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가 기간, 어머니를 모시고 북규슈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무사히 끝났지만, 중간에 자칫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한 일이 있었다. 흔히 쓰는 USB 충전기, 지난 여행에서도 썼던 이 충전기가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사건은 여행 중간에 들린 온천 호텔에서 일어났다. 평소처럼 벽 콘센트에 usb 충전기를 꽂고 보조 배터리를 연결하고 침대에 누웠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라디오 주파수를 잘못 맞춘듯한 끼-끼 파파파파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해서 일어나 보니, 콘센트 쪽에 불이 나서 까만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불을 끄고 보니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지독했다. USB 충전기가 폭발한 것이다. 정신이 조금, 아찔해졌다.
만약 이 일로 인해 불이 났다면(실제로 충전기에 불이 붙었다.)? 만약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다치셨다면(깊이 잠들어 계셨다.)? 호텔 벽지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니 섬찟하긴 하지만, 다행히 그때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이걸 어떻게 빼낼지, 혹시 호텔에서 이 일을 알게 되거나 늦게라도 화재 경보가 울리는 것은 아닐지. 이런 것들이 먼저 걱정됐다. 비상용 탈출구라고 쓰인 베란다로 나가 불난 제품의 열을 식히고, 비닐봉지에 밀봉한 다음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었다.
갔다 와서 충전기를 구입한 쇼핑몰에 연락했다. 이런 사고가 난 경우 어떻게 하면 되냐고. 고객님이 원하는 것을 말해야 처리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은 환불하고, 연결했다가 고장 난 보조 배터리는 교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같은 쇼핑몰에서 구입했다.).
생각해보면 운이 참 좋았다. 곧바로 잠들지 않아서 화재를 발견할 수 있었고, 호텔 벽지는 내열/내화성 벽지였다. 어머니는 깊게 잠드셔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아셨다면 여행을 망쳤을 것이다.). 잘 쓰던 제품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싶었는데, 돌아와 찾아보니, 원래 USB 충전기 발화는 잘 쓰다가 어느 순간에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튼 여행은 잘 끝났고, 이 사건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평소 방송에서 전기 충전 관련 제품은 비싸고 좋은 것을 사라고 말해 놓고, 막상 나는 적당한 국산 제품을 구입했다 혼났다. 자기가 한 말을 자기도 안 지킨 벌일까.
그러니 다시 말한다. 전기 충전 관련 제품은 무조건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가급적 화재 보험에 가입한 제품을 사라고 말하고 싶지만, 화재 보험에 가입한 제품이 별로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유명한 브랜드나 유명 회사의 제품들조차도.
이번엔 실제 벌어진 결과가 심각하지 않아 쇼핑몰에 먼저 메일을 보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 보호원에 의뢰하면 된다. 대부분 거기서 정한 분쟁 처리 기준을 따른다. 마지막으로 전기 관련 제품들은 항상 위험이 뒤따른다는 것을 고려해, 항상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것이 좋겠다.
아 정말, 자기가 말해 놓고도 자기가 당해봐야 깨우치니, 난 정말 바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