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신해철이 죽었다

0. 신해철이 다시 녹음해 공개한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앨범에 실린 ‘나에게 쓰는 편지’에는, 앞부분에 이런 독백이 나온다.

사는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대답은 … 그래, Yes 야.

무섭지 엄청 무섭지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근데 말이야 … 남들도 그래
남들도 다 사는게 무섭고 힘들고 그렇다고

그렇게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한발 또 한발..
그게 사는거 아니겠니?

1. 모든 콘텐츠는 기억이 된다. 기억으로 우리안에 새겨진다. 어떤 음악을 들었던 기억, 어떤 영화를 봤던 기억, 어떤 소설을 읽었던 기억. 그래서 콘텐츠는 여행과 같다. 그것을 맛보는 순간이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내 어린 시절 기억 한 편에는 그가 있었다. 신해철과 넥스트가 있었다. 그런데 … 신해철이 죽었다.

2. 신해철의 소식을 들은 때, 마침 마스다 미리의 ‘잠깐 저기까지만’이란 책을 읽는 중이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여기 있는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 이별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반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43년이라는 인생에 걸쳐 전해졌을 터.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그것만큼은 괜찮을 것이다.

3. 책장을 뒤져보니 ‘사랑의 날개는 너에게’라는 책이 나온다. 아주 오래전, ‘MBC 밤의 디스크쇼 신해철입니다’를 진행했을 때 그가 썼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24년전, 그러니까 1990년 10월 27일, 신해철은 이렇게 적었었다.

어디만치 왔니?
지금쯤은 어디니?
글쎄-.
정말 어디만치 왔을까. 그리고 지금쯤은 어디일까-.

밤 열시에서 열두시 사이.
여의도 스튜디오에 앉은 스물셋의 내 영혼이 나만큼 외로운 영혼인 너에게 묻는다.

4. 24년이 지난 지금, 나도 되묻고 싶다. 당신 지금, 어디쯤 가고 있냐고.

5. 그 다음날, 1990년 10월 28일, 날씨, 푸른하늘, 나, 햇살…이란 글에 신해철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사라져가는 계절아-
그래도 나는 정직했으므로
참으로 아름다운 때도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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