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종의 기원을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우연히 집어들었다. 요즘 읽었던 유전자, 호르몬 등에 관계된 과학교양서적들에서 하나같이 언급하고 있는 책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기에, 도서관에서 이 책이 보이자 ‘생각보다 얇네?’라고 생각하며 바로 집어들었다. … 어쩐지 얇더라. 이 책은 종의 기원이 아니다. 과학선생님 윤소영씨가 청소년을 위해 ‘종의 기원’을 풀어쓴 책이다. 우선 진화론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진화론은 근대과학을 비롯, 사회과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론이다. 사회진화론이나, 진화심리학 등 진화론의 개념을 받아들인 분과학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생학과 사회다윈주의와 연결되면서 타인종에 대한 학살을 옹호하거나 사회적 차별을 정당시하는 이데올로기로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문화콘텐츠에서 보고 있는 수많은 악당들도 바로 사회다윈주의를 이념적 바탕으로 한다. … 대표적으로 건담의 기렌 자비 -_-;;; (우수한 인간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개념이 다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정말 다윈은 약육강식의 경쟁을 옹호한 그런 비정한 사람이고, 진화론은 그런 비정한 이론일까?

종의 기원의 바탕이 된 이론들

– 린네, 자연의 체계 : 린네는 1735년 자연의 체계란 책을 펴내 생물을 분류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우리가 배우는 종-속-과-목-강-문-계 라는 자연분류체계가 그가 만든 체계다. 이를 통해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닌, 하나의 체계속에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18세기 백과사전파의 작업과도 비슷하다.).

– 퀴비에의 천변지이설 : 다윈의 이론은 19세기 유럽에서 지배적이었던 퀴비에의 천변지이(天變地異 하늘이 변하고 땅이 달라진다는 뜻)설에 대한 반대 입장에 있다. 천변지이는 이전까지 유럽이 가지고 있었던 인본주의적 입장, 종교적 입장을 바탕으로 19세기에 발전한 화석학, 지질학등의 성과를 수용하려는 입장이다. 천변지이설은 “지질 시대에 몇 차례씩 천변지이가 되풀이 되었고, 그때마다 대부분의 생물이 사멸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생물이 번식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이론(172)”이다.

–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 라마르크의 자연의 계단 : 그에 반해 지질학자 라이엘(지질학 원리의 저자)는 허턴의 동일 과정설(지구 작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학설)을 지지하면서 천변지이설에 반기를 들었다. 퀴비에와 같은 국립 자연사 박물관 교수였던 라마르크는 1801년 「무척추동물의 체계」를 저술하면서 ‘자연의 계단’이란 개념(모든 생물은 계단의 위아래로 나뉜 위계질서속에 있다는 개념)을 빌려와 ‘생물의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자연의 계단 위를 몸부림치면서…기어오른다(67)”라고 주장했다.

그 밖에 다른 과학자와 동물애호가, 동물 교배전문가들이 기록한 생물들의 양태와 지질학적 기록, 화석 기록등을 바탕으로 다윈의 이론은 성장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다윈은, 1831년 시작된 ‘비글호의 항해’를 통해 다른 대륙의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각 대륙의 서로 다른 동물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계통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25)”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후에 맬서스의 ‘인구론’은 다윈의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데 도움을 줬다.

계속 변화하는 생명의 종(種)

우리는 우리가 기르는 동식물이 다양한 변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떤 강아지나 고양이는 어떤 성격을 가지도록 종 개량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우리의 선택(인위선택)을 통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종의 기원 1장). 그렇다면, 자연속의 생명체도 알게모르게 자연선택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때까지의 인식을 반대하고 종은 끊임없이 변한다-라고 주장하는 것, 그것이 다윈의 첫번째 일이었다. 종은 작은 변종을 낳고, 작은 변종은 큰 변종이 되며, 그것은 다시 아종으로 이어지고 결국 새로운 종이 된다. 그렇게 종은 분화해나간다. 많은 생물들이 서로 닮은 이유를, 우리는 이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포유류의 배아기때 모습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박쥐, 강아지, 토끼, 인간의 배아가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흔히 진화의 간접 증거로 불리는, 생물의 상호유연성을 보여주는 것들인데, 보통 세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생물의 형태학, 둘째는 발생학, 셋째는 흔적기관이다. 예를 들어, 모든 강에 속하는 생물은 비슷한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말의 앞다리, 박쥐의 팔, 돌고래의 앞지느러미, 사람의 팔 등이 그렇다. 각 부분의 모양과 크기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만, 그 뼈들이 연결된 순서는 항상 똑같다. 위팔뼈-아래팔뼈-손뼈(207).

과잉생산, 변이, 그리고 자연선택

그렇다면 이렇게 생명이 계속 분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런 차이를 계속 낳게 하는가? 이에 대해 다윈은 생존 경쟁 속에 이뤄지는 자연 선택-이란 답을 내놓는다. 모든 생명은 한정된 지역, 한정된 자원, 다시 말해 자연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종을 유지, 확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결국 이는 자기자신의 종, 그리고 다른 종과의 경쟁을 불러온다.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생존을 위한 투쟁, 그것이 바로 생존경쟁이다(그리고 다윈이 전제한 생명의 기본적인 성격이다. 그가 보기에 모든 생물은 허락된 자원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77, 멜서스 이론을 빌려옴)). : 과잉생산 개념

동시에 모든 생물은 자연환경 속에서 서로 연결된 관계에 놓여있다. 제한된 먹이, 기후, 잡아먹히는 일, 전염병등이 생존경쟁을 낳는 요소다. 그리고 그 경쟁은 자신의 종과 변종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게 이뤄진다. 이때 개개의 생명체는 같은 종이라고 해도 서로 조금씩 다르며, 이 개개의 개체들에서 보이는 변이는 개체의 생존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이 변이는 자손에게 유전되는데, 유리한 변이를 나타내는 생물들이 ‘선택‘되어 자손을 남긴다.(다만, 생물이 자신에게 유리한 기능을 사용할수록 조금씩 변화하고, 그 변화가 유전된다는 (초기 진화론의) 용불용설은 오늘날 폐기되었다. 유전되는 것은 돌연변이다.)

다시 말해 생존경쟁은 진화의 주된 추진력이다. 각각의 개체들은 변이를 가지고 있고, 제한된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을 하며, 생존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이들이 살아남아 개체를 남긴다. 결국 이 경쟁에서 불리한(또는 덜유리한) 능력을 가진 개체들은 점점 사라지며 환경에 더 유리한 개체들이 더 많이 남게된다. 이것이 진화다. (자연선택은 유리한 변화를 보존하는 방식으로만 작용한다.)

인위선택(인간), 자연선택(자연), 자웅선택(사회)

물론 진화를 둘러썬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복잡한 자연환경을 비롯 서로의 관계, 그리고 어떤 우연적인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진화를 전체적으로 개괄하기 위해서는 긴시간을 필요로 하다. 몇백 몇천년도 아닌, 가끔은 몇백만년이나 걸리는 시간이. 예를 들어 4억년전 고생대 데본기에 나타났다가, 5천만년전에서 1억년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실러캔스가, 1938년 아프리카에서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 잡힌 사건은 진화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때로는 진화의 속도가 얼마나 느릴 수 있는 지를 증명해준 사건이다.

자연선택과 더불어 진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힘은 자웅선택이다. 다시 말해 어떤 놈이 짝짓기에 선택되느냐-는 일이다. 자웅선택이 자연선택과 다른 것은, 자웅선택은 생존경쟁이 아니라 자손 남기기 경쟁에 의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들이 좀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만큼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단선적이지 않은, 복합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윈이 놓치고 있는 것들

다윈은 많은 것에 있어서 선구자적 혜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 연구결과에 따라 부정되고 있거나 그가 몰랐던 부분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멘델의 유전법칙이다. 다윈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몰랐기에 융합 유전(부모의 성질이 자식에게 섞여서 나타남)을 믿었었다.

종의 기원에서도, 다윈은 그 스스로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고백하는 네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종의 기원 6장, 7장, 8장)

  1. 생물 종들이 매우 미세한 점진적 변화를 통해 다른 종에서 생겨났다면, 그 이행형, 곧 한 종에서 다음 종으로 변화해가는 중간 형태가 그렇게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 지질학의 기록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지질학은 군데군데 뜯겨진 책과도 같다.

  2. 다른 어떤 동물이 변화해서 박쥐처럼 특이한 구조와 습성을 가진 동물이 될 수 있었을까?

    답 : 자연선택 과정의 축적이다(하늘다람쥐, 가죽날개원숭이의 예).

  3. 본능이 자연선택을 통해 얻어지고 바뀔 수 있는가?

    답 : 본능은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다(144). 동물의 행동도 순서에 따라 짜여진 어떤 프로그램(고정된 행동패턴)에 영향을 받는다. 다만 자기 종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자연 상태에서 본능이 선택에 의해 변화한다.

  4. 서로 다른 종들을 교배하면 생식 능력이 없는 자손을 낳는데 비해, 변종들을 교배하면 생식력이 전혀 약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다윈은 대답하지 못했다. 현대 과학에선 불임, 또는 생식적 격리에 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교배시 유전자 수가 홀수가 되는 경우도 새끼를 낳지 못한다.


더 공부해야 할 것들

19세기가 천변지이설 vs 진화론의 싸움이었다면, 오늘날은 단속평형설 vs 점진론의 싸움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단속평형설은 “종은 보통 수백만년 동안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유지되지만,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하기 까지는 수 만년 밖에 걸리지 않는데, 이런 종 분화의 기간은 지질 시대로 볼때 순간(189)”이라는 것이다. S. 굴드가 대표적이다. 이 이론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는 “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다윈의 이론을 한결같이 똑같은 속도로 진화가 일어났다고 받아들였다는 주장은 굴드의 착각”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s.굴드의 책은 아직 번역이 안됐나..)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나의 점수 : ★★★★

자- 지금까지 장황하게 적었던 다윈의 이론은, 결국 그 자신이 종의 기원 마지막에 남긴 말로 정리될 수가 있다.

“이 법칙들이란 가장 넓은 의미로서의 ‘생식’과 ‘성장’, 그리고 생식 속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 ‘유전’, 생활조건의 직간접적인 작용과 용/불용에 의해서 생겨나는 ‘변이’, ‘생존경쟁’을 유발해서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형질의 분기’와 덜 개량된 생물형의 ‘절멸’을 일으키는 높은 ‘번식률’등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라 할 고등동물의 출현이 대자연의 투쟁, 기근과 죽음에 뒤이어 나타나는 것이다.(222)

그는 이것을 위엄이 깃든 시각이라고 불렀다. 그가 원했던 것은 지구의 역사를 관통하는 생태계의 법칙을 밝히는 일이었고, 그것은 분명 인간중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정하다기 보다는 냉정하다고 불러야만 할까. 하지만 인간이 지구에서 자리 잡게된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지구의 역사를 관통하려는 시각에서 인간보다 자연중심적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회다윈주의와 같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시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론에는 서로 서로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생명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며, 뒤에 나온 ‘인류의 유래’에서도 밝혔듯이 인간 사회는 자연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앞으로 조금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하나의 문을 열어준 책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이제 ‘종의 기원’ 원작과, ‘인류의 유래’도 읽어봐야 할라나.

종의 기원 –
윤소영 풀어씀/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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