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정말,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아무런 기대도 없이 읽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데,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면 뭐가 좋은지- 그런 것들을 얘기하는 책인줄 알았다. 첫장을 들추자 마자 아뿔싸-했다. 이건 그런 책이 아니었다. 1년간 독서라는 방법을 통해 세상에서 도피한, 한 여자의 일기 같은 책이었다. 언니가 죽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책으로 도피하기로 했다. 망할. 내가 왜 당신 징징거림을 여기서까지 들어줘야 하는 거지?

그런데 턱- 처음부터 한 문장이 나를 사로 잡는다. “그것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어쭈, 이만하면 핑계도 진짜 그럴듯한 핑계다. 그래 일단, 한번 끝까지 읽어보자-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 조용하지 않은 무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고통을 ‘애별리고‘라고 한다. 사랑하지만 서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 지은이는 사랑하는 언니를 잃었다. 언니는 마흔 즈음 암으로 죽었다. 언니를 잃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억지로 참 씩씩하게 살아내는 척 했다. 그러다 그만, 그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곤 책을 읽기 시작한다. 블로그를 열고,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으며 그것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것은 여행이다. 애별리고로 인해 가짜가 되어 버린 삶을, 진짜로 돌려놓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 여행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언니와, 아빠와, 자기 자신을 비롯해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기억들이다. 삶은 기록되고, 기록된 삶은 다시 누군가에게 의해 생명을 얻는다. 아는 만큼 읽힌다고 했던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통해 책을 읽어내고, 그렇게 읽어낸 책은 다시 누군가의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렇게 1년간 혼자 떠났다가 돌아온 여행이 바로, ‘혼자 책 읽는 시간’.

그리고 그제야 지은이는 알게된다. 아무리 엿같은 삶이라도, 결국 긍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때로는 아주 작은 친절이,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언제가 마주쳤던 그 순간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기다리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다시는’ 같은 시간일 수 없는 그런 순간 속에 있는 ‘언제나’인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란 것을.

과연 그럴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봤고,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앞에 벌벌 떨기도 했었다. 내게도 분명, 빛나는 시간이 있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존재했다. 싱그러운 향기와 낯익은 웃음들에 취했던 나날이 있었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하루하루 불안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사람은 살아간다. 아주 작은 친절, 그것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은 댓글 하나, 같이 밥이나 먹자는 친구의 전화,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초여름 저녁 무렵, 맛있는 맥주를 밤늦도록 같이 마시며 나누는 친구들과의 기분 좋은 수다.

그래도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나도 한번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한다. 약간 고양이 오줌냄새가 나는 소파에 앉아서, 저녁 햇살에 떠도는 책 먼지의 향기를 맡으며. 어차피 독서란, 나 자신을 읽어내는 것과도 비슷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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