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컴퓨터를 처음 만난 소년들.

‘응답하라 1988’, 이 드라마 한편 덕분에 80년대 복고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80년대 패션, 80년대 음식 등 잘 기억도 나지 않는, 1980년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는데요. 이 드라마를 가만히 보다 보면,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딱 하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기기들입니다.

스마트폰은 물론 삐삐나 컴퓨터 한 대 없는, 있는 디지털 기기라고는 워크맨, 비디오 카메라, 전자 오락실 등이 전부인, 아주 아날로그적인 세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1988년 즈음. 하지만 고백하건데, 사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바로 이 1988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1988, 한국 컴퓨터 산업의 기반이 잡히다

우리나라가 컴퓨터 산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지는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실리콘 밸리에 대한 특집 기사가 처음 작성된 것이 다름 아닌 1983년. 당시 정부에선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선포해, ‘컴퓨터 산업’을 국가 아젠다로 삼을 것임을 공표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도 이즈음입니다. 컴퓨터를 무슨 만능 인공 지능처럼 여기는 그런 관심이었지만, 사람들의 생각 속에 컴퓨터란 것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1988년을 거치면서, 서울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이 88 서울 올림픽의 전산 시스템을, 83년부터 이어진 많은 우여곡절 끝에, 자체 개발해 성공적으로 운영해 냈습니다. 기적…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일이었죠.,

 

 

 

다른 나라가 보기에, 당시 한국은 이런 전산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없는 후진 국가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수행해 냄으로써, 국내 컴퓨터 산업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높이게 됩니다.

현재의 틀을 만든 다른 것 하나는, 국가 기간 전산망 사업입니다. 국가행정망, 금융망, 교육연구망, 국방망, 공안망 등 5대망을 구축하기 위해 1983년부터 추진되었던 이 사업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정보화 사회를 향한 초기 인프라를 깔았던 셈인데요. 중요한 것은 이와 함께 수천 대의 컴퓨터를 전국 관공서에 보급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국내 컴퓨터 산업의 기반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입니다.

 

▲ 1991년 PC 광고(출처)

 

마지막으로 이 즈음 처음 개인용 PC 시대가 살짝 개막을 했습니다. 물론 MSX나 애플2 호환기종 같은 8비트 컴퓨터는 이전부터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조금 보급되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집에서 컴퓨터 구입을 고려한 것은 1989년 교육용 PC 선정 때문이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에 컴퓨터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때 초등학교에 1만 6천여대의 컴퓨터를 보급하려고 했던 겁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겠다는 거였죠.

그러자 애들 교육을 위해서 컴퓨터를 사야 한다는 광고가 나오고, 이 사업으로 인해, 경쟁적으로 컴퓨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인 컴퓨터 시장이 막을 올렸습니다.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의 전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PC통신도 이때부터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 …애플2 호환기종을 쓰던 시절의 저입니다.

 

 

컴퓨터를 처음 접한 소년들은 무엇을 했을까?

그럼 컴퓨터로 무엇을 했을까요? 제가 생각할 때, 당시 컴퓨터 문화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게임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프로그래밍이었죠. 물론 유틸리티 소프트웨어(그래픽, 음악, 워드 프로세서 등) 활용도 조금 하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컴퓨터를 켜면 할 것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키면 바로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이 뜬다거나 아니면 커서가 깜박깜빡 거리며 명령어 입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전부. 대신 컴퓨터 잡지를 사면 그 안에 컴퓨터 프로그램 소스가 다 적혀 있었습니다.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잡지를 사서 직접 일일이 다 손으로 쳐서 입력했고요. 처음엔 정말, 그렇게 해서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프로그래밍은 꽤 재미있으면서도 힘겨운 일이었다는 것. 결국 다른 모든 것들과 비슷하게(응?)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게임을 훨씬 더 -_-; 많이 했습니다. 당시 초중고생의 컴퓨터 문화는 = 게임이었다고 보셔도 될 거에요.

굳이 컴퓨터가 아니어도, 당시에는 가정용 게임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런 게임기를 사서 집에서 오락을 하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 현업 게임 개발자로 활동하며, 초기 벤처 기업붐을 이끌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죠.

PC통신이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 맘 때 쯤이었습니다. 이때는 사설 BBS, 그러니까 개인이 만든 사이버 게시판을 많이 썼었는데요, 초기에는 지금처럼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어서, 전화번호 하나에 한 명만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시대는 금방 지나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말이나 되나? 싶을 정도로 단순했던 시절이었죠.

아니, 단순했을 뿐만 아니라, 이때까진 아직 컴퓨터 문화 자체가 소수의 문화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대학 등록금이 100만원이 안되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런데 컴퓨터 가격은 싼 것이라도 5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 했었어요. 89년 기준으로 금융권 초봉이 60만원 정도고 과장이 105만원 정도를 받았으니, 상당히 비싼 편이었죠. 그러다 보니 쓰는 사람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휴대폰의 역사가 시작되다

휴대폰도 이쯤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에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되고, 모토로라 다이나택 9800이 처음 출시되었죠. 무게는 700g으로 지금 9인치 태블릿 PC나 초경향 노트북과 비슷한 무게입니다. 가격은 당시 돈으로 240만원이었구요. 사용하려면 무선국 허가를 받아야만 했던, 사치품이었죠.

1년 뒤 삼성전자에서도 최초의 국산 휴대폰 SH-100을 시판하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88올림픽 당시 서울을 방문한 외국 귀빈들에게 ‘우리도 휴대폰을 만들 수 있다!’라고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휴대폰이었다고 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이 폰이 모토로라 스마트폰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만들어진 제품이란 사실입니다.

초기 한국 전자제품 산업의 상당수가 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서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눈물나는 개발 이야기들이죠.

 

80년대의 분위기를 다시 즐기고 싶다면?

지금 다시, 80년대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버추얼 애플2(http://www.virtualapple.org/ ) 홈페이지에서는 옛날 애플2 컴퓨터에서 즐겼던 여러가지 게임들을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시켜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옛 게임을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잠시 추억의 시간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옛날 게임을 지금 다시 하려고 하면, 진짜 힘든 것은 각오하셔야 합니다.

도스 시절 게임은 인터넷 아카이브의 MS-DOS 게임 라이브러리(링크)에서 즐기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게임을 고르고, 실행 버튼만 누르면 바로 즐기실 수가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재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가능한 FPGA 칩을 이용해, 옛날 컴퓨터를 다시 복각 시키기도 합니다. 위 영상에서 보시는 컴퓨터가 바로, FPGA칩을 이용해서 옛날 8비트 컴퓨터인 MSX를 다시 만든 원칩 MSX라는 컴퓨터입니다. 작은 칩 하나에 옛날 컴퓨터 한 대를 그대로 집어넣었습니다.

아이레코더란 이름의 스마트폰 스피커도 출시되어 있습니다. 80년대 카셋트 플레이어를 그대로 닮은 모습이 특징인데요. 마치 카셋트 테이프처럼 아이폰을 삽입하고, 음악 플레이와 빨리 감기등을 카셋트 플레이어의 버튼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보기만해도 80년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품이죠?

그 밖에도 80년대 디지털 문화를 다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즐기시려면, 뭔가 굉장히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지난 30년간 디지털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으며, 더불어서 엄청나게 많이 편해졌기 때문입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가 그때로 돌아간다거나, 기억나지도 않는 그때 문물을 다시 만져본다는 것은, 그대로 추억 파괴로 이어질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가끔 그때가 그리운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다는 두근거림, 그때 받았던 어떤 충격이 아직 우리 마음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겠죠? 아니면 한 집에 같이 모여 게임을 하면서 밤새 깔깔거리거나, 야한 -_- 사진을 도트 프린터로 뽑아 친구들과 함께 보다가 걸려서…-_-; 도망다니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맞아요. 그때 우리가 느꼈던, 어떤 기억 때문입니다. 별로 필요도 없으면서, 그때 이야기가 들리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안그런가요? 이제 중년이 된 그때의 소년 여러분?

추신. 물론 전 응팔 세대는 아닙니다.

추신. 이 글은 90년대 전자신문에 실린 ‘컴퓨터 파노라마‘ 기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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