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님이 쓴 ‘페이스북에는 왜 싫어요가 없나’란 글을 읽었다. 최근 페이스북이 ‘좋아요’ 버튼에 ‘멋져요’, ‘웃겨요’, ‘슬퍼요’ 등의 다른 감정 아이콘을 추가하면서, 왜 ‘싫어요’ 같은 나쁜 감정 묘사 아이콘은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에 광고하는 기업의 이익과 배치하기에 그런 아이콘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정말, 페이스북에 ‘싫어요’ 아이콘이 생긴다면 행복할까? 그렇다면 ‘미워요’, ‘꺼지세요’, ‘미쳤어요?’ 등등의 아이콘도 함께 만들면 좀 더 좋겠다. 우리의 삶을, 타인의 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기계적 형평성에 맡게 ‘긍정적인’ 아이콘과 ‘부정적인’ 아이콘을 반반씩 넣는다면 어떨까?
2. 당연히 말도 안되는 농담이다. 이원수 선생님의 오래된 동화 ‘이상한 안경과 단추’를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안경을 손에 넣었다가, 실망하는 사람이 나온다. 남의 마음은 둘째치고 자기 마음만 들여다 봐도 된다. 우리가 보여주는(보여주고 싶은) 삶은 그렇게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온갖 가면을 시시때때로 바꿔쓰며 살고 있다.
설령 기업 광고에 대해 짜증나는 감정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을 표시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법이 쉽지는 않지만, 특정 광고를 없앤다거나 스팸으로 신고한다거나 하는 방법이 이미 있다. 올라오는 글을 보지 않는 방법도 있고. 사실 페이스북에 싫어요 아이콘이 없는 진짜 이유는, 그런 아이콘이 생긴다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감정이 지배한다.
나쁜 반응을 받는다면 누가 글을 올릴까?
3. 인간의 판단과 행동은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어떻게 결정하는 가>의 저자 조나 레러는 “감정 없는 이성은 무력하다”고 했을 정도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면 우린 아주 작은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때론 행동한 다음에 이성적인 이유를 ‘만들어’ 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가 글을 올릴 때 ‘싫어요’ 버튼을 누른다고 생각하면, 쉽게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을까? 당신은 입만 열면 똥을 던지는 세상에서 입을 열 자신이 있는가?
인터넷은 타인을 괴롭히기 쉬운 공간이며, 심지어 올린 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짜집기해서 조리돌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면 사람들은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피한다. 그렇게해서 크지 못한 서비스가 바로 트위터다. 괜히 ‘어뷰징이 트위터를 망치고 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감정을 투명하게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환상이다.
좋아요 아이콘은 내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표시다.
4. 페이스북에 왜 싫어요를 나타내는 버튼이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필요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완벽하게 포장된 자신의 삶을 자랑하는 공간이라는 것도 착각이다. 대부분은 예전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다름없이, 정보를 얻거나 소소한 감정과 이런 저런 순간들을 공유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 그런 공간에 ‘싫어요’ 버튼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공개 커뮤니티와 사적 SNS를 착각한 것이 아닐까?
애시당초 페이스북 아이콘은 ‘내가 가진 여러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타인에게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에 더 가깝다. 내가 아무리 누군가가 싫어도 대놓고 이야기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잘난 척 하는 친구가 있다면 조용히 팔로잉을 끄면 된다. 그럼 됐다. 딱, 내가 예의 바르게 공감을 표시할 만큼의 아이콘만 있으면 된다. 페이스북에는 싫어요가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