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나의 점수 : ★★★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의 일본 오타쿠 연구기. 이 책은 “경계 밖의 사람” 입장에서 “경계 안의 사람”들에 관한 언론기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씌여졌다. 참고로, 이 책의 옮긴이는 프랑스어에는 능하나 일본문화에는 많이 무지한 듯, 글은 매우 읽기 편하지만 “일본 문화상품(만화, 애니 등)”에 대한 이름 오역이나 잘못된 소개는 꽤 심하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란 ‘국가주의,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반대자로 오타쿠들을 여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체주의 사회에 구멍을 내는 자유주의자들이고, 개별적인 반란가들이다. 일본같은 사회에서 그들의 반전체주의적인 속성이 나쁘게는 ‘옴진리교’같은 사이비 종교의 근간이 되지만, 좋게는 일본 문화의 자유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역설적인 것은, 사람들이 가상적으로 소통하면 소통할수록 현실적으로는 덜 만난다는 사실이다.” -p25

“”모든 인간은 본능이 부서진 상태로 태어난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건 정상일 수 없다.”고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욕망은 불가능한 단 하나의 욕망의 다양한 표현인바, 안정된 상태로의 복귀가 그것이다. 자아는 전능함의 헛된 꿈인 동시에 무기력의 경험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자아는 불안정하다. 자연의 결함을 상쇄하기 위하여 인간은 문화를 창조하는데, 이 문화는 개인적이자 집단적인 헛된 꿈들의 총체일 뿐이다.” -p31

“이 공간에서 그들은 TV와 비디오와 컴퓨터를 통해 섹스-죽음-고통 또는 폭력과 관련한 금기들을 위반할 권리를 얻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위반을 대리적으로 살 뿐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위험도 겪지 않거나, 감히 그 위험에 실제로 맞서지 못한다! / 사실 이미지는 믿게하는 능력이 있고, 덕분에 오타쿠는 스스로에게 자기가 산다고 믿게한다. 그러나 그는 대리적으로 살 뿐이다. 그는 그를 고통받게 할지도 모를 타자와의 관계를 철저히 피해 기술적 자폐의 세계 속에 스스로를 감금한다.” -p34

“고도로 발달된 산업 사회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참여를 회피하는 젊은 세대를 양산해낸다. 부유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일본에서 자란 이 ‘유예된 젊은 세대’는 70년대 말을 상징한다. ‘응석받이’의 측면에 대해, 사회 의식의 결여에 대해 그들은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침내 평화 속에서 살며 성공의 몫을 만끽하고자 하는 한 시대의 상징이다.(심리학자 오코노기 게이고)” -p42

“”제 생각에 증후와 원인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상의 차원으로 도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회환경에 의해 억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세대는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자라났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저희를 가치롭게 해주는, 저희가 필요불가결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못해요.

제가 보기에 오타쿠들은 자신들의 인격을 확립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가까운 영역, 곧 만화/ 만화 영화/ 아이돌/ 콤퓨터에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정체성을 확보하기를, 또래들 앞에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기를, 나아가 자기들의 자아를 강화하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는 것은 힘들어요.””_가이낙스 창립자중 한 사람인 아카이 다카미 -p45

“모든 사람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조차도 사랑을 할 수 있어요. 어려운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_가와모리타 유_인형 오타쿠 -p53

“이렇게 우리는 문제의 핵심에 왔다. 중요한 것은, 상상에 의한 재현이 현실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현실은 이상에 적합하지가 않다. 그것은 이상적 순수함에 어긋난다.” -p58

“호모 비르투엔스로서 새로운 미디어에 정통한 고지 와타나베에게 있어서 문제는 분명하다. 비록 현실은 그의 생각을 부정하는 듯하지만, 그는 주저없이 단언한다. “에로티시즘이 새로운 미디어를 육성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미디어가 에로티시즘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입니다.” -p106

“아이돌들은 이상적 여인을 찾는 오타쿠들의 정신 속에서 개라지 키트 인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팬들의 꿈속에서 존재한다. 그들은 TV의 유리화면에 의해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 이 일방통행적 애정은 그들의 이기적인 가슴을 쿵쿵거리게 한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오타쿠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다시 말해, 그가 ‘정상적인’관계에서 입게 될까 겁내는 상처로부터 자유롭다. 또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자기의 콤플렉스들을 확인해야 하는 고역도 없다.” -p124

“오래지 않아 애송이 사진사들은 아이돌 콘서트가 제공하는 가능성의 폭을 파악하게 되고, 리비도적 유희에 자유로이 탐닉한다. 관객에게 미소짓는 대가로 돈을 받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든 아이돌들은, 무모한 카메라 고조가 카메라 렌즈로 치마밑을 겨냥할지라도 항의할 권리가 없다.” -142

..우리나라에선 레이싱걸 사진을 찍는 것이 조금 비슷할라나? 찍는 마음이야 비슷할듯. 하지만 그 찍은 사진이 어떻게 생활에서 쓰이는가는 전혀 다르다.

“아이돌 오타쿠들이 아이돌들의 대형 이벤트나 미니 콘서트에 체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오타쿠 문화의 또 다른 양상을 이루는 바, 이 점에 대해 좀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이벤트나 미니 콘서트에 가면서 아이돌 오타쿠는 자기만이 깜찍한 미소의 소녀를 짝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느다. 그는 거기에서 다른 오타쿠들을 발견하면서, 주위 사람들이 끊임없이 문제삼는 스스로의 정신 상태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는 것이다.” -147

..이건 왠지 딱- 오빠부대.

“어째서 중학생과 어린이들이 종종 폭력적인 나가이 고의 만화를 좋아하는 가를 분석하면서, 후쿠시마 교수는, 그것이 어린이들에 대한 통제의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쓴다. 유년기를 천사의 시기로 이상화하는 사회와 부모는 어린이들의 창조적 에너지를 억누름으로써 표준화된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숨막히게 하는 가족과 학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어린이들은 따라서 반규범적인 만화들을 통해 오락과 카타르시스적 해방을 추구한다.”-p161

..그래서 인터넷 게임에 그렇게 빠져드는 게지..

“여기서 우리는 소비 사회의 과도한 탐욕이 일본에서 오타쿠를 탄생시킨 세 가지 주요 원인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자. 꿈을 세트로 파는 소비 사회 속에서 사는 젊은 오타쿠들은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고삐 풀린 소비주의의 첫번째 고객들, 혹은 첫번째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소비 사회가 제안하는 상품들을 특유의 방식으로 왜곡하거나 우롱한다.” -168

“”이것은 저를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게하고, 또 그들과의 접촉을 용이하게 하지요. 만약 제가 보통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면 당신이 제게 말을 걸었을까요? 코미케는 축제이자 자유의 공간입니다. 반드시 원래 모습 그래로일 필요가 없어요.”_해병대 코스프레를 한 코미케 참석자”-177

“80년대에 오타쿠들이 급격히 증가한 것에 대한 책임의 큰 부분은 일본 교육 제도의 폐단에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오타쿠들은 대중을 위해 구상된, 하지만 개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교육제도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189

“제 환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직면하는, 그러나 정신병으로 치부되지 않는 문제는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집단에 융합되기 위해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는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개인성을 표명하기 위해 집단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경향입니다.”_일본 국립정신병리연구소 소속 정신과 의사 다케하시 도루” -p199

“경제적 합리주의는 노동 현장을 변화시킨 것은 물론 가정까지도 냉랭한 인간 관계의 자리로 탈바꿈시켰다. ‘최대의 효율, 최소의 인력’이 슬로건으로 떠오른 사회에서 각자가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풍미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는 젊은이들의 감수성과 지성은 변할 수 밖에 없다.

… 젊은이들은 마치 모든 게 허용된 듯 행동하지만, 사실 그들은 정말로 운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목표도 이상도 없으며, 개인적 표현이 가져다 주는 만족감 또한 없다.”_도쿄대 교육학과 호리오 데루히사 교수” -p203

“일본에서 이지메는 본질적으로 개인으로 하여금 집단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수단이다. 집단의 조화를 어지럽히는 아이를 복종시키는 일에 교사가 앞장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_일본:구속하는 사회, 미야모토 마사오 박사, -223

“그것은 제가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허구를 선호한다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오는 것이 사회적 현실감의 상실, 그리고 옷차림이나 외모 등, 제 또래의 젊은이들이 신경 쓰는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인정해주지도 않는 세상의 관습을 존중해서 무엇 한단 말입니까?

저는 포근한 상상 세계 안에 있는 게 더 좋아요. 저를 이렇게 만든 교육 제도를 단죄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들 또한 나름대로의 존재방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에서 학교는 평등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어요. 하지만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로 간주하여 일말의 여지없이 배척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 _기리토시 리사쿠, 괴수 오타쿠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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