터처블’ 시리즈로, 언헤이트 재단의 후원으로 ‘아이들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시리즈 입니다. 2012년 칸느 광고제에서 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여기서 고민이 되는 것은 아래 패러디.

위 작품들에 영향을 받아, 누군가가 만든 사진입니다. 에릭 라베로의 작품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시리즈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기본 규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아동 권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시리즈인 관계로, 작품 주인공은 항상 ‘아동’입니다.). 그림자 역시 만들어진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에릭 라베로가 한국 상황을 비판해서 만든 작품으로 여기기 딱 좋습니다. 게다가 너무 시의적절하게 패러디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가 든 생각… 이런 패러디 아트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까요?

패러디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패러디 작품들은 지금까지 숱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 부분을 문제 삼으면 예술은 죽어요. 어차피 이 시리즈는 신부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권력을 대놓고 까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이 패러디는 패러디의 성격을 띄고 있는 선전물입니다. 정확하게는 작품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아이디어만 채용했죠. 어떤 면에선, 패러디…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형식적 차용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뭔가 씁쓸한 것은 사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한번에 정리하기는 어렵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란 것은, 분명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 에릭 라베로는 컬러 매거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고, 현재 베네통 등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스스로 쿠반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어 18세때 쿠바를 탈출해 아르젠티나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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