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 펀딩에서 살아남는 법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일까 보물섬일까

 

꿈과 희망이 넘쳐흐르는 보물섬 같았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나와 같은 Geek 들에겐 새롭고 신기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별천지다. 관련 사이트는 인터넷 붐을 등에 업고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지만(키바(2005), 인디고고(2008), 킥스타터(2009), 고 펀드 미(2010)), 재미있는 제품은 2012년쯤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때쯤 미국에서 잡스법이라 불리던 ‘점프 스타트 아워 비즈니스 스타트업스(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JOBS) Act)’법으로 인해 몇 가지 규제가 풀렸다. 스마트폰 산업이 성장하면서 여러 센서 같은 다양한 전자 부품을 싸게 살 수 있게 됐다. 인터넷과 SNS를 쓰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네트워크 기반 단체 행동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관심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다. 해외에서 성공하자 한국에도 비슷한 곳이 나타났다.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334억 달러로 성장했으며, 세계은행은 2020년 90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었다. 사이트에서 다루는 영역도 공연, 기부, 투자, 신제품 등 다양하며, 2천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모은 프로젝트(페블 스마트 워치)도 탄생했다.

2018년 한국 와디즈 사이트 한 곳에서 진행된 펀딩 건수가 3,500여 개, 펀딩 금액이 601억 원에 달한다.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도 신규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어느새 1년에 10여 개 제품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지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잠깐, 했던 이야기를 정정하자. 크라우드 펀딩은 지르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 물건을 ‘산다.’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투자나 기부다. 그 대가로 제품이 완성되면 보상(리워드)을 받을 뿐이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처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돈을 모은다, 그게 크라우드 펀딩의 기본이다. 돈을 모아 기부/후원하거나, 자금을 대주고 보상을 받거나, 빌려주거나, 대출이나 주식을 대신 받는 등 쓰임새는 다양하지만 구조는 같다(다만 대출형과 증권형은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다시 말해, 투자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홍보와 다른 형편없는 물건을 받거나, 아예 리워드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과 내 책임이란 말이다.

보물섬에는 꿈과 희망만 있지 않다. 해적과 사기꾼, 양아치, 거짓 예언자, 그럴듯한 몽상가가 함께 있다. 투자자는 신중하지 못했다. 출시된 제품도 아니고, 물건을 받을 날짜는 캠페인이 끝나고 적어도 몇 개월이 지나야 하는데,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다.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다. 내 이야기다. 작년에 투자한 10개 제품 가운데 7개는 그저 그랬다. 다른 사례도 끝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출시일 연기는 이젠 당연하게 각오한다. 2013년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펀딩에 성공한 기업 가운데 75%가 일정을 지키지 못했다.

제품에 문제가 있거나 생각과 다른 경우도 많다.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환불이나 AS는 당연히(?) 어렵고, 아예 물건을 보내지 않는 사례도 있다. 2019년 초에는 ‘고 펀드 미’ 사이트에서 노숙자를 돕는다며 기금을 모아 자기들이 여행한 사기도 적발됐다.

 

 

나는 여전히 신기한 물건을 사는 것이 좋고, 크라우드 펀딩을 사랑한다. 하지만 돈을 잃거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길 바라지 않는다. 당신도 그럴 거로 생각한다. 이런 위험을 줄이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한 건도 실패하지 않고 어쨌든 제품은 받았던 비결을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너무 좋은 제품은 피해라 : 물속에서 숨 쉴 수 있게, 인공 아가미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성공한다면 아마 인류 역사의 0.1%를 다시 썼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사기였다. 이게 가능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일단 거르자. 성공한 다음에 사도 늦지 않다. 너무 끌리는 제품이라면, 속으로 이렇게 속삭여라. “원래 첫 번째 나오는 제품은 거르는 법이야”라고.

2. 프로토타입을 확인하라 : 많은 사기극 때문에 최근 올라오는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프로토타입이 갖춰진 상태(홍보 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시제품)에서 올라오곤 한다. 불안하면 최소한 프로토타입은 있는 프로젝트를 택하는 것이 낫다. 제품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두 번째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회사를 택하자.

3. 알리익스프레스를 검색하라 : 중국 제품을 세계로 판매하는 알리익스프레스라는 온라인 오픈 마켓이 있다. 눈에 띄는 제품이 있다면, 혹시 비슷한 제품이 없는지 확인해 보길 권한다. 가끔 남이 만든 제품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근사한 홍보 영상을 찍은 다음 자기가 개발한 양 팔아먹으려는 회사가 있다.

4. 질문을 자주 하자 : 궁금한 것이 있다면 꼭, 무조건, 투자하기 전에 캠페인 게시판에 질문을 먼저 하자. 답변이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태도다. 질문에 응답하지 않거나 모호하게 말하는 사람은 걸러도 좋다. 덧붙여 캠페인 진행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를 잘하지 않는 프로젝트도 거르자.

5. 회사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이 있다면 반드시 확인하자. :정체가 모호하다면, 거르자. 홍보 영상은 외국인이 찍었지만, 중국 기업인 경우도 많다. 확인하자.

6. 한국 회사에서 해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올린 제품이라면 기다리자. : 투자에 성공하거나 멀쩡한 제품일 경우, 십중팔구 한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도 기다리면 올라온다. 최근엔 인디고고나 킥스타터에서 펀딩 성공한 중국 제품들이, 제품 배송도 안됐는데 한국 사이트에 물건을 올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7. 일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는 신뢰도가 높다. : 자격 심사를 굉장히 엄격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좋아하는 색다른 제품이 적고, 디자인이나 한 가지 아이디어에 치중한 경우가 많으며, 제품일 경우 전반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한국에서 바로 배송받기도 힘들다. 가끔 예쁜 제품이 나올 때가 있어서 가슴 아프지만.

+ 제품 소개에 ‘혁신적인’ ‘지구를 위해’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 말을 기억하면 좋다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들리면 당장 도망가라”

– 로저 로젠블라트의 책,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에서 인용

* 2019년에 외부 기고한 글을 백업합니다. 여기에 더해, 당분간 ‘중국 회사 제품은 피하라’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최근 물건 배송이 늦춰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응대 태도 역시 어쩔 수 없으니까 배 째-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중국 제품들이 와디즈 등에도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해당 킥스타터나 인디고고 페이지에서, 코멘트 란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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