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환경이 건강의 적인 시대, 스마트 밴드와 디지털 헬스케어

언제부터 내가 하루에 얼마나 움직이는 지를 측정하게 되었을까? 계기는 있다. 아이폰이다. 아이폰을 사고 다양한 여행 앱을 테스트해 보면서, 스마트폰 GPS를 이용해 이동한 궤적과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 썼던 것은 아니다. 계속 켜 두면 배터리를 엄청나게 잡아먹었으니까.

헬스케어 앱을 쓰게 된 것은 1~2년이 지난 다음이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엔도몬도라는 앱으로 자전거를 탔던 거리와 시간, 어디부터 어디까지 타고 다녔는 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나이키 퓨얼 밴드를 사용했고, 밴드가 고장 난 다음엔 G워치, 가민 워치, 미 밴드까지 계속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 밴드를 차고 다녔다.

이렇게 말하자면 근사해 보이지만, 어차피 그래 봤자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온갖 형태로 디지털 만보계를 차고 다녔다고.

 

 

디지털 만보계를 왜 그리 열심히 차고 다녔을까? 사실 그렇게 근사하지도 않다. 스마트폰 앱은 운동할 때마다 일일이 끄고 켜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스마트 밴드를 차고 다닐 땐 자석 팔찌냐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고, 스마트 워치는 값싼 전자시계를 차고 다니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 그렇긴 한데, 묘한 매력이 있다.

내 하루가 숫자로 바뀌어서 보인다. 그 숫자 하나로 오늘 제대로 움직였는지 아닌 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는 것, 헬스케어 제품들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아직 헬스케어 제품에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웨어러블 기기를 사거나 앱만 깔고 그냥 둔다. 영어 교재를 사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되묻게 된다.

… 이거 정말,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 맞긴 맞는 거야?

 

 

 

2014년, 애플과 구글,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다

 

건강은 모르겠지만 돈이 되긴 하는 모양이다. 2014년, 구글과 애플은 헬스 케어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밝힌다. 구글은 구글 I/O 2014에서 ‘구글핏’이란 헬스케어 플랫폼의 개발 키트 프리뷰 버전을 공개했고, 애플도 WWDC 2014에서 ‘헬스킷’이란 이름의 건강관리 플랫폼을 공개했다.

핵심은 같다. 다양한 헬스케어 앱과 디바이스의 데이터를 손쉽게 연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사용자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의료 시스템과 연동).

약간의 차이는 있다. 구글핏은 다양한 기기와 앱의 연동에 좀 더 중점을 두는 반면, 헬스킷은 다양한 앱과 기기에서 취합한 정보를 한 곳에 모아 편리하게 이용하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구글이나 애플이나, 좋은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모바일 헬스케어의 중요한 요소는 신체 정보를 측정하는 ‘센서’ 기술과 센서를 통해 측정된 데이터를 저장/전송하는 ‘스마트 기기’, 그리고 이렇게 측정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소프트웨어’다. 구글과 애플의 헬스 플랫폼은 이 3가지 요소를 다루는 앱과 기기를 보다 쉽게 통합하도록 해준다.

그래서일까? 헬스케어 앱을 만들던 회사들은 이들의 참전을 반겼다. 전에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헬스케어 기업 대표는 “굉장히 긍정적”이라며 “지금까지 다른 앱이나 서비스에서 제휴 제안이 들어와도,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플랫폼이 생기면, 그런 것들이 쉽게 가능해진”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까지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구글과 애플의 참가 이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게 된다. 2015년 790억 달러 규모였던 시장 규모는 2017년 1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19년에는 1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은 매년 연평균 성장률이 40%가 넘는다.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2가지다. 하나는 베이비붐 세대가 점점 고령화되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때문에 높아가는 의료보험 비용과 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밀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국가 재정을 아끼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원격 진료가 활성화된 이유도,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1997년부터 원격 진료에 의료보험을 통해 진료비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미국이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DPP)등의 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생활습관을 교정했을 경우 당뇨병 같은 대사 증후군의 발병이 훨씬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사 증후군의 발병률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그 나라들은 조금 다르다. 유럽 위원회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개도국에선 의료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도입하는 경향이 높다.

 

보이지 않는 위험, 그리고 진짜 운동하기 위해서

 

국가가 지원하긴 했지만, 사회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의 증가는 실재하는 문제이며, 내 문제이기도 하다. 생활습관을 적극적으로 고쳤을 때 여러 대사 질환의 발병률을 줄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덜 아프게 되는 것도 맞다.

자신의 생활습관을 교정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생활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로 인해 자극받는 것이 최선이기도 하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 하지만 아직,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가장 위기에 처한 분야는 역시 프라이버시다. 개개인에게도 중요하고, 앱이나 기기를 개발하는 다른 회사들에게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이다. 이 부분이 확실히 개개인에게 있어야 한다.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특정 회사가 가져간다면, 그로 인한 문제가 커지게 된다.

물론 애플 같은 회사는 그런 데이터에 손대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히긴 했지만, 예전에 미국 유명 연예인들의 누드 사진이 유출됐던 것처럼 데이터를 중앙 서버에 저장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구글은 개개인을 분석한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 회사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위험성을 빼고도, 헬스케어 앱이나 서비스가 넘어야 할 산은 여러 개가 있다. 미국은 원격 의료가 허용된 나라라 애플이 병원과 손을 잡고 원격 진단을 한다거나 하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원래 의료 분야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대단히 보수적이다.

최근 갤럭시 워치 액티브 2에 달린 심전도 측정 기능과 앱이 허가받기는 했지만, 원래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위 하나라도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것만을 써야 할 정도다. 거기에 스마트 기기로 측정된 여러 수치들의 신뢰성 문제도 여전히 의심스러운 상태다.

하지만 외면할 필요는 없다. 헬스케어 앱이나 기기들을 잘만 사용하면 건강 관리에 도움을 받을 수가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라도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울하지만 당신이 뼈 빠지게 일해서 집을 산다고 한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 간단히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 자체가 건강의 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것들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영어 공부랑 똑같다. 좋은 앱과 기기를 고르고, 자주 들여다보고, 열심히 따라 하면 된다. 그게 정말 쉽지 않아서 문제지.

 

* 2014년에 기고한 글을 요즘에 맞게 조금 손봐서 올립니다. 실은 다른 글을 올리려다가, 옛 글을 아직 안 올린 걸 또(!) 발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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