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위한 무인화는 없다
은행 점포 감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20% 였던 점포 이용 고객이 2010년대 들어 10% 대로 감소하면서, 은행은 그 핑계를 들어 점포를 빠르게 줄여갔다. 4대 은행 기준 2012년 4136개였던 점포가 2018년에는 3500여 개로, 600여 개 넘게 폐쇄했다. 덕분에 요즘은 어느 은행엘 가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일도 잦다. 모바일 뱅킹을 아예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점포에 가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이익을 위해 이용자를 희생시켰다.
패스트푸드 점도 마찬가지다. 재작년부터 빠르게 보급된 무인 키오스크는, 이제 어느 매장에 가도 흔히 보일 정도로 많아졌다. 대부분 렌털이라, 도입/유지/보수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싸면 월 10만 원 이하에도 임대 가능). 사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맥도널드를 이용했을 때에도 무인 키오스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돈 아끼는 일이라면 기업은 빠르게 움직인다. 다만, 그것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을 때나 곱게 봐줄 수 있다.
오늘 나는, 화나는 일을 겪었다. 저녁에 일이 있어 걸어가던 중이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울 생각이었는데, 옆에 롯데리아가 보였다. 와규 버거를 싸게 판다기에 들어갔는데, 무인 주문 시간이라며 무인 키오스크로만 주문이 가능했다. 무인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려는데, 뭔가 복잡하다. 세트 메뉴를 고르려는데 안 보인다. 행사 메뉴에서 와규 버거는 찾았는데, 세트 메뉴를 주문할 방법이 없다. 뒷 분에게 먼저 주문하시라고 양보하는데, 괜찮다고 다시 주문하시라고 친절하게 대꾸해 주신다. 다시 주문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내가 너무 서툴러서 그런가? 뒤에 계신 분도 도와주려고 합세했는데, 역시 안 보인다. 다른 분까지 합세해 셋이 주문하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결국 일하는 분에게 뭔가를 물어보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행사 상품은 세트로 주문할 수 없다'라는 자체 결론을 내리고, 그냥 클래식 치즈 버거를 골랐다. 그제야 세트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간다. 하아. UI 참 엉망으로 설계했다. 클래식 치즈 버거를 고르니 아까 도와주시던 분이, 자기 이거 할인 쿠폰 있다고 쓰시라고 주신다. 괜찮다 하니 직접 쿠폰 결제를 해주시려는데, 이번엔 쿠폰이 먹지 않는다. 도와주시려던 분이 당황하셔서 직원에게 왜 이 쿠폰 안되냐고 묻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햐. 진짜 무인 키오스크의 진가를 맛봤다. 그렇지, 이런 게 무인이지. 내가 미안해서 그냥 괜찮다 말하고, 포인트 적립이고 뭐고 넘어가서 그냥 주문했다. 주문하고 햄버거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늦게 나오는 바람에 내 주문번호가 표시판에서 사라져서, 당황했던 건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
롯데리아만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무인 키오스크 시스템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다. 기존 시스템에선 사람이 이런저런 것을 확인하고 물어보지만, 무인 키오스크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POS 기에서 쓰던 인터페이스를 소비자용으로 그냥 옮겨온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이상할 정도로 불편한 UI로 가득 찼다. 심지어 홈페이지에서 주문할 때보다 못하다. 일하는 사람도 POS 기는 배워야 쓴다.
구조 자체가 간단하기에 익숙해지면 별 일 아니지만, 소비자에겐 스마트폰에 새로운 앱을 깔아서 사용 설명도 없이 바로 써야 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자주 가는 사람이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말까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라서, 다른 나라에서도 무인 키오스크에서 주문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 무인 키오스크 자체가 소비자에게 불편한, 소비자에게 노동을 떠넘기는 구조다. 주문할 때 줄을 덜 서도 된다는 이점을 빼면 좋은 게 별로 없다. 음, 목소리로 주문하는 일이 불편한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방콕이나 시드니에선, 문제가 생기면 직원이 바로 대처를 했다. 옆에 와서 사용을 도와주거나, 주문대로 불러 이쪽에서 주문하라고 요청했다. 사람을 배제하고 무인 키오스크만 이용하라고 강요하는 가게는 한국 롯데리아가 처음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뭐라고 못하는 것이, 아예 시스템을 그렇게 짰다. 그럴 수 있다. 가끔 지하철 역사에 들어섰던 '자판기'를 가진 가게들이, 그냥 카운터에서 지불하겠다는 사람에게 반드시 자판기에서 주문해야 한다고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하지만, 최소한 거기에선,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 바깥으로 나와 도와주는 척이라도 했다.
무인 키오스크를 운영해서 롯데리아가 얻는 장점은 분명하다. 일단 인건비 절약(이 될 것 같다.). 대면 주문 과정에서 생기는 트러블 방지. 정말 빨리 주문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으니 매출도 올라갈 거다. 덤으로 노년층 같은, 무인 주문을 어려워하는 고객층이자 별로 매출에 도움 안 되는 고객을 내치는 효과도 생긴다. 거의 완벽하게, 회사를 위한 시스템이다.
그럼 그 버려진 노동은 누가 대신할까? 고객이다. 내가 무인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워서 내가 주문해야 한다. 아름다운 셀프 시스템. 이제 햄버거만 로봇이 만들면(조만간 상용화될 예정이다), 가끔 매장 청소하고 관리할 직원만 채용하면 되겠다(햄버거보다 테이블 정리와 분리수거가 로봇에겐 더 어렵다).
... 그러니까 롯데리아가 버린 노동, 고객인 내가 대신한다
오늘 햄버거를 먹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만 들었다. 대체 내가 왜 이 창피를 당해야 할까? 내가 왜 무인 키오스크 시스템에 적응해야 할까? 나를 도와주려던 그분까지 왜 창피해야 할까? 도대체 왜 원래는 간단히 물어보고 '아, 그건 안돼요?' 하면 끝났을 일이 이렇게 커졌을까? 도대체 햄버거 하나 먹자고 내가 왜 이래야 해?
뭐, 상관없다. 이제 나는 롯데리아를 버린다. 내 뜻이 아니다. 롯데리아가 상정하기에 나는, 이런 키오스크를 보자마자 쓰지 못하면, 내칠 고객이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롯데리아를 버리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아쉬운 고객이었다면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을 리가 없지. 기업이 돈 안 되는 일을 한다고? 그럴 리가. 그게 돈 되니까 주문받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무인 키오스크 만들고, 그렇게만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을 책정해 놓은 거지.
앞에 예로 든 은행도 마찬가지다. 최근 너무 빠르게 은행 점포가 사라지면서, 지점 폐쇄와 관련된 규제를 만들 예정이었다. 은행권 로비(?)로 무산되고, 은행연합회에서 ‘은행 지점 폐쇄 절차 등에 대한 공동시행방안’ 정도의 합의안만 발표되고 끝났다. 함부로 폐쇄하지 못하게 하려다, 결국 여전히 은행이 알아서 폐쇄할 수 있다. 무인 키오스크를 만들려면 최소한 유인 창구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마음 접었다.
소비자를 위한 무인화는 없다.
징징 대기에도 내 시간이 아깝다. 그러니까 그런 가게를 버린다. 그게 소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다. 곤란해하는 소비자를 도와줄 생각도 없는, 예의 없는 회사에 대한 내 입장이다. 잘 가라, 롯데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