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인 인터넷망 확산과 더불어 가까워진 세계는 전지구적인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도 함께 받아들여야만 했던거죠. 그렇다면 발전된 IT 기술을 이런 전염병을 막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미 10여년전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진 그리 큰 힘이 되진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무력한 IT 기술
현재 IT 기술이 전염병과 싸우는 방법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발병이나 진행 상황을 예측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염병이 발생했을 경우 빠른 치료와 확산 방지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 마지막 하나는 하드웨어적인 지원이죠.
자- 먼저 위에 링크한 영상을 볼까요? 몇 달 전 미국 코넬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재미있는 연구 결과에 대한 영상입니다. "만약 세상에 좀비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을지"-에 대한 연구 결과였는데요. 재미로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연구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 연구를 위해 사용된 시뮬레이션 모델이 실제 전염병 전파 연구에 사용되는 모델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전염병을 일종의 좀비로 가정하고, 실제로 전염병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 지에 대해 연구한거죠. 이렇게 전염병의 등장과 확산 과정을 예측하는 작업이 전염병과 싸울 때 가장 많이 쓰이는 IT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아직 제대로 활용하진 못하고 있지만, 2008년 조류 인플레인자 파동 이후 만들어진 ‘국가 동물 방역 통합 시스템’이 있습니다. 미국 IBM은 시공간 전염병리학적 모델러(STEM)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제공해 조류 인플루엔자등이 발생했을 때 시공간적 확산 경로를 보여주고 있고, 텍사스 독감 툴킷(TPFT)이나 캘리포니아 감염병 경보 시스템(DYCAST), 수프라맵등 다양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이미 존재합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이런 다양한 툴이 이미 존재하는 데도, 인류는 왜 제대로 전염병 발병이나 전파를 예측 못하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 에볼라 사태 때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예측결과를 내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예측에 따르면 2015년 1월까지 감염자수가 수십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되었지만, 다행히 그 정도까지 확산되진 않았는데요. 그렇게 된 이유가, 이 예측이 나온 다음에 시뮬레이션 결과에 놀란 선진국들이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해 에볼라 확산을 빠르게 진정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인간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생각 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 예측이 나오기 전까지 에볼라 피해 국가에 대한 국제적인 지원은 미약한 상태였습니다. 아프리카 전통 문화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었고(생각보다 빠르게 시체의 몸에 대한 관점 전환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신고 되지 않은 환자 수도 어림잡아 계산할 수 밖에 없었고요. 거기에 기후와 지형, 교역 상태, 도로망 등 그 밖에 많은 것들을 다 고려해서 설계를 해야 하니- 실제로 전염병에 대한 완전한 예측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입니다.
리얼리티 마이닝과 헬스맵, 그리고 프라이버시
그렇다면 아예 일상적으로 이런 전염병 관리 체계를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요?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리얼리티 마이닝이란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휴대폰을 통해 통화 기록, 위치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기계 학습 시켜서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뽑아내는 기술인데요. 이것을 통해 개개인에 대한 많은 것을 파악하고 대책을 찾을 수가 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 지역에 갔다온 사람이 병원에 왔다면 신종 전염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라고 스마트폰이 알려줄 수가 있단 말이죠. 하지만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아주 높아서,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리얼리티 마이닝 프로그램에 해킹 프로그램 하나만 심어 놓으면 사람 하나 벌거벗겨 놓는 것은 일도 아닐테니까요.
좀 더 공개적인 것으로는 헬스맵이란 서비스도 있습니다. 뉴스, 정부 홈페이지, SNS 등 인터넷에서 질병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류한 다음에, 지도와 매칭해서 보여주는 시스템인데요. 내가 접속한 곳에서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병을 조심해야 하는 지를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누구나 써볼 수 있는 서비스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여행가기 전에 한번쯤 체크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헬스맵(링크)
전염병을 빠르게 진단하는 방법
한편 새로운 질병을 빠르게 분석하고 진단하는 방법도 많이 개발 중에 있습니다. 흔히 나노 테크놀로지, 바이오 테크놀로지라고 불리는 기술들과의 융합을 통해서인데요. 다만 보건의료와 관련된 것은 임상 실험을 통한 검증이라는 단계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빠르게 상용화 되지는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테네시 대학에서는 휴대용 감염성 질환 확인 기기를 개발했습니다. 전염병이나 병원균을 비롯해 사람과 동물의 생리학적 상태를 즉시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기인데요. 이 제품에 탑재된 일회용 센서칩에 피를 떨어뜨리면, 항원 항체 반응을 이용해 특정 질병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진 인간과 가축의 결핵 여부를 검출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구요.
집에서 흔히 보이는 종이와 가정용 잉크 프린터로 전염병 진단 키트를 만드는 기술도 개발되었습니다. 전기가 통하는 전도성 잉크를 이용해 종이 위에 특정한 패턴을 인쇄한 다음, 그 위에 떨어뜨린 피의 피의 이동 시간등을 체크해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인데요. 서강대 신관우 교수와 충남대 권오선 교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입니다.
다양한 나노 소재를 이용해 감염성 질병을 진단/모니터링 하는 기술도 계속 개발 중입니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선 몇 년전부터 혈액 등에 나노 물질을 집어넣어 혈액 성분을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상용화가 될 경우 전염성 질병의 감염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드웨어적인 지원
하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방역 시스템일 것입니다. 열화상 카메라 자체는 오래된 제품이지만, IT 기술과 맞물리면서 자동으로 체온이 37.5도 이상인 사람이 잡히면 자동으로 경보음을 울리는 등, 1차 방역 시스템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년 전부터는 스마트폰 케이스나 악세사리 형태로도 출시되었습니다.
MS에선 모기를 채집하는 드론을 개발중에 있습니다. '프로젝트 프리모니션'이라고 불리는데요. 모기로 매개되는 전염병등을 탐지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구글 공익 연구 프로젝트인 구글오알지(Google.org)에서는 에볼라 치료를 돕기 위한 전용 태블릿을 만들었습니다. 엑스페리아 Z2 태블릿에 폴리카보네이트 커버를 덧붙인 구조인데요- 살균 소독이 가능하면서도, 종이 대신 검사 결과를 빠르게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미약하긴 하지만, 전염병과 싸우기 위한 IT 기술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지진/화산 폭발 예측 시스템이 얼추 비슷한 시기와 지역에서 지진/화산 폭발이 발생하는 지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곧 감염병 추적 예방 시스템 역시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 예측을 어떻게 수용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역시 한 사회의 정치적/문화적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